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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운동가 후손 정병기씨 40년째 고투
글쓴이 파발마
날 짜
17-06-27 13:24
조회(2434)
독립운동가 후손 정병기씨 40년째 고투
 
1980년 12월 관련기록 전소 '증거 없다' 독립 유공자 누락 
 
박영재 기자    ㅣ  기사입력  2017/02/27 [13:24] 
 
▲ 정병기 씨   
 【브레이크뉴스 】박영재 기자= 일제강점기 독립 운동을 하다 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으로 옥사했지만 기록이 소실됐다며 정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주지 않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일제강점기시대 형무소 수형인 기록을 지난 1980년 12월 실수로 모두 불살라버렸던 정부가 이제 와서 독립운동으로 수감됐다는 걸 증명할 문서를 가져와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주겠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 일제에 항거하다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한 독립투사 정용선(鄭溶璿, 1883년 ~ 1928년) 선생 증손자 정병기(60)씨는 해마다 3.1절이면 가슴이 먹먹해온다. 이러다 못해 억장이 무너져 내린다.

정씨는 40년 동안 증조부인 정용선 선생의 행적을 찾아 고향마을이자 독립운동의 무대가 됐던 인 경북 봉화군 춘양면을 수도 없이 찾았다.특히 증조부가 항일독립운동을 하면서 독립 운동가들의 은신처였던 봉화군 법전면 척곡리 척곡교회는 민족교회로 지난1907년 설립 최근 기독교문화재로 지정 돼 원형이 복원된 교회도 수없이 방문했다. 봉화군이 발간한 ‘봉화의 독립운동사’ 110페이지에 정용선 선생이 군자금을 모아 척곡교회를 설립하는데 도움을 줬다는 내용도 실려있다. 정부기관도 수십 번을 더 드나들었다. 하지만 돌아온 회신은 “일제시대 형무소 수형인 기록을 지난 1980년 12월 실수로 모두 불에 타버려 이를 증명할 문서가 남아 있지 않아 독립유공자로 인정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정씨는 이미 경찰관으로 재직 당시 인 1980년 강도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범인에게 칼에 찔려 국가 유공자인 상이군경회원으로부터 연금을 받고 있다. 단순히 보상만을 바라고 그 오랜 세월 증조부의 행적을 찾아 다닌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정씨는 지난해 신생물 간세포암이라는 병을 얻어 간이식을 하고 투병중이다. 정씨는“병으로 죽는 것은 억울하지 않은데 자손 된 도리를 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더 억울하다”며 가슴을 쳤다.

정씨는 증조부가 독립유공자임을 인증하기 위해 1993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편지를 띄워 수형인 명부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마이크로필름 500장을 200달러를 주고 사오기도 했다. 일본 외무성에 수차례 서신을 띄우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사료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지난 2009년엔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증빙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최근 봉화문화원이 보훈처에 정용선 선생에 대한 의견서를 보냈지만 허사였다.

정씨의 증조부 정용선의 행적에 대해 독립 운동가였던 구여순 선생의 증언이 뚜렷이 남아 있다. 당시 구여순 선생은 “지난1919년 2월 28일 동생 은득(銀得)의 요청으로 3월 3일 상경하여 3·1운동에 참가하고 곧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2일 고향으로 돌아와, 동지 최정학(崔正學)·이우식(李祐植)·김봉연(金琫淵)·정용선(鄭溶璿) 등과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배포하고 14일 시위운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이 문서에 남아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명 서류가 없어 국가적인 유공자로 공인은 못 받은 상태이다.  정씨는“아버지와 친척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증조부인 정용선 선생은 1900년대 초부터 1916년까지 고향인 경북 봉화군을 중심으로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가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씨는 “증조부가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파의 집을 털고 일본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위험천만한 활동을 서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하지만 그의 증조부는 1916년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고 10년 가까이 지난 1928년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통지서 한통만 날아왔다고 한다.

생애 일제시대 경성형무소(현 서부지방법원.검찰청)에서 옥사한 독립투사. 결정적인 증거로 “당시 반일 활동가를 가두던 경성형무소에서 장기복역하다 숨졌다는 것 자체가 증조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희생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증조부로 인해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자 이를 견디지 못한 일가친척들이 증조부 이름을 아예 파버렸다는 것. 친척들은 증조부가 실종된 후 일제의 화가 미칠까 두려워한 가족들이 나서서 증조모를 개가시켰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을 했음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정황증거’라고 강조했다.

실제 호적등본을 보면 증조모는 독립투사의 아내였던 것을 감추기 위해 본명인 ‘박열이’에서 ‘정열이’로 개명까지 했다. 그러나 일제가 만든 호적에 증조부가 경성형무소에서 병으로 사망했다는 기록 외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서류는 남아있지 않다원본 기사 보기:브레이크뉴스 대구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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