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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께
글쓴이 파발마
날 짜
17-10-29 08:14
조회(45)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께

국정운영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모든 것이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서 언제나 국민을 바라보시고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에 기대와 희망을 가져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국민인수위원회에 가입하여 많은 정책제안 80여 가지를 제안 드린바 있고 광화문1번가를 통하여 정책과 안타까운 증조부 항일독립운동 옥사 사연을 국민마이크 무대를 통하여 호소하고 서류로도 민원을 접수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하신 피우진 국가보훈처장님께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사연에 대한 민원을 제기해 놓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40년을 증조부님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에 대한 그 명예를 찾아 자손된 도리를 하려고 숨 가쁘게 달려왔지만 아직도 구태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보훈처 실무부서의 이해부족과 베일에 쌓여있는 심사위원들의 고정관념이 변하지 않아 매년 숨을 흘리고 가슴을 쳐야 했습니다, 아직도 후손들에게만 의지하며 거증자료를 찾아오라는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안타깝고 통탄스러울 뿐입니다,

그동안 역대정권들이 자신들의 부끄러운 친일행적을 지우기 위해 조직적이고 은밀한 방법이나 정부의 지시로 관보를 통하여 폐기 소각하여 중요한 서류들이 사라지고 없는 현실에도 정부의 귀책사유는 전혀 거론하거나 문제 삼지 않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중요한 마포 경성형무소에 대한 자료가 전무한 실정입니다, 이곳에서 증조부 정용선 선생께서는 옥고를 치루며 모진 고문과 탄압 그리고 벽돌을 생산하는 강제노역을 하시다 1928.5.20. 오후 3시15분(당시 제정호적 기록 인용) 옥사하셨습니다,

분명하고 명백한 역사적 사실마저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은 정마 후손들은 너무 힘이 듭니다, 나머지 수형기록이나 옥중 기록들은 모두 불타거나 사라졌기에 자료를 발굴하기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나 제정호적을 증손자인 제가 수십년을 노력 끝에 몇 개를 발굴했으나 내용을 모두 동일합니다, 이런 내용마저도 인정하지 않는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고 보여집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정부가 독립유공자 발굴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해결해야 하며 반드시 친일적폐청산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대통령께서 꼭 한번 챙겨 주셨으면 합니다, 정말 한 맺힌 소망입니다, 새정부인 국민의 나라 국민이 마음 놓고 억울하지 않게 살 수 있는 나라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저는 꼭 당부 드리고 싶은 사연이 있습니다, 지난 3.1절에 서대문역사관 행사시에 경호원에게 사연의 편지한통을 전달한바 있습니다. 항일독립운동으로 마포 경성형무소 옥사하시고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슴 아픈 사연입니다, 나라위해 받친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이 반드시 정부가 인정해줘야 하고 이는 당연지사라고 생각합니다, 이형무소에서 북한의 김일성 숙부인 김형권 독립운동가가 숨진 곳이기도 하고 대한민국정부가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은바 있고 인터넷에서 검색이 되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저의 증조부님이신 정용선 선생께서 1928.5.20. 옥사하신 역사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신도 인수받지 못했지만 그 명예도 인정받지 못해 증손자가 증조부의 민족을 우한 항일독립운동 옥사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지난 40년을 고군분투해 왔습니다.

저는 오늘 제98주년 3.1절에 특별한 사연을 담은 편지를 드리고 싶어 새벽같이 달려왔습니다. 제98주년 3.1절을 맞아 민주당에서 일제강점기 마포 경성형무소 제조명해주세요? 그런데 그 편지가 전달이 되었는지도 불분명 한 것 같습니다,

저는 40년째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으로 군자금운동을 하시다 체포 당시 악명이 높던 마포 경성형무소에서 41세로 옥사하신 증조부 정용선 선생의 명예를 찾기 위해 언 40년을 노력한 증손자 정병기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자료발굴은 고사하고 후손들에게만 거증자료를 찾아오라고 요구하고 있는 현실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꼭 사연에 대해 취재해 주신다면 모든 자료를 제공하고 협조하겠습니다,

일제강점기 마포 공덕리105번지 일제가 세운 마포 경성형무소는 어떤 형무소였는지 자세히 시청자분들께 알려주었으면 합니다,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국민 대다수가 서대문형무소가 바로 경성형무소인지 잘못 알고 있다는 사실은 언론에서 바로잡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악명 높던 경성형무소에서 항일독립운동으로 투옥되어 모진 탄압과 고문 그리고 벽돌을 생산하는 강제노역으로 시달리시다 41세로 옥사하셨으나 아직까지 그 명예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있습니다, 아직도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고 돌려받지 못해 그 혼령들이 구천을 맴돌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이제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대원칙에서 야권인 민주당에서 제대로 재조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증손자로서 지난 40년을 증조부 항일독립운동 옥사 명예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방송에서 취재하여 주신다면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국가보훈처의 잘못된 공훈심사에도 변화가 왔으면 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일제강점기 악명이 높던 마포 경성형무소 역사관 건립에 앞장서야

오늘 3,1절 특집으로 저의 증조부사연이 KBS1 TV 오후 6시50분 우리들 사는 세상 시청자칼럼에서 방송이 나갑니다. 많은 시청바랍니다,(벌써 2008,2011,2017,) 3회째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마포 경성형무소야말로 민족독립의 진정한 성지입니다,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 영웅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며 반드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친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은 그 명예를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서울구치소는 범털들이 모여 우굴 거리는 서울구치소지만 전신은 바로 악명이 높던 마포 경성형무소이다. 경성형무소 역사관 건립 정부가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역사바로세우기 말보다 실천이고 앞장서야 해결됩니다, 왜 정부는 경성형무소 역사적 진실과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가? 이곳에서 옥사하신 항일독립투사들은 시신도 인수받지 못해 구천을 맴돌고 있다. 도대체 정부나 국가는 무엇을 하는가? 현재 사회적 인사나 정치적 인물 그리고 기업인 등이 구속 수감되거나 법원에서 실질영장심사에서 구속결정이 나오면 구속수감 되는 서울구치소의 전신은 일제 강점기 악명이 높던 마포 공덕리 105번지 경성형무소가 전신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굴복시키지 못하고 독립의지를 꺾지 못한 굴직한 항일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르다 대부분 살아서 나가지 못하고 죽어 나간 곳으로 민족혼이 설여 있고 지금도 구천을 맴돌고 있는 한이 서린 역사의 현장입니다. 현재는 서울서부지방법원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사가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역사의식이 부재한 지난 역대정권들의 잘못된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전인 1908년에 서대문형무소의 전신인 경성감옥이 서울 서대문구에 지어졌다. 경성감옥의 수용 공간이 부족해지자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새 감옥이 신설되어 경성감옥으로 불리게 되었고, 서대문의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으로 개칭했다. 8.15 광복이후 1946년에 마포형무소로, 1961년에는 마포교도소로 각각 개칭했다. 1963년 경기도 안양시에 신설된 안양교도소로 이전하면서 폐지되었다. 마포형무소 건물은 이전 후 사라졌고, 그 터에는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이 들어서 있다. 1995년에 마포구 공덕동 105번지 마포형무소 자리에 "1912년 日帝가 경성형무소를 설치하여 항일(抗日) 독립 운동가(獨立運動家)들이 옥고(獄苦)를 치렀던 유적지"라고 적힌 표석이 설치되었다. 현재의 큰 범죄로 인한 영장심사에서 구속하는 곳이 서울구치소이나 이곳의 전신은 역시 일제 강점기 악명이 높던 마포 경성형무소 애국자와 항일독립투쟁가들의 한이 서린 곳이다. 이러한 민족수난의 역사가 있는 곳에 역사관을 건립하자는 국민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당시 역사의식의 정권이 큰 실수를 했다고 본다. 역사관을 만들어 후세들에게 나라사랑의 영사의 현장으로 조성했어야 했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시신도 돌려받지 못하신 애국의 혼들이 구천을 맴돌고 있어 해마다 혼을 달래는 행사를 해야 할 것이다.

정부나 정치권에서 해주면 좋겠지만 제1야권에서 꼭 이번 3.1절에 악명이 높던 마포 경성형무소를 다루어 주시고 이곳에서 옥사하신 항일독립투사분들의 그 명예가 찾아질 수 있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국민들이나 독자들이 제대로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치는 국민들이 억울하고 슬픈 일이 없게 해주셔야만 합니다, 지난 40년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관심을 가져 주시기를 거듭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악명높던 마포 경성형무소 역사관 건립 교훈삼아야

항일독립투사, 중형을 언도받은 수형자 ,모진 박해와 강제노역으로 옥사
동영상 첨부 http://www.youtube.com/watch?v=g6gEv0Ug4gk
마포 '경성형무소' 식민지역사관 건립해야

애국선열의 민족과 나라위해 걱정하는 호령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민족독립의 성지, 악명높던 마포 경성형무소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뒤늦은 감 있지만 일제강점기 항일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루시다 옥사하신 역사의 현장인 당시 악명높던 마포 경성형무소의 역사적 사실을 진실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오는 3.1절 제98 년이자 8월15일은 제72 년 광복절을 맞았다. 이날을 위해 우리 선조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잃어 가면서까지 만세를 부르고 모진 고문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 강토 그 어느 곳인들 독립을 위해 피 흘렸던 역사가 스며있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지금은 잊어져 가고 있는 이 장소만큼은 그 의미를 다시 새겨야만 하는 한 장소가 있다.

바로 역사의 현장으로 독립투사들에게 악명 높았던 마포 경성형무소다. 지금은 그 자취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지고 있지만 바로 이곳이 독립에 몸 바쳤던 수많은 이들의 피울음이 새겨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부지방법원과 검찰청 자리 잡은 '경성형무소' 표지석 만이 당시 형무소였다는 사실 알려줘야 한다고 본다, 모진고문과 탄압 그리고 굶주림, 붉은 벽돌 생산하는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병사, 그래도 독립의지 지켜낸 의지와 투지 그리고 애국정신을 교훈삼아야 할 것이다,

마포구 공덕리 105번지 경성형무소 자리에는 현재는 서울서부 지방법원ㆍ검찰청이 들어서 있지만, 당초 한일병합 조약 체결전인 1908년 서울 서대문구에 지어졌던 '경성감옥'이 수용공간이 적어지자 이곳 마포구 공덕동에 지은 후 1923년부터는 '경성형무소'로 이름을 바꾸어 불렀었다. 경성형무소는 일제 강점기 동안 대전형무소와 함께 무기수나 장기 수형자를 수용한 곳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김일성 주석의 숙부인 김형권이 옥사한 곳이기도 하다. 저의 증조부 또한 이곳에서 4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바로 지난 1928년 5월 20일 이었다. 이런 중요한 경성형무소를 자취도 없게 철거한 후 공공기관을 건축하였다는 것은 역사의식의 부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어떻게 해야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 발전의 동력으로 승화 시킬 수 있을까? 바로 이곳 경성형무소 자리 옆에라도 '경성형무소 식민지 역사관'을 건립함으로서 그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떤가 한다. 비록 민족의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역사라 할지라도 일정 규모라도 복원해 전시함으로서 이를 후손들에게 보여주고 물려줘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꼭 힘없는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려 주셨으면 합니다, 제98주년 3.1절 아침에 문재인 대권주자님께 드립니다,

유튜브 자료/ 3.1절 특집 KBS1 TV 시청자 칼럼 정용선 증조부 항일독립운동 옥사 사연 2017.3.1. 3.1절 특집 방송

증손자 지난 40년 증조부 항일독립운동 옥사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아직도 서훈을 인정받지 못해 가슴을 치고 눈물 흘리고 있는데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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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 독립운동 관련 자료찾아 36년 고군분투

정용선(鄭溶璿, 1883년 ~ 1928년)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편집] 생애 일제시대 경성형무소(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독립투사. 정용선의 행적에 대해 구여순이 1919년 2월 28일 동생 은득(銀得)의 요청으로 3월 3일 상경하여 3·1운동에 참가하고 곧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3월 12일 고향으로 돌아와, 동지 최정학(崔正學)·이우식(李祐植)·김봉연(金琫淵)·정용선(鄭溶璿) 등과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어 배포하고 14일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는 사실이 문서에 남아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명 서류가 없어 국가적인 유공자로 공인은 못 받은 상태이다. 그의 증손인 정병기(2010년 현재 53세)는“아버지와 친척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증조부인 정용선(1883년생) 선생은 1900년대 초부터 1916년까지 고향인 경북 봉화군을 중심으로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가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씨에 따르면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파의 집을 털고 일본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위험천만한 활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그의 증조부는 1916년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고 10년 가까이 지난 1928년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통지서 한통만 날아왔다고 한다. 결정적인 증거로 그는“당시 반일 활동가를 가두던 경성형무소에서 장기복역하다 숨졌다는 것 자체가 증조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희생됐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증조부로 인해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자 이를 견디지 못한 일가친척들이 증조부 이름을 집안명단에서 파버렸고 증조부가 실종된 후 일제의 화가 미칠까 두려워한 가족들이 나서서 증조모를 개가시켰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을 했음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정황증거’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호적등본을 보면 증조모는 독립투사의 아내였던 것을 감추기 위해 본명인 ‘박열이’에서 ‘정열이’로 개명까지 했다.

그러나 일제가 만든 호적에 증조부가 경성형무소에서 병으로 사망했다는 기록 외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을 증명할만한 서류는 남아있지 않다. 정병기는 증조부가 독립유공자임을 인증하기 위해 1993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편지를 띄워 수형인 명부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마이크로필름 500장을 200달러를 주고 사오기도 했다. 일본 외무성에 수차례 서신을 띄우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사료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2009년엔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국가의 독립유공자 자격 인증에 대해 정병기는 “일제시대 형무소 수형인 기록을 지난 80년 12월 실수로 모두 불살라버렸던 정부가 이제 와서 독립운동으로 수감됐다는 걸 증명할 문서를 가져와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준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더욱이 일본 외무성은 1995년까지 조선인 수형인 명부를 보관했지만 우리 정부는 단 한번도 그 서류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하고 있다. 객관적인 인증을 위해 더더욱 증빙자료가 필요한 현실이다. [편집] 참고자료/분류: 1883년 태어남1928년 죽음 한국의 독립운동가 사형된 사람

동영상 KBS 독립운동가 기록찾기 30년의 노력http://www.youtube.com/watch?v=xSxb0IcQq1U www.youtube.com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과 청와대에서 사연에 꼭 관심을 가지시기 바라며 저의 정용선 선생의 증손자 노력이 자료발굴 노력이 금년 40년이 되는데 꼭 자손된 도리를 다할 수 있게 은전을 베풀어 주시길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저는 정부가 (국가보훈처) 후손들에게 정부가 나서 폐{기소각한 자료를 찾아오라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옥사기록이 분명하고 일제시대 중형을 언도받아 모진고문과 강제노역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경성형무소에서 옥 중 옥사하신 증조부의 명예를 새정부에서 반드시 찾아 그 명예를 바로 세우고 싶습니다, 보내드린 관련자료를 살펴보시고 원칙과 기본이 중시되고 상식이 통하는 독립유공자 발굴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정부의 귀책사유도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라에 목숨을 받친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이 새정부에서 인정받게 되기를 학수고대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국가보훈처)에서 저희 증조부 경성형무소 옥사가 아니라는 증명을 해 주시었으면 합니다, 힘없고 어렵게 살아가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선조의 그 명예를 찾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어렵고 긴 시간과 긴 세월이 흘러야 하는지 참 안타깝고 유감입니다, 그리고 이번 계기로 친일행위를 하고도 독립유공자가 있다고 하는데 철저히 조사하여 가려내야 하며 어떠한 방법이라도 선택하여 친일청산적폐를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발굴독립유공자 발굴은 “독립유공자 발굴 특별심사위원회”라고 정부가 설치하여 인후증명과 증명사실 그리고 옥사기록이 담긴 당시 제정호적 등이 있다면 인정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문재인 새대통령과 새정부에서 구태를 버리고 나라위해 목숨을 받친분들에 대한 예우와 처우개선이 반드시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분들의 희생이 빛바랜 애국이나 잃어버린 애국으로 잊어지지 않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후손들이 더 이상 가슴을 치고 눈물 흘리지 않게 해주시길 거듭 당부를 드립니다, 구태와 관행에 젖어 있는 국가보훈처를 쇄신해야 합니다. 현재 증조부 항일독립운동 하시던 경북 봉화 법전 척곡교회(110년 된 교회- 당시 만주 용정으로 군자금 보낸 민족교회) 학술용역조사를 건의했는데 별 반응이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방송에서 새로운 증언들이 나왔는데 당시 경북봉화군 법전면 척곡교회에서 군자금을 마련하여 만주 용정으로 인편으로 보내졌다는 증언이 나온 만큼 봉회지역 항일독립운동과 관련하여 학술용역연구조사를 의뢰하는 민원을 국가보훈처에 제기한바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겉돌고 있는 현실입니다,

경북 봉화군 법전면 척곡리 척곡교회에 대하여 “봉화지역 항일독립운동역사에 대한 고찰”을 학술용역을 발주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건의 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받치시고도 명예를 찾지 못하신 미발굴독립유공자 발굴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국가보훈처가 경북봉화군 법전면 척곡리” 척곡교회를 중심으로 “봉화지역 항일독립운동역사에 대한 고찰”을 학술용역을 발주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주셨으면 하는 건의를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용역발주 하던 사학자들을 심사위원을 대폭 교체 제외하고 새로운 발굴팀인 인근 경북대학 역사학과에 발주하되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고 봉화문화원과 경북대학이 함께 시행하는 봉화지역 학술조사용역을 통하여 지역의 항일독립운동 역사를 발굴해야 합니다. 그동안 그분들이 군림하며 독식해 왔기 때문입니다,

이미 얼마 전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에서 척곡교회 현지답사를 해 간바 있고 1907년 세원진 교회로 민족교회로 지역문화재로 등록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립운동 모금을 위해 중국 만주지역 간도에서 영향을 받고 군자금도 인편으로 안전하게 용정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이교회에 “명동서숙“ 이라는 이름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동영상자료를 보시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학술연구고찰을 통하여 새로운 향토사 발굴과 항일독립운동에 관한 사료발굴과 역사발굴에 대하여 국가보훈처에 건의 하는 것이면 지금까지 조사인력에 대한 인적쇄신을 강력히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국가보훈처의 잘못된 관행과 구태를 바로잡아야 하며 억울한 일이 없게 해달라는 내용인데 앵무새답변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본 민원은 너무나도 명백하고 확실한 옥사에 대하여 거증자료 부족이라는 이유로 현재까지 서훈을 받지 못하고 따라서 명예도 찾지 못한 채 애국을 위한 옥사가 한낱 개죽음을 당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매우 유감입니다, 좀 더 신중하고 역사적 사실 관계에 대한 팩트를 찾아 그분들이 일제강점기 받친 숭고하고 고귀한 희생과 애국정신이 후세에 본이 되고 교훈이 될 수 있는 길을 찾고 재조명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일임에도 후손들에게만 맡겨왔다는 사실은 부인 할수 없는 현실이고 사실입니다, 모두가 역사 앞에 부끄럽고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보니 하루가 급한 현실을 이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국가보훈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받치신 항일독립운동가 서훈심사에서 가족과 후손에 입장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며 그동안 정부가 관련자료 관리 소홀이나 인위적인 정권차원의 친일흔적차원의 조직적인 폐기 소각 등에 대한 귀책사유도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100년이 다되어가는 역사적 자료를 찾는데도 한계가 있지만 성의 있는 국가보훈처의 처리가 우선되어야 하며 현재 제출되거나 신문 방송 등 인우증명 호적등도 최대한 반영하여 그분들이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게 반영하여 잃어버린 빛바랜 애국이 되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후손이 찾기에 앞서 정부나 국가보훈처가 최선을 다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 까지 자료 발굴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너무나 허술하고 후손들의 자료제출에 의존하는 형태를 탈피하여 국가보훈처가 앞장서 관련 자료를 스스로 발굴하고 필요하다면 후손들이 요구하지 않아서 현지조사나 해당지역의 학술영구용역조사를 병행하여 한 점의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고 고찰하여 역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무조건 어렵다거나 안 된다고 하기보다 가능성을 열어 놓고 최선을 다해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는 독립유공자 발굴노력과 심사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합니다, 그 후손들이 독립정신을 가지고 선조의 관련 자료발굴을 위해 애쓰고 그 명예를 찾아 자손 된 도리를 다하려는 노력을 국가보훈처는 깊이 인식하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ㅁㅎ든 것이 해방이후 친일적폐청산을 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싶지만 그렇다고 노력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의 정요선 증조부는 경북지역의 항일독립운동 군자금운동이며 그 자금은 만주 독립군에게 보내졌다는 사실은 반드시 국가보훈처가 재조명하고 밝혀내야 할 사안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봉화지역에 대한 학술용역연구조상의뢰민원을 제기하게 된 경위입니다, 이 유튜브 동영상을 참조해 보시길 바랍니다, 3.1절 특집 KBS1 TV 시청자 칼럼 정용선 증조부 정용선 선생 (항일독립운동 마포 경성형무소 옥사) 항일독립운동 옥사 사연
https://www.facebook.com/byounggi.jeong.5/videos/1183235931775045/?autoplay_reason=gatekeeper&video_

증조부 항일독립운동 옥사 자료 찾아 40년 고군분투 이제 정부가 나서 그 명예 찾아줘야 당연지사, 미발굴독립운동가 구천을 맴돌고 있는 신세다. 기가 막힌다.http://www.youtube.com/watch?v=xSxb0IcQq1U www.youtube.com

위 3개의 동영상을 살펴보시면 무엇이 어떤지 그 내용과 역사적 사실을 잘 알 수 있다고 봅니다.

나라를 위해 받친 희생을 이렇게 주무부처에서 방관하시지 말고 관심과 의욕을 가지고 제대로 역사적 사실이 조명되고 인정받을 수 있게 모든 역량과 노력을 경주하여 반드시 이번 제72주년 광복절에는 그 명예가 찾아지고 인정받게 되기를 아울러 바라고 당부를 드립니다,

정부는 마포 경성형무소 역사관 건립 정부가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역사바로세우기 말보다 실천이고 앞장서야 해결됩니다, 이곳에서 옥사하신 항일독립투사들은 시신도 인수받지 못해 구천을 맴돌고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g6gEv0Ug4gk>>

사연자 정병기(미발굴발립유공자, 정용선 선생의 증손자) 거주지는 서울이며 연락처 010-5310-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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