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0년
HOME > 임정자료실 > 임시정부 이야기

제 목 5월의 임시정부 소사
글쓴이 관리자
날 짜
05-06-16 14:33
조회(6017)


5월 임시정부 소사


5월 03일
1926년 임시의정원, 안창호를 국무령으로 선출했으나 사퇴.
1939년 사천성 기강에 임시판공처 설치.
1944년 중국내 독립운동자들, 중국국민당 중앙집행위원회에 임시정부 승인
·물적지원 제공 요구하는 비망록을 제출.

5월 04일
1923년 임시의정원, 국민대표회의로 하여금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개정케 하자는
문시환 등 15의원의 긴급 제안을 가결.

5월 06일
1943년 외교부장 조소앙, 중경주재 미국대사에게 한국에 대한 미국언론의
국제적 보호논조에 대한 공문을 발송.
1944년 황학수·차이석·김붕준·최석순·이상만·윤기섭을 생활설계위원으로
선정.

5월 07일
1938년 한국독립당·한국국민당·조선혁명당 대표들, 장사 조선혁명당
본부에서 통합문제 협의 중 조선혁명당 이운환이 요인 저격 기도
(남목청 사건), 김구 중상·현익철 사망.
1945년 임시의정원 최석순 등 7명, 독립운동자대표대회 소집을 긴급 제의.

5월 08일
1920년 임시정부 임시육군무관학교, 제1회 졸업식에서 19명 배출.
1940년 한국국민당·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 「3당해체선언」 발표.
1943년 한국독립당, 중경 중앙사무소에서 전당대표대회 개최.

5월 09일
1940년 한국국민당·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과 하와이의 애국단 등, 중경
에서 한국독립당 창당(위원장 김구).
1944년 한국독립당, 창당기념일 맞아 참전임무를 다하자는 내용의 선언서 발표.

5월 10일
1919년 임시정부, 국가주권 승인 등 20개 항목의 공문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
1922년 국민대표회주비위원회, 남형석·김철 등의 명의로 선언서 발표.
1932년 국무원 김철 등, 항주 청태 제2여사에 임시판공처를 개설.
-. 김구, 상해 각 신문에 '상해폭탄사건'의 진상을 발표.

5월 12일
1919년 국무원위원 조완구, 의정원회의에서 시정방침에 대해 연설.
-. 김규식,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 제출.
1921년 안창호, 상해 상현당에서 임시정부개조와 독립운동방략에 관한 대중강연.
1923년 전내무차장 김인전 사망.

5월 13일
1919년 임시정부 의원 손두환·한위건 등 6명, 노령 대한국민의회를 의정원에
통일케하자는 안건 제출. 1925년 임시대통령 이승만 탄핵을 반대하는
캘리포니아 한인노동사회개진당, 임시정부에 성토문을 발송.
1942년 국무회의, 한국광복군에 부사령직 증설을 의결.

5월 15일
1924년 국무원비서에 백기준, 국무원서무국참사에 조영원, 법무차장에 김갑,
학무차장에 김승학, 교통차장에 김규면 임명.
1932년 항주에서 국무회의 열고 개각 단행. (법무장 이동녕·내무장 조완구·
외무장 조소앙·재무장 김철·군무장 김구).
1941년 주석 김구, 국내외 동지 동포서 발표.
1942년 조선의용대를 광복군에 편입하여 제1지대로 할 것과 김원봉을 광복군
부사령으로 임명할 것 등 결정.

5월 16일
1921년 국무총리대리에 법무차장 신규식을 임명.
1922년 임시의정원, 대통령에게 책임이행 촉구하는 전보타전 결의.

5월 17일
1920년 안정근·왕삼덕을 북간도와 노령에, 조상섭을 서간도에 파견하여
「임시거류민단제」시행케 함.

5월 18일
1922년 군정서원 김영진·노재철 등 9명, 공주지방법원에서 10년~5년형 언도.
1942년 국무회의, 조선의용대장 김원봉을 광복군 부사령에 선임.

5월 19일
1921년 안창호 등, 상해국민대표회기성회 조직.
1924년 참의부 독립군 참위 한웅권 등 10여명, 평북 강계군 고산면 강변에서
압록강 연안을 순시 중이던 충독 재등실 일행을 습격.

5월 20일
1941년 한국독립당, 제1차 전당대회에서 대회선언서 발표.

5월 21일
1929년 평양복심법원, 참의부 군사위원장 이종혁에 징역 5년 언도.
1943년 장개석, 임시정부가 요청한 정부보조비·교민생활비 증액을 승인.

5월 22일
1940년 장개석, 한국광복군 편성에 동의, 중국군사위원회에 광복군 창설
협조지시.

5월 25일
1919년 안창호, 내무총장에 취임하기 위해 미국에서 상해에 도착.
1932년 상해 일본 헌병대 제1회 군법회의, 윤봉길에게 사형을 선고.

5월 26일
1944년 중국군사위원회가 제안한 「한국광복군간부훈련반계획개요」에
대해 거부 의결.

5월 28일
1945년 주석 김구, 중국 국민당정부 장개석 총통에게 한국광복군 훈련반
설치에 관한 협조공문 발송.

5월 29일
1924년 임시의정원 제31회 의회 개회.

5월 30일
1921년 내무부, 각 관서주임관리에게 '불온 언동에 대한 주의'라는 공함 통첩.
1923년 노백린, 참모총장에 피임.
1924년 노백린, 참모총장에 임명됨.

5월 31일
1920년 만주 장백현 대표 이동백, 임시정부에 장백현 지방행정기관의 시설을
요청.
1921년 윤기섭, 정부개조의 필요성 제기한 결의문을 임시정부에 발송.

5월
1919년 교통부 안동지부사무국 설치.
1921년 여준·김동삼·이탁 등 서간도의 군사단체 지도자들, 액목현에서
임정의 개조를 결의.
1932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해에서 가흥 거쳐 항주로 이동.
1933년 김구, 장개석과 면담하고 낙양군관학교 한인훈련반 설치에 합의.
1939년 김구·김원봉 , 「동지 동포에게 보내는 공개신」 발표.
1940년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장 김구, 「한국광복군편련계획대강」을
장개석에게 제출.
1942년 광복군 제1·2·5지대, 제2지대로 개편(대장 이범석).
1943년 조선민족혁명당 총서기 김원봉, 인도주재 영국군총사령부의
콜린 맥켄지와 조선민족군선전연락대 파견에 관한 협정 체결.
1945년 서안의 광복군 제2지대, 50명의 대원을 선발하여 제1기 OSS훈련 시작.
게시물 7건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7 알려지지않은 임시정부 이야기 3. 「망국병… 관리자 2005-07-18 8066
6 세계의 임시정부 1 관리자 2005-06-24 15821
5 알려지지않은 임시정부 이야기 2. 「사냥개… 관리자 2005-06-16 6394
4 알려지지않은 임시정부 이야기 1. 「그리운… (2) 관리자 2005-06-16 8216
3 6월의 임시정부 소사 관리자 2005-06-16 5567
2 5월의 임시정부 소사 관리자 2005-06-16 6018
1 4월의 임시정부 소사 관리자 2005-06-16 10412


(우:03173)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길 19 로얄빌딩 602호 / TEL : (02)3210-0411,  732-2871~2 /   FAX : (02)732-2870  
E-MAIL : kpg19197837@daum.net
Copyright 2005 Korea Provisional Governmen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