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0년
HOME > 열린마당 > 보도자료

제 목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반공 이데올로기가 가린 역사적 진실…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의 서훈을 확대해야-경향신문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11 22:18
조회(220)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122060003… (127)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 기고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반공 이데올로기가 가린 역사적 진실…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의 서훈을 확대해야



순국선열조차 이념 잣대로 재단 
군사독재 정권의 모순 아직 남아


심지어 순국선열조차도 독립유공자가 되지 못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얘기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하다가 순국한 분인데도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자로는 부적합하다고 보곤 했다. 왜 그랬을까? 왜 이처럼 앞뒤 모순된 현상이 나타났을까. 이념 탓이었다. 군사독재정권은 그분이 생전에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을 문제 삼았다. 독립유공자 서훈에 필요한 모든 요건과 증빙을 갖췄다 하더라도 그분이 행여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했었다면, 어김없이 ‘부적격’이라고 판정했다. 군사독재의 통치수단이던 반공 이데올로기가 역사적 진실을 가렸다. 


6월 민주항쟁이 이 부조리를 고쳤다. 1987년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 비로소 이치에 맞지 않는 일들이 바로잡히게 됐다. 민주주의의 힘이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게 했다. 다만 일거에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 교정은 더디게 단계적으로 이뤄졌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작지만 유의미한 첫 진척이 있었다. 사회주의 경력이 있는 독립운동자라 하더라도 해방되기 전에 사망한 분이라면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다시 말하면 해방 이후에는 사회주의 운동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또 있었다. 서훈 등급을 한 단계 낮춰서 그리하기로 했다. 두 가지 조건을 붙인 셈이었다. 덕지덕지 조건이 붙은 채였지만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도 유공자 서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후 서훈을 받은 사회주의자들이 점차 늘었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사회주의 계열을 대대적으로 서훈한 사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3·1운동 이후의 독립운동가들 
대거 사회주의 수용 직시해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에 또 한 걸음 진척이 있었다. 201 8년 6월 정부는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기준 개선 방안을 확정했다. 그에 따르면 해방 이후 사회주의 활동에 참여한 인사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은 경우에는 독립유공자로 선정해 포상이 가능하도록 했다. 1945년 이후 사회주의 신념을 버리지 않은 독립운동가에게도 유공자 서훈의 길이 열렸다. 역사적 진실에 일보 더 다가가는 조치라 하겠다. 


그러나 아직 부족해 보인다. 예컨대 총독부 관료들과 친일파를 전율케 했던 의열단장 김원봉은 어찌 하려는가? 중국에 망명했던 그는 해방 후 남쪽으로 귀향했다. 그러나 친일파가 부활하는 현실에 실망하고 월북했으며, 북한 정권에 참여했다. 그는 1950년대 말경 북한 정권의 갈등 와중에서 사라졌고, 이후 그의 독립운동 역사는 잊힌 상태에 놓여 있다. 그는 아직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그뿐인가.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사회주의를 수용했고, 1930년대 독립운동을 탄압하던 치안유지법 위반자의 대다수가 사회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해방 직전까지 옥중에서, 지하에서 항일투쟁을 계속하던 사회주의자들 가운데 대다수가 독립유공자 서훈에서 배제되고 있다.


독립운동 여부로만 서훈 따지고 
사후적 추가 기준 세워선 안돼


당연한 말이지만, 독립유공자 선정 여부는 그 사람이 독립운동을 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뒷날 훼절해서 친일한 경력이 있는 경우만 제외되어야 한다. 그 외에는 달리 사후적인 추가 기준을 세워서는 안된다. 신념, 종교, 성별, 국적 여부에 상관없이 단일한 보편적 기준에 의거해서 유공자 선정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설령 사회주의자라 할지라도 그가 독립운동에 참가한 공로가 있다면, 아무런 제한 없이 독립유공자로 예우하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 특별취재팀 

강병한(정치부), 유정인(문화부), 심진용(국제부), 박광연(사회부) 기자







게시물 974건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919 한겨레] “조선여자도 사람 될 욕심 … 관리자 2019-02-14 121
[1919 한겨레] 조선여자 임금은 일본남자 … 관리자 2019-02-14 120
[1919 한겨레] 제발 저린 일본, 사이온지 … 관리자 2019-02-14 129
[1919 한겨레] 19살에 잡지 <창조> … 관리자 2019-02-14 131
한반도 철도건설은 1888년 조-미 협상에서 … 관리자 2019-02-14 127
만세시위 앞장선 또 다른 ‘유관순’들 -한… 관리자 2019-02-14 143
버선에 독립선언서 숨겨 운반한 유관순 올… 관리자 2019-02-14 141
‘순국처녀’ 아닌 ‘여성 독립운동가’…… 관리자 2019-02-14 144
[독립견문록 ②자싱·하이옌] "백범 피신하… 관리자 2019-02-14 140
[독립견문록 ②자싱·하이옌] 현상금 350억… 관리자 2019-02-14 138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中과 연결고리` 신… 관리자 2019-02-13 155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백범 "윤군, 후일 … 관리자 2019-02-13 117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백범 증손자 김용만… 관리자 2019-02-13 145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대륙 놀라게한 윤봉… 관리자 2019-02-13 156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자주독립 가르치던 … 관리자 2019-02-13 158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대한민국` 국호 만… 관리자 2019-02-13 153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임시정부 피눈물 역… 관리자 2019-02-13 157
[단독]임정 국새, 100년 유랑 끝내고 고국 … 관리자 2019-02-13 153
도쿄 한복판서 '2.8 독립선언' 1… 관리자 2019-02-11 215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신 삼대’… 관리자 2019-02-11 223
[신년기획]다·만·세 100년,1919. 2. 8…… 관리자 2019-02-11 218
[신년기획]다·만·세 100년,“70년대보다 … 관리자 2019-02-11 216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독립에 목숨 … 관리자 2019-02-11 219
[신년기획]다·만·세 100년,3·1만세…외… 관리자 2019-02-11 215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이육사 ‘… 관리자 2019-02-11 216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반공 이데올… 관리자 2019-02-11 221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일제 현상… 관리자 2019-02-11 203
[신년기획]다·만·세 100년,“빨갱이란 비… 관리자 2019-02-11 203
[신년기획]다·만·세 100년,“동양의 인걸… 관리자 2019-02-11 206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한민족의 대… 관리자 2019-02-11 212
‘정정화·이은숙·조화벽의 삶’ 무용극으… 관리자 2019-02-11 200
[이만열 칼럼] 3·1독립선언 100년, 지금은… 관리자 2019-02-03 294
[묻고 답하다] 김자동 "독립운동의 올바른 … 관리자 2019-02-03 303
조소앙 선생 '대한독립선언서' … 관리자 2019-02-03 296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좌우통합’… 관리자 2019-01-29 336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민주공화국… 관리자 2019-01-29 330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아버지와 장… 관리자 2019-01-29 331
‘희망 없는 정치’에 저항…3·1운동은 10… 관리자 2019-01-25 340
독립운동가 노백린 장군 오늘 추모식-한겨… 관리자 2019-01-23 363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ㅈㅗㅅㅓㄴㅁ… 관리자 2019-01-15 476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민족 해방 … 관리자 2019-01-15 441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철물점 주인… 관리자 2019-01-15 453
정부, 3·1운동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한… 관리자 2019-01-15 460
‘고문경찰’ 노덕술도 무공훈장 유지 친일… 관리자 2019-01-11 569
“3·1운동 당시는 천도교를 국가로 인식 … 관리자 2019-01-10 575
3·1 독립선언서, 학생들 쉽게 읽고 배운다… 관리자 2019-01-10 567
[1919 한겨레] 재동경 조선 유학생들, ‘조… 관리자 2019-01-09 615
[1919 한겨레] 최남선 vs 윤치호… 파리강… 관리자 2019-01-09 630
[1919 한겨레] 흥청망청 양반들, 우리도 꼴… 관리자 2019-01-09 624
[1919 한겨레] 동경의 조선인 유학생은 일… 관리자 2019-01-09 650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만세 고창한… 관리자 2019-01-08 688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불법·무효… 관리자 2019-01-04 754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안중근·신채… 관리자 2019-01-04 785
“47살에 기초 프랑스어 배우고 독립운동사… 관리자 2019-01-04 719
[3.1운동100년 통일염원71년] "시민이 주인… 관리자 2019-01-02 746
[임시정부 100주년]독립투사의 딸, 노동자… 관리자 2019-01-02 819
974 [1919 한겨레] “조선여자도 사람 될 욕심 … 관리자 2019-02-14 121
973 [1919 한겨레] 조선여자 임금은 일본남자 … 관리자 2019-02-14 120
972 [1919 한겨레] 제발 저린 일본, 사이온지 … 관리자 2019-02-14 129
971 [1919 한겨레] 19살에 잡지 <창조> … 관리자 2019-02-14 131
970 한반도 철도건설은 1888년 조-미 협상에서 … 관리자 2019-02-14 127
969 만세시위 앞장선 또 다른 ‘유관순’들 -한… 관리자 2019-02-14 143
968 버선에 독립선언서 숨겨 운반한 유관순 올… 관리자 2019-02-14 141
967 ‘순국처녀’ 아닌 ‘여성 독립운동가’…… 관리자 2019-02-14 144
966 [독립견문록 ②자싱·하이옌] "백범 피신하… 관리자 2019-02-14 140
965 [독립견문록 ②자싱·하이옌] 현상금 350억… 관리자 2019-02-14 138
964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中과 연결고리` 신… 관리자 2019-02-13 155
963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백범 "윤군, 후일 … 관리자 2019-02-13 117
962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백범 증손자 김용만… 관리자 2019-02-13 145
961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대륙 놀라게한 윤봉… 관리자 2019-02-13 156
960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자주독립 가르치던 … 관리자 2019-02-13 158
 1  2  3  4  5  6  7  8  9  10    


(우:03173)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길 19 로얄빌딩 602호 / TEL : (02)3210-0411,  732-2871~2 /   FAX : (02)732-2870  
E-MAIL : kpg19197837@daum.net
Copyright 2005 Korea Provisional Governmen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