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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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①상하이] `대한민국` 국호 만든곳도 못찾고…임정청사 골목엔 빨래만 널려-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13 09:29
조회(532)
#1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86529&relatedcode=00009… (232)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① 상하이 ◆



`가스 안전검사가 무료로 진행됩니다. 1월 20일까지 우리 회사로 연락 주세요. 상하이대중가스유한공사영업소.`

상하이 황푸구 쇼핑가 신톈디(新天地) 앞 2차선 도로. 바로 건너편의 마당로 방향을 바라보자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현판이 눈에 띄었다.

한국인 눈에도 제법 익은 이곳은 흔히 `마당로 청사` 혹은 `보경리 청사`라고 불린다. 청사가 마당로란 길가에 위치해서고, 보경리 건물의 `4호`가 청사로 쓰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3·4·5호가 모두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청사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도 이 건물에 중국인이 산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던 터. 지난달 24일, 막상 마당로에 들어서자 묘한 기분이 휘감았다. 바로 옆집인 보경리 1·2호는 상하이대중가스유한공사의 때늦은 A4용지 통지서가 붙은, 진짜 가정집이었기 때문이다. 한 세기 전 대한민국의 요람은 지금도 매립 안 된 전깃줄로 뒤엉켜 입구가 어지러웠고, 당당한 태극기 대신 이불과 속옷 빨래가 나부꼈다. 안내원의 귀띔이 묘한 충격을 건넨다. "신톈디 개발 때 청사 용지도 밀릴 뻔했어요. 구(區) 단위의 문물보호 단위로 지정되며 명맥을 유지한 거죠. 왜 가정집이 아직 있느냐고요? 건물에 사는 대부분이 노인인데 중국 정부에서 30평대 아파트 서너 채를 준다고 해도 안 나가요. 나중에 물려주려는 거죠. 평당 시세요? 한화로 7000만원이 넘습니다."

1919년 3월 1일 독립이 선언되자 한반도의 민족 지도자들은 상하이로 모였다. 조계(租界)에 임시정부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민족 외적으로는 김규식(1881~1950)이 파리강화회의에서 3·1운동과 자주독립을 알리며 외교에 치중할 때, 민족 내적으로는 임시정부 건립이 시급했다. 조계는 외국인 출입과 거주가 허용되고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개항장 인근 지역을 뜻했다. 불평등조약의 결과였을지언정, 조계는 나라 잃은 백성 입장에선 국제 여론 형성에 적합했다. 백범 김구(1876~1949)의 표현대로 `왜(倭)의 마수`에서 자유로웠다. 1919년 4월 이동녕을 임시의정원 의장으로 선출하는 제헌국회가 조직됐고 대한민국임시헌장이 제정·공포됐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에서 13년을 머물렀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고무줄 달린 투명 비닐 덧신으로 양발을 감싸야 입장이 가능했다.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나무 바닥과 계단은 이미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 상태였다. 14.8평짜리 회의실 1층에 들어서니 대각선으로 엇댄 태극기 사이로 주름살 가득한 백범의 동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2층은 백범이 사용한 집무실이다. `백범일지` 상권이 여기서 쓰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26년부터 `윤봉길 의거`가 터진 1932년까지 6년간 사용한 `마당로 청사`의 안내 간판. 연간 20만명이 방문할 정도로 늘 붐빈다.  [상하이 = 이승환 기자]
사진설명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26년부터 `윤봉길 의거`가 터진 1932년까지 6년간 사용한 `마당로 청사`의 안내 간판. 연간 20만명이 방문할 정도로 늘 붐빈다. [상하이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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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2시간30분(오전 11시~오후 1시 30분)을 제외하면 항상 인산인해를 이룬다. 조승희 주상하이대한민국총영사관 영사는 "상하이 임정청사 방문객 수는 중국 측에서 매년 20만명 정도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단순 계산하면 하루 방문객이 500명을 넘는 셈이다.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항저우로 피신하기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마당로 청사를 임정청사 중 최장 기간인 6년간 사용했다. 하지만 마당로 청사는 임시정부의 첫 청사가 아니고 유일한 청사도 아니다. 21세기에 상하이 시절 임정의 유일한 상징으로 남은 이유는 대한민국의 태동지가 어디인지, 다른 청사의 정확한 지점은 어디인지를 역설적으로 아무도 모르는 현실도 작용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大韓民國)`이란 국호를 만든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는 상태다. 국호가 처음 탄생한 자리는 상하이 김신부로(金神父路)다. 지금은 서금2로(瑞金二路)로 지명이 바뀌었다. 서금2로로 발걸음을 옮겨 살펴보니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표식을 발견할 수 없었다. 교차로에선 무단횡단하는 행인들로 가득해 일국의 근엄한 요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임정 요인들의 집으로 쓰인 `영경방 10호`로 이동했다. 백범 일가가 머물렀던 자리에는 `그레이하운드`란 이름의 태국 음식점이 영업 중이었다. 외부 뼈대만 옛 모습 그대로고 내부 구조는 모두 현대식이었다. 백범 모친 곽낙원 여사(1859~1939)가 중국인들이 쓰레기통에 버린 `배추 껍질`을 주워다가 소금물에 담가 우거지 김치를 담그던 자리였고, 백범의 처 최준례 여사(1889~1924)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고 지점이기도 했다. 최준례 여사는 산후조리를 못해 시어머니 수발을 받다 "오늘은 어머님 대신 세숫물을 버리겠다"며 이곳 계단을 내려서다 낙상한 뒤 생긴 늑막염이 폐질환으로 번져 작고했다.

이날은 마침 상하이 쉐이크쉑버거 신톈디점이 개점하는 날이었다. 영경방 10호에서 28위안짜리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통유리창을 바라보니 수제 햄 버거를 먹으려 몰려든 중국인 인파가 눈에 띄었다.

[상하이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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