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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②자싱·하이옌] 현상금 350억 백범 피난처, 영화처럼 마룻바닥 탈출구가 …-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14 09:02
조회(530)
#1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89367 (208)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② 자싱·하이옌 ◆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이 피난길에 묵었던 중국 자싱의 르후이차오 17호의 2층 방 내부 모습(왼쪽). 방 네 개 가운데 백범 모친 곽낙원 여사와 차남 김신이 생활한 방이다. 일제를 피해 백범은 다시 중국 하이옌의 재청별서(오른쪽)로 이동해 몸을 숨긴다. 백범이 자싱과 하이옌으로 피신하도록 도운 이는 중국 사상가 추푸청이었다. [자싱·하이옌 = 이승환 기자]
사진설명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이 피난길에 묵었던 중국 자싱의 르후이차오 17호의 2층 방 내부 모습(왼쪽). 방 네 개 가운데 백범 모친 곽낙원 여사와 차남 김신이 생활한 방이다. 일제를 피해 백범은 다시 중국 하이옌의 재청별서(오른쪽)로 이동해 몸을 숨긴다. 백범이 자싱과 하이옌으로 피신하도록 도운 이는 중국 사상가 추푸청이었다. [자싱·하이옌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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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커우공원의 `윤봉길 쾌거(快擧)` 주범으로 지목된 백범 김구의 목숨에 현상금이 붙었다. 금액은 `60만다양(大洋)`이었다. 다양은 1원짜리 은화를 일컫는데 60만다양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요즘 시세로 350억원이 넘는다. 미국인 목사 피치 부부의 도움으로 상하이에 은신하던 백범은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 정부에 신변이 위협받는 상황을 설명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상하이사변 후 난징으로 수도를 옮겼던 장제스는 백범의 협력 타전에 이렇게 답했다. "김구가 온다면 비행기라도 보내겠다."

비행기는 아니었을지언정,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의 호위로 `현상수배범` 백범은 상하이 13년 생활을 정리하고 피난의 가시밭길에 올랐다. 상하이에서 항저우까지 뚫린 운하의 첫 번째 도시 자싱이 백범이 결정한 유랑의 첫 번째 목적지였다.

백범은 중국 근대 사상가 추푸청의 수양아들인 천퉁성의 별채가 위치한 메이완제(梅灣街) 76호에 숨었다. 지난달 26일 답사한 메이완제의 김구 피난처에는 두 명의 노인이 낚싯대를 드리운 채 붕어를 낚고 있었다. 메이완제의 별채는 운하와 닿아 백범의 탈주에도 적합해 선택된 거처였다. 한 시절의 목숨 건 유랑은 사라지고 세월을 낚는 어부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던 참이었다.

백범은 일제의 눈을 피해 배를 타고 인근 운하를 다니며 육지를 밟는 시간을 줄였다고 `백범일지`에 썼다. `오늘은 남문 호수에서 자고, 내일은 북문 강변에서 자고, 낮에는 땅 위에서 행보나 할 뿐이었다.`

백범의 숙소 2층으로 오르니 탈출 통로가 아직 남아 있었다. 나무 바닥을 뜯어 만든 비상구로, 위급 시 바로 배를 타고 탈출하도록 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손바닥으로 헤아려보니 다섯 뼘쯤 됐다. 일제가 들이닥쳤을 때 동선을 교란시킬 목적인 듯했다. 아래 1층 중앙에는 백범이 하늘을 쳐다봤을 내부 정원, 그 옆으로 백범이 씻었을 돌욕조가 여전했다. `광둥사람 장진구(혹은 장진)`로 행세하며 쌓인 암울한 유랑의 피로를 달랬을 장소였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창문 옆에는 바닥이 썩은 탓에 수리하려고 물 밖으로 나온 나룻배가 뒤집힌 채였다.

메이완제에서 5분쯤 걸어 르후이차오 17호에 도착했다. 요인들이 생활한 숙소다. 목조건물 2층은 네 가구가 사는 가정집을 복원한 곳이었다. 왼쪽부터 이동녕·김의한·엄항섭의 가족이 각각 머물렀던 방이 유지돼 있었고 맨 오른쪽 방은 백범의 모친 곽낙원 여사와 차남 김신이 잠을 청하던 자리였다. 가림벽으로 서로 모습을 볼 수 없을 뿐 네 가구의 천장이 모두 뚫려 있었다. 이방인의 땅에서 한잠을 청했던 식구(食口)는 한 세기 전 한민족의 축소판이었다.

메이완제를 뒤로하고, 창타이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쯤 달려 위안화(袁花) 톨게이트로 빠져나와 하이옌현으로 향했다. 반 시간을 더 달리니,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호수가 나타났다. 난베이후(南北湖)였다. 북문에서 입장료 80위안을 내고 차로 올라 명인문화구라는 지점으로 향하며 언덕 아래를 바라봤다. 동서 방향으로 그어진 제방이 호수를 남북으로 갈랐다.

자싱에도 일본 경찰이 찾아올 만큼 수배망이 좁혀오자 백범은 자싱 메이완제를 떠나 하이옌의 이 자리로 피신했다. 안내 간판 없이는 도통 찾기 어려운 낡은 건물엔 대리석 현판이 희미했는데 `재청별서(載靑別墅)`란 네 글자만큼은 선명했다.



별장을 집어삼킬 듯한 대나무가 주변에 빼곡한 이곳은 추푸청의 사돈댁이 소유한 건물이었다. 추푸청 집안 전체가 백범의 안위에 사활을 건 셈이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난베이후는 예나 지금이나 천혜의 요새다. 난베이후가 내려다보이는 재청별서에서 백범은 임시정부 문서를 남기거나 자싱에 남은 임정 요인에게 보낼 서신을 썼다.

`김구 피난처`란 한국어 표지가 반가운 백범 서재엔 당시에도 사용했으리라 짐작되는 침대와 옷걸이가 그대로였다. 재청별서 오른편에 증축된 `김구 전시관`에는 1990년대를 풍미한 도서 시리즈 `웅진위인전`의 `23화 김구 편`이 함께 전시돼 있었다. 전시관의 문구와 안내 표지마다 중국어, 영어와 함께 한국어가 병기돼 있었지만 정작 한국인 방문객은 학자를 제외하고는 많지 않은 편이라 했다. "난베이후가 관광단지여서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많은 편이다. 1월에 한국인은 세 팀 정도 왔다"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재청별서 마당의 바위엔 한문으로 쓴 글씨가 붉은 페인트로 음각돼 있었다. `음수사원 한중우의(飮水思源 韓中友誼).`

백범의 차남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1996년 하이옌 방문 당시 남긴 휘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6년 9월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 바로 이 문구를 거론했다. `물을 마실 때 그 물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하듯 한중 간 두터운 우의를 생각한다`는 뜻이 담긴 바위의 여덟 글자는, 최근 사드 사태로 냉각기를 거친 한중 외교의 조속한 회복을 담담하게 제언하는지도 몰랐다.

[자싱·하이옌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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