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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순국처녀’ 아닌 ‘여성 독립운동가’…유관순의 등장이 의미하는 것-한겨레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14 09:59
조회(1483)
#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2076.html (446)
다시 봐야 할 유관순
좌우대립 해방정국에 조명
‘어린 여성의 순국’ 표상화

정작 일제 1919년부터 감시
구와바라 충남장관 민심 보고에

“천안 만세시위로 오빠 구속
부모도 숨져 유관순 일가 전멸”
판결문에도 항소·상고 ‘저항’

고등교육 받고 식민통치 맞선
‘근대적 주체’로 재조명해야




1919년 7월9일 당시 충남도 장관이던 구와바라 하치시가 작성한 유관순 일가에 대한 보고 문서 ‘대정 8년 소요사건에 관한 도장관 보고철 7-7’의 일부. “천안군 동면 용두리 유관순 일가는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으로 처분되어 일가가 거의 전멸하는 비참한 지경에 빠졌다”고 썼다.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터베이스에서 발췌

1919년 7월9일 당시 충남도 장관이던 구와바라 하치시가 작성한 유관순 일가에 대한 보고 문서 ‘대정 8년 소요사건에 관한 도장관 보고철 7-7’의 일부. “천안군 동면 용두리 유관순 일가는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으로 처분되어 일가가 거의 전멸하는 비참한 지경에 빠졌다”고 썼다.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터베이스에서 발췌



3·1 운동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 유관순 열사. 1919년 4월1일 충남 천안 병천의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진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관순이라는 이름 석자는 식민지 민족의 한과 저항의 상징으로 뿌리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삶과 죽음에는 확인되지 않은 것이 많다. 다양한 설로 존재했던 사망 날짜(1920년 9월28일)가 확인된 것도 2000년대 중반의 일이다. 고등교육을 받고 식민 통치에 직접 맞선 ‘근대적 주체’가 아닌, 일제의 만행으로 비운의 명을 다한 ‘가녀린 희생자’로 인식하는 경향도 강하다.

 


유관순이 국내에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건 해방 뒤지만 일본은 1919년부터 유관순과 그의 가족을 주목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사회과교육과)가 지난해 12월 낸 논문(‘3·1운동, 죽음과 희생의 민족서사’)에서 처음 소개한 옛 일본 공문서(‘대정 8년 소요사건에 관한 도장관 보고철 7-7’) 내용이 이를 뒷받침한다. 당시 충남도 장관이던 구와바라 하치시가 작성한 ‘지방민심의 경향에 관한 건’(1919년 7월9일)을 보면, “천안군 동면 용두리 유관순 일가는 소요죄 및 보안법 위반으로 처분되어 일가가 거의 전멸하는 비참한 지경에 빠졌다”고 쓰여 있다. 만세시위 중 유관순과 오빠 류우석이 구속되고, 부모(류중권·이소제)는 모두 숨진 일을 거론한 것이다. 이 기록에는 유관순의 할아버지 류윤기가 그해 6월16일 숨진 뒤 집안에서 장례를 기독교식으로 할지 전통식으로 할지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는 내용도 담겼다.

 


유관순이 공주지방법원(1심) 판결에 불복하며 끈질긴 항소·상고 투쟁을 이어간 흔적도 찾을 수 있다. 경성복심법원(2심)과 고등법원(최종심)의 ‘조인원 외 10명 판결문’을 보면, 유관순은 경성복심법원에서 6월3일 징역 3년형을 받았으나 상고했다. 그러나 고등법원은 9월11일 이를 기각했다.

 


잊혔던 유관순이 ‘저항과 희생의 상징’으로 다시 떠오른 것은 1946년 가을로 전해진다. 당시 이화학당 교사 출신인 박인덕이 세상에 알렸다는 주장이 있고, 문교부 편수국에서 일하던 전영택·박창해가 우연히 듣게 된 유관순의 사연을 국어 교과서에 넣기로 했다는 설도 있다. 1947∼48년에는 유관순을 다룬 각종 전기, 교과서, 영화, 기사, 연극 등이 쏟아졌는데, 이때부터 ‘순국 처녀’, 조국을 위해 기도하고 싸운 ‘조선의 잔다르크’란 표현이 곧잘 쓰였다. 성고문이나 장기 파열, 시체 토막과 같은 극단적인 서사가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다. 소설가 박계주가 1947년 2월28일자 <경향신문>에 쓴 ‘순국의 처녀’와 1948년 나온 윤봉춘의 영화 <유관순>이 대표적이다.

 


유관순에 대한 기억의 첫 단추가 이렇게 끼워진 것은 해방 직후 극심했던 좌우 대립 및 경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1946∼47년에는 각 정치 세력이 3·1절 기념식을 따로따로 개최하다 유혈 충돌이 벌어지고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 단독정부 수립이 가까워진 1948년 3·1절엔 미군정청이 좌익 계열의 근로인민당 주최 실내 집회를 일방적으로 해산시켰다. 이런 가운데 영화 <유관순>의 제작자인 방의석은 1948년 잡지 <영화시대> 2월호에 “선열과 애국지사의 뜻을 받들어 삼팔선을 우리의 손으로 부수고 쓸데없는 고집을 버리고서 한데 뭉치자”고 썼다. 분단의 갈림길에서 서러운 역사의 상징인 유관순을 소환해 일제의 만행을 재각성시키고 민족 통합을 호소한 것이다.

 


당시 강렬했던 반일정서가 반영된 서사이긴 하지만, 이제는 유관순을 ‘가녀린 희생자’란 표상에 가두기보다 그의 등장이 의미하는 바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관순은 1902년 태어나 1916년 이화학당에 편입학했고, 1919년 3월5일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한 뒤 고향 천안으로 가서 교회와 학교를 돌아다니며 시위 준비를 주도했다. 여성이자 학생이며 동시에 운동가인, 이전 시대엔 없던 새로운 존재다. 김 교수는 “한 인간은 여러 정체성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어린 여성’이라는 하나의 요인만 꼽아 유관순을 영웅으로 기리는 것은 아쉽다”며 “독립운동을 했는데 여성 인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의 의미 등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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