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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한반도 철도건설은 1888년 조-미 협상에서 시작됐다-한겨레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14 10:06
조회(1628)
#1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81910.html (507)
구한말 주미공사관과 미국 정부 간 외교기록 발굴
1880년대 경인선 철도부설 계약서 초안과 논의자료 확인
한반도 철도역사 시원 앞당기는 획기적 사료
공사관서 일했던 이상재 종손이 자료 기증




<미국공사왕복수록>의 일부. 미국 쪽과의 철도 계약 협상의 조건들과 함께 서울 시내에 양수기, 가스등을 설치하는 내용 등도 기록되어 있다.

<미국공사왕복수록>의 일부. 미국 쪽과의 철도 계약 협상의 조건들과 함께 서울 시내에 양수기, 가스등을 설치하는 내용 등도 기록되어 있다.





<미국공사왕복수록> 표지.

<미국공사왕복수록> 표지.



이 땅에 들어선 첫 근대 철도는 1899년 완공된 길이 27㎞의 서울~인천 간 경인선이다. 조선 정부가 1890년대 초 미국 기업가 제임스 모스와 협상을 벌인 끝에 1896년 3월 모스에게 철도부설권을 넘겨줘 1897년 착공했고, 일본이 다시 모스한테서 공사권을 넘겨받아 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사실로 인정받아온 이런 통설이 깨지게 됐다. 최근 발굴된 당시 조선-미국 정부 간 외교문서에서 한반도 철도의 시원인 경인선의 건립 논의가 1890년대 경인선 건립 과정보다 훨씬 이른 1880년대 조-미 협상 때부터 진행됐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일제강점기 민족지도자로 활약한 독립지사 이상재(1850~1927) 선생이 1888년 주미국 조선국공사관(이하 공사관)에서 관원으로 일할 당시 활용, 기록한 외교문헌·사진자료 8점을 최근 후손으로부터 기증받아 검토한 결과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이란 문서에 미국 쪽이 경인선 설치를 제안한 사실과 계약서 격인 ‘철도약장’(鐵道約章) 초안이 함께 실려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13일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기증된 유물은 문헌자료 5점과 사진자료 3점이다. 특히 <미국공사왕복수록>과 <미국서간>(美國書簡)은 학계에 보고되지 않았던 미공개 사료들로, 당시 미국 정부와 협상 중이던 중요 현안업무와 공사관의 운영, 공관원들의 활동상 등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유일한 현존 자료다.

 


모두 138쪽에 이르는 <미국공사왕복수록>은 공관원들의 ‘업무편람’에 해당한다. 1883년 당시 미국 대통령 체스터 아서가 초대 주한공사 루셔스 푸트를 파견하며 고종에게 전달한 외교문서를 비롯해 박정양 초대 공사가 미 정부 쪽과 주고받은 각종 문서들, 조선왕조-미국 정부 간 각종 현안사업 관련 문서들, 업무에 필요한 각종 비망록 등으로 이뤄져 있다. 맨 처음 기록된 문서인 ‘미국답서 역한문’(美國答書 譯漢文·1883년 2월6일)을 제외하면, 작성 시기는 주미전권공사 박정양이 워싱턴에 도착한 직후인 1887년 11월27일부터 귀국 뒤 2년이 지난 1891년 7월까지 3년여에 걸쳐 있다.

 


특히 주목되는 건 <…수록>에 들어간 당시 조선-미국 간 현안 사업들을 담은 문건 가운데 경인선 철도 부설에 대한 협의 과정을 담은 약정 문건이 확인된다는 점이다. 뉴욕 법관 ‘딸능돈’(달링턴) 등이 ‘조선기계회사’를 설립해 철로, 양수기, 가스 사업을 추진하려고 조선 정부 쪽에 제안한 철도 개설 운영의 규칙과 약정서 초안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인약초’(美國人約艸)란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초안은 1888년 10월10일 작성된 것으로 한반도 근대철도 건설의 시원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근거 사료로 보인다. 또 <…수록>에는 당시 주미공사관의 참찬관을 지냈고, 훗날 조선공사를 역임하며 한국 정부의 외교업무를 자문했던 미국인 알렌이 제안된 ‘미국인약초’를 두고 긍정적으로 평가한 의견서도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알렌은 의견서에서 “규약 초안의 내용이 좋다. 정부는 한푼도 내지 않지만 이것에 의거해 시행하면 경성이 번화스럽기가 세계 각국과 당일하게 된다”며 계약을 적극 추천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경인선은 1896년 조선왕조가 미국인 모스에게 부설권을 허가했으나, 모스가 1897년 5월 다시 일본 쪽에 권리를 넘겨 1899년 9월 일본 쪽이 완공한 것으로 알려져왔다. 문화재청은 “이번 자료를 통해 이미 1888년 당시 조선 정부가 주미공사관을 통해 미국 쪽과 철도부설 관련 사항을 논의하고 있었으며, 관련 계약서 조문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다.

 


<…수록>에 실린 두번째 문서인 ‘송미국외부조회’(送美國外部照會·1887년 11월27일)는 박정양이 공사 파견의 전제조건으로 당시 종주국 중국에 내건 ‘영약삼단’을 무시하고 중국공사 장음환을 먼저 방문하지 않은 채, 미국 국무장관을 방문하겠다고 국무부에 직접 보낸 문서다. 1월10일 그는 이완용·알렌·이채연 등을 대동하고 토머스 베이어드 국무장관을 방문해 국서 제정 일자를 협의하고 관례에 따라 조회문을 보내는 절차를 밟았다. 주미전권공사가 국제관례에 따라 자주국으로서 외교를 전개했음을 입증하기 위해 기록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알렌이 이런 자주적 외교 의례를 자신의 주도로 했다고 주장하는 편지도 함께 <…수록>에서 발견돼 눈길을 끈다.

 


<미국서간>은 이상재 선생이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임명된 1887년 8월부터 1889년 1월까지 작성했던 편지 38통의 모음이다. 주미공사 서기관으로 미국에 파견된 기간 부모의 안부를 묻거나 집안의 대소사를 논하는 등 개인사와 집안일에 관련된 것들이 주된 내용이다. 그러나 내용 일부에 당시의 공사관 운영 상황을 드러낸 구절이 보이고, 미국에 주재하는 동안 활동하거나 견문한 사항 혹은 느낀 점 등도 부분적으로 적고 있어 당시 공사관 활동의 실상, 청년 외교관이던 월남의 활동상과 그의 미국관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기록으로 평가된다. 그는 1888년 1월 보낸 편지들에서 ‘이곳의 인물 풍속 정치 법령은 우리나라와 일체 상반돼 날마다 듣고 보는 것은 귀와 눈이 처음 듣고 처음 보는 것’이라고 호기심을 표시하지만, 청나라 공사의 간섭과 트집이 심해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유곡의 처지에 있다’거나 ‘득중(得中)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으면서 중국과의 갈등을 큰 애로점으로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1888년 4월13일치 편지에서는 ‘이 나라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는 30여국으로 모두 부강한 나라이고, 오직 우리나라만 빈약하지만 각국 공사와 맞서 지지 않으려고 한다. 이때에 만약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꺾이면 국가의 수치이고 사명을 욕보이는 것이다’라고 밝히며 자주독립국 외교관으로서의 자존심 또한 드러내 눈길을 끈다.

 




주미공사관 관원으로 근무할 당시의 월남 이상재.

주미공사관 관원으로 근무할 당시의 월남 이상재.



이상재 선생은 1887년 주미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됐다. 박정양 초대주미공사와 함께 1888년 1월 미국 워싱턴에 도착한 뒤 같은 해 11월 박 공사와 귀국길에 오를 때까지 현지 공사관을 개설하는 등 공관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학계는 공개된 자료들이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품 자료를 분석한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한국 근대철도 건설 논의의 시원을 1880년대로 끌어올리는 획기적인 근거 자료가 발견돼 의미가 크다. 주미공사관 관련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는데, 19세기 조선왕조의 생생한 대미외교활동을 공사관원이 직접 기록한 최초의 발굴 자료가 나왔다는 점에서도 지대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공개된 자료들은 월남의 종손 이상구(74)씨가 물려받아 간직해온 것들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 과정에서 고증 관련 사료를 찾던 중 자료들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 뒤 전문가들의 검증 과정을 거쳐 소장자 이씨의 희망에 따라 재단 쪽과 협의해 지난해 12월 국립고궁박물관에 기증됐다. 문화재청은 13일 오후 2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상재 선생 기증 자료들을 언론에 공개하고, 기증식을 열어 후손 이씨에게 감사패를 줄 예정이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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