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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1919 한겨레] “조선여자도 사람 될 욕심 가져야겠소” -한겨레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14 10:13
조회(557)
#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82070.html?_fr=mt2 (191)
기미년통신 전개 ② 독립운동 중심에 선 여학생들
‘동경 조선인 유학생 만세사건’ 주동 여학생 김마리아·황애시덕 일경에 고초
‘일제·유교 굴레’ 이중속박, 담대히 떨치고 선 신여성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 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일본 유학 시절 기모노를 입은 여학생들 가운데 홀로 한복을 입고 있는 김마리아(둘째 줄 오른쪽 끝) 선생 모습. 사진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일본 유학 시절 기모노를 입은 여학생들 가운데 홀로 한복을 입고 있는 김마리아(둘째 줄 오른쪽 끝) 선생 모습. 사진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 제공.



 


【1919년 2월13일 동경/엄지원 기자】 “여기 김마리아, 김마리아라고 하는 조선인 여자가 있는가.” 금남의 구역인 동경여자학원 기숙사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아연한 여학생들 앞을 학감 선생이 막아섰다. 경찰은 8일 동경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있었던 조선인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에 이 학교 유학생 김마리아(27)씨가 주동자로 참여했다며 그를 연행하려는 것이었다. 학감 선생은 “여기는 학교입니다. 김마리아는 자신이 신념하는 것을 하고 있어요. 범죄인처럼 취급하지 않도록 해주세요”라며 맞섰다. 그러나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김씨를 연행하여 갔다. 현장에 있었던 김씨의 일본인 동창생 가와니시씨의 전언이다.

 


지난 8일 재동경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있었던 동경 유학생들의 ‘만세사건’으로 남학생 이십여명이 붙잡혀 간 사실은 이미 보도했지만, 사건에 가담한 여학생 김마리아(27·동경여자학원), 황애시덕(27·동경여자의전)씨도 체포됐다 풀려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당시 현장에는 나혜석(23·동경여자미술학교), 현덕신(23·동경여자의전) 등 이미 조선반도에 수재로 이름을 알린 여자 유학생 대부분이 참석하였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여학생이 한 명도 붙잡히지 않은 것은 경찰과 격투하는 와중에 몸을 피한 까닭일 것으로 보인다. 다만 “조선 여자로부터 돈 30원을 받았다”는 독립단원 윤창석(30)씨의 경찰 진술에 따라 김마리아씨와 황애시덕씨가 추가로 피체(붙잡힘)되기에 이른 것이었다. 두 사람은 남학생들과 달리 이튿날 곧 훈방되었으니, ‘여자는 조력자에 불과할 것’이란 선입견이 실로 투철한 여자 운동가들에게 기회를 열어준 셈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13일 유학생들로부터 그간의 정황을 들어보면, 작년(1918) 연말 조도전(와세다)대 최팔용(28)씨 등이 이번 만세사건을 처음 모의할 때부터 여학생들은 긴밀히 참여했다. 김씨는 여학생들을 규합하고 운동자금을 모집하는 역할 등을 맡은 것으로 전해졌다. 변신의 귀재인 그는 평소에는 일본 여학생들 가운데서도 한복 입기를 고집하나 연락 임무를 맡을 때면 기모노를 입고 일본 여자로 변장해 일경의 눈을 피하는 데 선수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연유에선지 여학생을 대표하는 김마리아씨는 유학생 독립선언서 대표자인 ‘조선청년독립단’ 11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였다. 오늘날 조선 여성의 해방은 일제로부터는 물론이거니와 여자가 온전한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유교적 굴레로부터의 자유까지를 포함한다는 것을 이때 김씨는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김마리아 비롯 황애시덕·나혜석 등 일당백 운동가

 


독립선언서 주도적 참여에도 조선청년독립단 이름 빠져

 


“언제까지 삼종지도에 갇혀있을 건가”…‘진정한 해방’ 결기

 


 


김마리아, 평소에는 한복 고집하나

 


연락책 땐 기모노 ‘변신 귀재’

 


동경 독립선언 전달 임무차

 


모교 요청에 귀국 채비 끝내

 


 


 




3.1운동 비밀결사 애국부인회 임원. 번호순으로 김영순 서기, 황에스더 총무, 이혜경 부회장, 신의경 서기, 장선희 재무부장, 이정숙 적십자부장, 백신영 결사대장, 김마리아 회장, 유인경 대구지부장. 사진 독립기념관 제공.

3.1운동 비밀결사 애국부인회 임원. 번호순으로 김영순 서기, 황에스더 총무, 이혜경 부회장, 신의경 서기, 장선희 재무부장, 이정숙 적십자부장, 백신영 결사대장, 김마리아 회장, 유인경 대구지부장. 사진 독립기념관 제공.



황해도에서 태어난 김마리아씨 집안은 독립운동 명문가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김씨를 돌본 삼촌 김필순(41)씨가 신민회 회원인 까닭에 김씨는 어려서부터 안창호(41)·이동휘(46)씨 등 독립운동가들을 보며 자랐다고 한다. 김마리아씨의 세 고모들도 모두 민족운동에 헌신하였다. 최근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38)씨와 혼인한 이가 바로 둘째 고모 김순애(30)씨다. 김씨는 경성에서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을묘년(1915) 일본 유학길에 나섰는데, 곧 유능함을 인정받아 동경여자유학생친목회의 회장에 선출됐다. 당시 그를 보조하여 총무를 맡게 된 이가 나혜석씨다.

 


나라가 망한 뒤 조선과 일본에서 여학생들의 활약은 대단하다. 예수교 여자 선교사들에게 교육받고 구라파의 철학을 배우며 자라난 이들은 구시대 조선 사람들과는 사상이 크게 다르다. 특히 17살 나이에 유학 온 나혜석씨는 유학생학우회 기관지 <학지광>에 ‘신여성’으로서 주장을 담은 글을 여럿 발표하여 유명하다. 정사년(1917) <학지광>에 게재된 그의 글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삼종지도로만 언제까지 여자의 전생명을 삼을까요? 방구석에 들어앉아서 삼시 밥만 파먹고 그대로 문지방에서 술래잡기하다가 늙어 죽던 그때 말이지, 오늘과 같이 방에서 마루까지 걸어나와 대문까지 나온 우리로서, 평등이 어떻고 자유가 무엇이니 하는 우리로서는 이른 것보다 늦은 듯합니다. 조선 여자도 사람이 될 욕심을 가져야겠소.”

 


 




최초의 근대 여성 화가이자 작가, 여성해방론자였던 나혜석.

최초의 근대 여성 화가이자 작가, 여성해방론자였던 나혜석.



 


한 걸음 나아가 김마리아씨가 친목회장에 선출된 뒤 여자유학생친목회는 <여자계>라는 기관지도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언론, 수양, 문예 등의 내용을 두루 아우른 <여자계> 발행을 위해 김씨는 평양 숭의여학교 동창회 잡지부를 설득하여 그들이 받아놓은 발행 인가를 차용하였다. 조선 여자의 사상을 담아, 조선 여자 손으로 만드는 첫 잡지가 김씨 등에 의해 탄생하였으니 일당백 여장부들이라 할 만하다. 이처럼 당당한 조선 여자로서 여학생들이 독립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지당한 결과일 것이다. 황애시덕씨 역시 조선에 있을 때 젊은 여자들의 비밀 운동 조직인 ‘송죽결사대’를 조직하여 멀리 미국 하와이까지 회원을 둘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벌인 인물이다. 그는 작년 연말 구라파 세계대전 종식과 파리강화회의 개최 소식을 접한 뒤부터 동경 하숙집에 와 동거 중인 동생 황신덕(21)씨에게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때가 왔다. 국내에 잠입하여 할 일이 있으니 너는 여기에서 꾹 눌러앉아 공부나 착실히 해두어라”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등 거사를 일으킬 다짐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들어보니 김마리아와 황애시덕 양씨는 동경 유학생 운동을 조선에 알릴 임무를 띠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조선 유학생의 불온’을 놓고 일본 당국의 감시가 삼엄해져 조선으로 돌아갈 명분을 찾던 차, 김씨가 최근 모교인 정신여학교로부터 “귀국하여 달라”는 전보를 받았다는 소식이다. 광무황제(이태왕) 훙거 뒤 학생들이 원통함을 표하려 상복에 검은 댕기를 드리운 채 동맹휴학을 벌이고 있으니, 존경받는 선배인 김씨가 귀국하여 이를 다독여 달라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일경에 끌려갈 것을 염려한 선생들이 이를 말리면 도리어 “선생님들은 사상이 없어요”라고 반발한다니, 동경에서나 경성에서나 여학생들의 결기를 따를 이가 없을 듯하다.

 


기회를 만났으니 머뭇거릴 새가 없다. 김씨는 ‘미농지에 유학생 독립선언서를 베껴 적고, 일본인 동창생에게 기모노를 빌려 귀국 채비를 마무리하였다’고 본지에 알려왔다.2월17일 조선으로 돌아간 김마리아는 부산·대구·광주 등을 다니며 독립운동을 촉구하고 3·1운동 때 정신여학교 만세시위의 배후로 지목되어 모진 옥고를 치르게 된다. 이때 얻은 후유증으로 그는 평생 고통받으면서도 도산 안창호가 “김마리아 같은 여성이 10명 있었다면 한국은 독립이 됐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운동가로서 뜨거운 삶을 산다.》

 


 





 


△참고문헌

 


김마리아·황애시덕 신문조서,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14>(국사편찬위원회)

 


박용옥, <김마리아>(홍성사·2003)

 


여성동아 1971년 3월호 부록, <아아 삼월 : 기미년 횃불든 여인들>(동아일보사·1971)

 





 


 


▶영상 바로가기: https://youtu.be/Ate2gKfR-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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