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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③항저우·전장]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19 09:01
조회(1563)
#1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96516 (561)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③ 항저우·전장 ◆


독립운동가이자 성균관대 창립자인 심산(心山) 김창숙의 손자 김위 선생을 지난 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심산은 대쪽같은 선비 정신으로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였다.
사진설명독립운동가이자 성균관대 창립자인 심산(心山) 김창숙의 손자 김위 선생을 지난 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심산은 대쪽같은 선비 정신으로 항일 투쟁에 앞장섰던 독립운동가였다.

"독립운동하면서 가족 챙겼다는 사람? 싹 다 거짓말이오."

`아버지`라 불러보기도 전에 부친은 유해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쌀이 떨어졌다`고 알리면 가장인 조부는 "그럼 굶자"는 말만 남긴 채 돌아누웠다.

돌아누운 조부의 존함은 심산(心山) 김창숙 선생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이자, 성균관대 창립자다. 월급은 공무용으로 다 써버려 식구는 평생 배를 곯았다. 부친은 1927년, 17세 나이로 진주 시내에 항일 격문 3000장을 붙였다가 수감됐고, 훗날 충칭에서 주검으로 돌아온 김찬기 선생이다. 독립운동가 집안의 후손, 김위(80) 선생을 지난 2일 서울에서 만났다. 심산을 이해하려면 백범, 나석주, 유자명이란 이름을 통과해야 한다. 1926년, 심산은 상하이에서 백범에게 나석주를 소개받았고, 톈진으로 건너가 유자명과 나석주를 만나 의거를 계획했다. 나석주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고 자결했다. 서울 을지로에 있는 현 하나생명 본사 위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심산은 고문 이후 두 다리를 못 썼다. 벽옹(?翁·앉은뱅이 노인)`이라 자칭했다. 심산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다. 재판 당시 일본 재판관이 본적(本籍)을 묻자 "나라 잃은 백성이 본적이 어디 있느냐"며 고개를 빳빳이 든 일화는 유명하다. "조부 사상은 공산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민족이 자립해 잘 살자는 민족주의죠."

고문으로 다리를 쓰지 못하니 일찍이 청상 과부가 된 며느리 손응교 여사가 시아버지 대소변까지 받아야 했다. 어느날 심산은 며느리를 앉혀두고 담배를 가르쳤다. `대쪽`이던 조선의 유학자에게도 고통의 세월 앞에 형식(形式)은 담배 연기마냥 가벼웠을까.

"모친은 백수(白壽·99세)를 바라보면서도 하루 두 갑을 피우셨습니다. 담배 사다드리면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세월의 한이지요."

왜 심산은 성균관대를 세웠을까. "한 번은 이런 말씀을 하십디다. 자기 세대는 나라를 팔아먹고 망쳐먹은 세대이니 후대 젊은이를 길러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요." 정작 친손자 김위는 고교 2학년 시절부터 가정교사로 바깥생활을 했다. "대학 학장(총장)의 손자이고 애비 없이 살아 타인이 널 이용해먹을 수도 있으니, 아예 나가살라 하셨어요. 대입 원서비 받은 게 전부입니다."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원서를 썼더니 심산이 원서를 되찾아오라 시켰다. "너까지 철학하면 안 된다. 집안 풍비박산이 나니 착실히 기술 배워라." 조부 뜻에 따라 경기고를 졸업한 김위 선생은 서울대 조선과에 입학했다. 지금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다. "필리핀 대통령 만나 직접 만든 경비정까지 팔아먹었지···. 허허."

심산의 삶을 압축하는 상징은 `조기 한 마리`다. 대학 입학을 청탁하려 선물을 싸들고 오는 인물이 적지 않았단다. "선물 받은 조기를 조부가 밀어놓으면 어머니가 벽에 달아 놓으셨습니다. 며칠 지나 그 분이 다시 오시니 `다시 가져가오` 하시더군요." 심산은 평생 자기 집 한 채 못 가졌다. 해방 후 나라가 정해준 적산가옥을 전전했고, 성균관대 앞 명륜동 관저에선 6년 만에 쫓겨났다. 온 생이 가난의 행군이었다.

"조부가 총장 그만 두니 당장 쌀값부터 없더랍니다. 동대문시장에서 어머니가 밤새 삯바느질하며···." 어느새 여든 어르신의 두 뺨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친일은 삼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은 삼대가 망한다던가.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에게 원망은 없었을까. 나직하나 외마디 비명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건방진 생각인지 몰라도 내가 그 입장이었으면 똑같이 했을 겁니다. 사상가, 혁명가의 길을 걷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내 평생 원망은 일점(一點) 없다오···."

[항저우·전장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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