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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③항저우·전장] 전장 임정기념관은 `대한민국 유적지` 논의 진행중-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19 09:03
조회(444)
#1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96518 (133)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③ 항저우·전장 ◆


중국 전장시의 `전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사료진열관` 1층에서 백범 김구 동상이 방문객을 맞 고 있다. 백범 김구 동상이 중국 내 다른 지역의 기념관 동상과 다른 모습이다.
사진설명중국 전장시의 `전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사료진열관` 1층에서 백범 김구 동상이 방문객을 맞 고 있다. 백범 김구 동상이 중국 내 다른 지역의 기념관 동상과 다른 모습이다.

재개발을 앞둔 낡은 골목길을 걸었다.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 회족(回族)이 냉장고 하나 없는 정육점 나무도마에서 막칼로 쇠고기를 갈비째 토막 내던 참이었고, 경적을 울리며 다가온 오토바이 두 대가 매연을 뿜으며 굉음 사이로 지나갔다. 항저우에서 전장까지 300㎞를 내달린 뒤였다. 중국 설 명절 춘제를 앞둬서인지 5시간이 걸렸다. 폐허를 거닐다가 안내 간판 화살표가 멈춘 최종 목적지는 `목원소학교`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5년부터 2년간 전장에 머물렀다. 백범, 안동만, 박병강이 이곳에서 강연했다고 전장시(市)는 확신한다. 정식 명칭은 `전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진열관`이다.

마가항, 대파파항, 천세의원, 수륙사항강소여사, 수육사항공익리 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지라며 2m 가까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지도를 진열관 1층에 걸어둔 상태였다. "강소여사에서 김구를 직접 보았다. 김구는 나폴레옹식 모자를 쓰고 있었다"는 한 노인의 회고, "대파파항 1호에 물건을 보내러 갔을 때 대문이 굳게 닫혀 있고 경비가 삼엄한 것을 발견했다. 이곳에는 고려 사람(한국인)이 있는데 외부와 왕래하지 않는다"는 한 사학자의 글이 적혀 있었다.

또 진열관 정중앙 액정 화면에선 1924년생 남성의 회고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영상 속 남성은 "백범 차남 김신이 나와 중학교 동창"이라며 `김신이 부친을 이야기한 적 있느냐`는 질문엔 "아마도 수륙사항에 거주하는 것 같았다. 김신이 윤봉길 의사 사진을 보여주며 `훙커우 사건`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은, 대한민국 독립기념관 입장은 전장시와 다소 거리가 멀다. 1935년 11월 중국 전장에 임정이 자리를 잡은 건 사실이나 구체적인 장소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전장시 주장과 한국 측 주장이 지금까지 엇갈리다 보니 한국 측은 아직 목원소학교를 `공식 기념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진열관의 백범 동상이 다른 기념관과 유독 상이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진열관을 나서며 독립기념관에 연락해 전장시 주장을 문의했다. 오대록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전장 지역 향토사학자 증언을 통해 목원소학교가 임시정부가 사용했던 건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면서도 "임시정부가 중국 전장에서 구체적으로 머무른 1차 자료가 없어 정확한 지점을 비정(批正)할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독립기념관과 우리나라 학계가 손을 놓은 건 아니다. 오 연구위원은 "작년 한국독립당원이 1934년 전장 마가항 15호와 천세의원 내에 머물렀다는 1차 사료를 발굴해 확인했다. 정확한 지점을 비정하고자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임정이 전장에 머물렀다는 큰 틀 안에서 전장시와 협력해 역사적 사실의 오류 등 문제점이 생겨나지 않게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진열관 한 귀퉁이에는 1931년 퓰리처상, 193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펄 벅의 사진과 글귀가 적혀 있었다. 미국 태생으로, 선교사 부친을 따라 이곳 전장에서 자란 소설가 펄 벅에게 전장은 `중국 고향`이었다. 난징대 교수였던 펄 벅은 `한국인은 응당 자치하여야 한다(韓國人應該自治)`는 칼럼까지 쓴, 한국 독립운동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펄 벅의 문구가 선명했다. `힘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어지고, 용기는 가슴속 의지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항저우·전장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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