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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③항저우·전장] 하루 방문객 고작 30여명…항저우 임정기념관 뚝 끊긴 발길-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19 09:07
조회(416)
#1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96520 (198)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③ 항저우·전장 ◆




중국 항저우시에 위치한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저우 구지(舊地) 기념관` 전경. 항저우 임정 두 번째 청사인 `호변촌 23호`와 주변 공간을 확장해 기념관을 단장했지만, 최근 사드 사태 이후 관광객이 상당수 줄어든 상태다. 항저우 기념관 측은 한국인의 관심과 방문을 당부했다.
사진설명중국 항저우시에 위치한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저우 구지(舊地) 기념관` 전경. 항저우 임정 두 번째 청사인 `호변촌 23호`와 주변 공간을 확장해 기념관을 단장했지만, 최근 사드 사태 이후 관광객이 상당수 줄어든 상태다. 항저우 기념관 측은 한국인의 관심과 방문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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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사태 이후로 `반의반 토막`이 났어요. 방문객이 많이 줄었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둥지를 옮겼다. 일제를 피해 백범이 중국 저장성 자싱과 하이옌을 거칠 때 임시정부는 항저우로 향했다. 지난달 28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공식적인 두 번째 청사인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저우 구지(舊地) 기념관` 정문. 한산한 이유를 묻자 추이란 기념관 부관장이 "사드 사태 때문"이라며 한숨을 푹 쉬었다. "3~4년 전까지는 방문객이 북적여서 방문객 수가 한국인만 2만명을 넘겼지만 작년엔 6000명을 못 넘겼어요.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사드 사태 여파로 하루 20~30명 오는 수준이랄까…."

한때 기념관 정문을 닫기도 했다. 추이란 부관장은 "항저우는 습도가 높아 누전 위험이 늘 도사렸는데, 방문객이 없는 데다 안전이 최우선 조치여서 차라리 이참에 기념관 전기 보수공사를 하기로 하고 쉬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임시정부 요인들은 상하이 시절의 임정 문서를 바리바리 싸들고 항저우로 떠났다. 백범이 자싱, 하이옌으로 향할 때 군무장 김철은 항저우의 `청태 제2여사`에 짐을 푼다. 이후 중국 국민당은 현 기념관 위치인 호변촌 23호에 임시정부가 사용할 공간을 마련해줬다. 청태 제2여사에서 호변촌 23호로 옮긴 날짜는 특정하기 어렵지만 임정은 항저우에서 1935년 11월까지 머물렀다.

기념관 1층에 들어서니 벽면에 사진이 여럿이었다. 도지사 시절의 이낙연 국무총리, 조순 전 서울시장, 요즘 `예서 아빠`로 더 유명한 정준호 배우까지 사진이 빼곡했다. 대통령 사진은 없었다. 역대 거의 모든 대통령이 방문한 상하이 마당로 청사와 `딴판`이었다. 설치 미술가 강익중의 작품도 전시돼 있었다. 한글을 한 글자씩 여러 색깔로 새긴 글귀로, 자세히 보니 `대한민국 임시헌장`이었다. `대한민국 인민은 남녀귀천 및 빈부귀천이 없고 일체 평등하다`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1층 응접실의 하얀 벽에 걸린 사진 석 장을 바라보니 숙연해졌다. 고문 후유증으로 폐결핵에 걸려 항저우에서 1934년 눈을 감았지만 유해조차 망실된 김철, 광복을 눈앞에 두고 1943년 충칭에서 떠난 송병조, 8·15 광복 소식을 들었지만 9월 9일 눈을 감은 차리석의 증명사진이 영정(影幀)을 대신했다. 2층엔 `지난행이(知難行易)`라고 쓴 백범의 유묵 복제본이 걸려 있었다. 백범 스승 고능선이 백범에게 가르친 필생의 한마디로 `정확하게 알긴 어렵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다`란 뜻이다.

"항저우 기념관 방문이 처음이냐"고 되묻는 추이란 부관장에게 "그렇다"고 답하자 한국인에게 전해달라며 호소했다. "이렇게 잘해놨는데 안 오세요? 중국 저장성이 이곳을 성급(省級) 문화재로 지정한 건 `한국 조상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중국이 기념하고, 장소의 의미를 지켜주겠다는 뜻`이에요. 한번쯤 오세요. 양국 우호의 시작입니다."

임정 요인들이 사용했던 `오복리 2호`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 독립운동 항저우 구지`란 글자가 선명했다. 일부 건물엔 아직 사람이 사는 듯했다. 인근 건물은 `북스토어`란 이름의 동네 책방으로 사용 중이었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사흠방`으로 이동했다. 오복리가 임정 요인들의 거주지라면 사흠방은 한국독립당 사무실이었다. 골목길 외벽 곳곳에 숫자가 보였다. 34·40·41호가 한국독립당 사무실로 쓰였다고 하나 40호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독립당은 사흠방에서 잡지 `진광`을 창간했다. `조선(震)의 빛(光)`이란 뜻이었다. 현암사에서 2004년 출간된 `한국잡지백년`을 보면 `진광`에 실린 글이 인상적이다. `한국 운동의 가장 큰 혁명적 대상은 일본제국주의 세력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모든 혁명세력은 그 투쟁의 봉망(`칼날`을 뜻하는 용어)이 반일적 전선에로 집중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지하에서 쓰인 44쪽짜리 잡지는 지상의 빛을 갈망하며 새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항저우·전장 = 김유태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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