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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⑤창사] "부친은 南·北·中에서 인정한 아나키스트"-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26 10:13
조회(319)
#1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111954 (158)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⑤ 창사 ◆



싯누렇게 바랜 책이 탁자에 올려졌다. 겉표지 구석엔 `료녕인민출판사, 0.65원(元)`이라고 인쇄돼 있었다. 출간 연도는 1984년. 사반세기를 훌쩍 넘긴 고서였다. 책을 한두 장 넘길수록 울컥하는 뭔가가 목울대에 걸렸다. "조선에서, 만주에서, 씨비리(Siberia·시베리아)에서 그들은 조선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쓰러졌다. 그들은 이름 없는 어느 골짜기와 공동묘지에 누워 있을 것이나 남기고 간 정신만은…."(188쪽)

우근(友槿) 유자명(1894~1985) 작고 1년 전에 출간된 이 책은 중국에서 출간된 한국어판 `나의 회억(回憶)`이다. 지난달 30일 중국 창사에서 만난 우근 아들 유전휘 선생(77)이 "이제 한 권 남았다"며 웃었다. 난무팅 2층 회의실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후난대의 우근 흉상을 거쳐 거주지를 복원한 `유자명기념관`까지 이동하며 네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선친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습니다. 북한은 `건국 30년`이던 1978년에 `3급 국기훈장`을 부친께 수여했고요. 후난대엔 인물 동상이 3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아버지입니다."

`남북한 동시 서훈`이란 독특한 이력에 중국 최고 권위 농학자로 인정받는 우근은 정확히는 아나키즘 계열 독립운동가다. 폭력은 그에게 단지 폭력이 아닌 독립 수단이었을까.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힘의 `균형과 불균형`이란 고민이 우근의 행적에서 묻어난다.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을 같이 이끌었던 우근에게 이데올로기의 종착역은 무정부주의였다. "영화 `암살`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약산 역을 맡은 배우(조승우)를 보니 아버지가 떠올랐어요. 약산과 아버지는 같은 길을 걷던 분들이니까요. 1923년 의열단의 혁명론(革命論)을 압축한 `조선혁명선언`은 단재 신채호가 썼는데, 단재에게 선언서를 부탁한 이가 아버지였던 것으로 압니다." 일제에 폭탄을 던지며 산화한 나석주 의거를 심산 김창숙과 같이 준비한 이도 우근이었다.

저서 `나의 회억`에는 우근이 무정부주의를 선택한 이유가 자세하다. "무정부사회를 세우려 하는 것은 현실적이 못 되며 그릇된 것이다. 다만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인민을 탄압하는 당시에 국가 권력을 반대하는 것은 반일애국 행동이다."(53쪽)

우근은 왜 평생 중국에 머물렀을까. 단순한 질문에 기구한 운명의 생이 펼쳐졌다. "중일전쟁 당시 구이린에 살다가 국민당을 따라 대만으로 옮겼습니다. 부친은 농학자로도 위상이 높았으니, 대만에서 모셔간 거죠. 수년 뒤 광복을 맞아 고국으로 가고자 홍콩행 뱃길에 올랐는데, 하필 그날이 1950년 6월 24일이었어요."

때마침 한국전쟁이 터졌다. "25일 오후 5시, 홍콩 향항여관에 도착해 여권을 내밀자 접대원이 소식을 전했죠. `조선에서 전쟁이 났다`고요…." 유 선생은 당시 여덟 살이었다. 극도로 빈곤한 형편에 한국행 편도 비용도 지인들이 모아 건넨 돈이어서 갈 곳이 없었다. "아버지는 중국에서도 인정받았지만 평생 고국을 그리워했다"고 유 선생은 기억했다.

유자명기념관 마당을 유 선생과 함께 걸었다. 유자명 부자(父子)가 거주했던 곳이다. 수리 중이어서 입장하기는 어려웠으나 내부를 엿보니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포도알이 유리병에 한가득이었다. 충주의 한 간이농업학교 선생이던 우근은 3·1운동 후 상하이로 망명해 권총을 손에 든 독립운동가로 살았다. 광복 후엔 다시 본래 자신으로 돌아와 평생을 바쳐 포도와 벼를 연구했다. `포도를 든 혁명가`이자 `권총을 쥔 농학자`였던 셈이다.

"포도에 관해 부친과 대화한 것이 기억난다"는 유 선생도 아버지 뒤를 이어 후난대 건축학과 교수로 학자의 길을 걷다 정년 퇴임했고, 누나 유득로(80)는 베이징과학기술대 재료물리학과에서 퇴임한 명예교수다. 우근은 한국에선 이난영과 혼인해 슬하에 기용·기형 형제를 뒀고, 중국에선 유칙충과 혼인해 득로·전휘 남매를 뒀다.

■ 공동기획 : 매일경제신문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창사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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