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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⑤창사] 밀정의 총탄 가슴에 박힌 채…기적적으로 살아난 백범-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26 10:14
조회(278)
#1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111953 (105)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⑤ 창사 ◆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이 사용한 건물이자 조선혁명당 본부였던 난무팅의 외부 모습. 1938년 5월 7일, 이 건물 2층에서 백범·현익철·유동열·지청천은 밀정의 총을 맞는다. 난무팅은 2017년부터 내부 수리 중이어서 출입이 불가능하지만 현장 관계자의 허락을 얻어 내부 취재가 가능했다.  [창사 = 이승환 기자]
사진설명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이 사용한 건물이자 조선혁명당 본부였던 난무팅의 외부 모습. 1938년 5월 7일, 이 건물 2층에서 백범·현익철·유동열·지청천은 밀정의 총을 맞는다. 난무팅은 2017년부터 내부 수리 중이어서 출입이 불가능하지만 현장 관계자의 허락을 얻어 내부 취재가 가능했다. [창사 = 이승환 기자]

난징에서 고속철을 타고 다섯 시간을 남하하니 창사였다. 역전엔 짙은 스모그, 사람의 그림자뿐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의 거주지이자 조선혁명당 본부로 사용한 건물이었던 `난무팅(楠木廳)`으로 먼저 향했다. 백범이 가슴에 총탄을 맞 고 쓰러진 장소로, 한자 발음 그대로 `남목청 사건`으로 잘 알려진 자리다. 난무팅 주변 일대가 `문화의 거리`로 조성돼 2017년부터 수리 중이고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른다는 비보는 국외 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터.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정문은 잠겨 있었다. 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후문을 밀자 덜컥 열렸다. 고개를 젓는 관리인에게 명함을 내밀며 취재를 요청했더니 이례적으로 출입이 허용됐다. 난무팅 2층 회의실로 단숨에 올랐다. 나무계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주변은 고요했다. 정확히 81년 전 봄날의 이곳은 적어도 네 발의 총성으로 꽤 소란스러웠을 것이었다. 백범의 한국국민당, 조소앙의 재건 한국독립당, 지청천의 조선혁명당은 창사 시절 3당 합당을 추진했다. 민족운동 진영이 힘을 합치자는 제안이었다. 1938년 5월 6일, 남목청 2층 회의실에 괴한이 달려들어와 권총을 난사했다. 첫 번째 총탄이 백범 가슴에 정확하게 박혔다. 현익철, 유동열, 지청천을 향해 다음 방아쇠가 당겨졌다. 독립운동가들의 살을 찢는 총탄의 주인은 이운환이었는데 훗날 김구는 `백범일지`에 이렇게 남겼다.


`난무팅 사건` 직후 독립운동가들이 실려온 상아의원의 현재 모습. 인구 700만명의 중국 창사시 최대 규모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남목청 사건으로 현익철은 절명했고 백범은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백범은 가슴에 총알을 제거하지 않은 채 퇴원한다. [창사 = 이승환 기자]
사진설명`난무팅 사건` 직후 독립운동가들이 실려온 상아의원의 현재 모습. 인구 700만명의 중국 창사시 최대 규모 종합병원으로 성장했다. 남목청 사건으로 현익철은 절명했고 백범은 기적적으로 소생했다. 백범은 가슴에 총알을 제거하지 않은 채 퇴원한다. [창사 = 이승환 기자]

"이운환은 필시 강창제와 박창세 양인의 악선전에 이용된 나머지 정치적 감정에 충동되어 남목청 사건의 주범이 된 것이었다." 윤대원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박창세는 일제의 밀정이었다.

정문 방향 계단으로 내려서자 일본군 공습을 피해 숨던 지하 방공호가 1층 응접실 지하로 연결돼 있었다. 사람 한 명도 지나가기 버거워 보일 만큼 좁았다. 당시 위태로운 형편을 짐작케 했다. 창고 한쪽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창사 활동 구지(舊址)`라고 적힌 하얀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슬쩍 바라보니, 한눈에 봐도 거미줄과 먼지가 뒤엉킨 채였다. 난무팅이 일반인에게 재개관할 땐 말끔하게 씻겨져 2년 전처럼 건물 외벽에 걸릴, 한국의 다른 얼굴이었다.

가슴에 총탄이 박힌 백범은 어떻게 일지를 남기고, 훗날 어떻게 광복을 맞았을까. 병원 도착 후 현익철은 절명했고 백범도 처음엔 가망이 없었다. "의사가 나를 진단해 보고는 가망이 없다고 선언하여, 입원 수속도 할 필요 없이 문간에서 명이 다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고 백범은 썼다. 몇 시간이 지나 백범은 기적적으로 소생한다. 총탄은 심장 곁을 벗어났고 며칠 뒤 심지어 오른쪽 갈비뼈 옆으로 옮겨갔다. 백범은 수술조차 받지 않고 걸어서 퇴원했는데, 환국 후 백범은 이렇게 말했다.


가슴에 총탄 자국이 선명한 백범 김구(맨 오른쪽)의 병상 사진.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서영해 선생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최근 발견된 진귀한 사진이다. [사진 제공 = 부산시립박물관]
사진설명가슴에 총탄 자국이 선명한 백범 김구(맨 오른쪽)의 병상 사진.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서영해 선생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최근 발견된 진귀한 사진이다. [사진 제공 = 부산시립박물관]

"내 심장에는 조선놈이 쏜 왜적의 탄환이 아직도 박혀 있소."

백범이 실려갔던 상아의원으로 향했다. 병원 주차 자리를 몰래 팔려는 사설 여리꾼이 상당수일 정도로 정문은 혼란스러웠다. 백범이 총탄을 맞 고 실려온 4층짜리 상아의원 본관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 출입구 오른쪽 주춧돌에 새겨진 `중화민국사년시월십육일립(中華民國四年十月十六日立)`을 토대로 헤아려 보니 1915년 완공된 건물이었다.

리샤쉐 상아의원 사무국장은 "한국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 선생이 우리 병원으로 실려왔다가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 한쪽에 방치됐다가 극적으로 살아난 사실을 직원들도 안다"며 한국에서 온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상아의원에서 백범이 가슴을 열어젖히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자 "맨 왼쪽 사람은 우리 병원의 옛 원장"이라며 "병원 자료실에도 없는, 처음 보는 사진"이라며 놀라워 했다. 상아의원은 인구 700만명인 창사에서 가장 큰 병원이다. 상아의원의 상(湘)은 이곳 후난성을 의미하고, 아(雅)는 미국 예일(`YA`LE)대의 첫 글자 음역이다. 한 세기 전 최고의 병원으로 백범이 실려온 것이다. 중국 국민당 장제스의 도움이 컸다. 당시 한커우에서 중일전쟁 중이던 장제스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전문을 보냈고, 후일 치료비도 보내며 우의를 확인했다고 전해진다.



병실은 4층이었지만 어느 병실인지는 특정 불가했다. 외관과 증축 공사로 건물이 공사 중이어서 출입하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백범이 회복을 위해 걸었던 외부 정원은 흔적이 여전했다. 아름드리 나무 몇 그루가 4층 병원 건물 키마냥 우뚝 솟아 환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베니어판으로 막아둔 구도를 보니 수십 년 묵은 정원은 곧 헐릴 듯했다.

창사 임시정부 청사가 있던 서원북리(西園北里)로 길을 틀었다. 8개월간 사용한 청사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만 할 뿐인데 현재 독립운동가와 창사 현지 전문가 의견이 달라 정확한 장소를 비정하지 못하는 상태라 했다. 지금은 후난성 교통설계원 관저로 쓰인다는 서원북리 아파트에는 흐린 날씨에도 빨래가 나부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표식은 한 글자도 없었다.

[창사 = 김유태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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