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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 잊힌 독립운동 사적지] 임정 첫 청사 있던 `서금2로`엔 요란한 경적소리만-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2-26 10:16
조회(1509)
#1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115294 (531)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




국호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청사 건물이 위치했던 중국 상하이시의 `서금2로`에서 만들어졌다. 현재 해당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는 상태다. 지난달 25일 답사한 서금2로에는 대한민국 국호 수립과 관련된 어떠한 표지도 발견할 수 없었다.
사진설명국호 `대한민국(大韓民國)`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청사 건물이 위치했던 중국 상하이시의 `서금2로`에서 만들어졌다. 현재 해당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는 상태다. 지난달 25일 답사한 서금2로에는 대한민국 국호 수립과 관련된 어떠한 표지도 발견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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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정치적이다. 방문하거나 추억하는 행위만으로 공간은 의미라는 힘을 얻는다. 때로 변화하도록 때로 저항하도록, 실천과 결의의 순간을 공간은 우리에게 건네기도 한다. 공간은 그때 단순히 과거를 품은 환영(幻影)만이 아니라 각성의 자리로 탈바꿈한다.
오성륜·김익상 의사는 1922년 상하이 와이탄공원 인근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를 처단하는 의거를 감행했다. 현재 이곳에는 중국 상하이시의 `인민영웅기념탑`이 들어서 있지만 이곳에서 한국의 항일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답사한 와이탄공원.
사진설명오성륜·김익상 의사는 1922년 상하이 와이탄공원 인근에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를 처단하는 의거를 감행했다. 현재 이곳에는 중국 상하이시의 `인민영웅기념탑`이 들어서 있지만 이곳에서 한국의 항일 독립운동가를 기억하는 이들은 드물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답사한 와이탄공원.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매일경제신문이 지난 1·2월 두 번에 걸쳐 중국 내 대한민국 독립운동 사적지를 답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상하이에서 광복 소식을 들었던 1945년 충칭까지, 총 이동거리 3000㎞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란 제목으로 연재보도 중인 내용 가운데 간판 하나 달지 못한 채 잊히던 대한민국의 또 다른 과거를 한자리에 모아봤다. 홍소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추진위 자료실장 도움으로 현판 하나 없는 유적지를 걷고 느끼며 대한민국의 옛 얼굴을 확인했다.

황푸강이 내려다보이는 상하이 `황포탄 의거지`가 첫 목적지다. 새로 건립된 데크에 서면 상하이 랜드마크 둥팡밍주(동방명주)와 상하이타워가 강 건너 푸시(浦西) 방향으로 올려다보인다. 세 개의 소총을 맞댄 형상인 인민영웅기념탑이 우뚝해 경건해진다. 한국 독립운동사를 알리는 표식은 없을지언정 100년 전 황포탄 의거지는 약산 김원봉이 이끌던 의열단의 오성륜·김익상이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를 저격한 현장이다. 오성륜의 권총은 빗나가 다나카 뒤의 한 영국 부인을 절명시켰고, 김익상의 폭탄은 던져졌으나 접선 문제로 결국 터지지 못했다. 1932년 윤봉길 의거에 앞서 꼭 10년 전에 거행된 의거를 기억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혁명의 순교자를 기리는 중국인의 탑 아래에서 목숨을 내놓고 독립을 쟁취하려던 두 한국인에게 묵념이나마 올려보자.

`서금2로`도 간판 하나 없기는 매한가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최초 수립된 장소를 우리는 아직 못 찾았다. 서금2로에서 정확한 위치를 비정하지 못하는 현실이 더 안타까운 이유는 이곳에 위치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서 국호 `대한민국(大韓民國)`이 결정돼서다. `황제의 나라(帝國)`에서 `백성의 나라(民國)`로 바뀐 결정적인 장소지만 서금2로에는 아무것도 없다. 대략 500m 길이의 4차선 도로는 중국의 여느 거리와 엇비슷하다. 기자가 방문했을 땐 춘제를 앞두고 금빛 글씨가 쓰인 붉은 풍선을 들고 오토바이로 지나는 사람들, 끊임없이 울리는 경적 소리를 못 들었는지 무단횡단을 하는 중국인으로 사위가 어지러웠다. 서금2로 옛 이름인 김신부로의 22호(號)를 학계는 첫 청사로 보지만 이마저도 확실치 않고, 두 번째 청사로 알려진 하비로 청사도 아직 불확실한 상태다.


한국 독립운동 집회장소로 쓰인 `삼일당` 옛 터. 지난달 25일 방문해보니 당시 건물은 헐렸고, 현재는 낡은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현재는 1층에 오리고기 요릿집으로 사용중이다. 3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다.
사진설명한국 독립운동 집회장소로 쓰인 `삼일당` 옛 터. 지난달 25일 방문해보니 당시 건물은 헐렸고, 현재는 낡은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현재는 1층에 오리고기 요릿집으로 사용중이다. 3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이다.

`삼일당(三一堂)`은 상하이 내 한인들의 종교활동 공간이자 독립운동 집회장소로 쓰였다. 건물에 도착해 둘러보자 매우 허름한 오리고기 요릿집이 정중앙에 입점해 있었고, 2층에는 사람이 사는 낡은 주택 같았다. 고작 3층 건물이지만 주상복합 건물이다. 당시 상하이로 망명한 한인 중에는 기독교 신도가 상당수였다고 한다. 사거리 맞은편 건물이 스테인드글라스인 까닭에 어느 건물이 맞는지를 두고 헤맸으나 지번을 확인한 뒤 오리고기 요릿집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감리교 계열의 목사가 지었다고 하는 이 건물은 1917년에는 소학교로 쓰였고 이후 다른 집회장소인 모이당(慕爾堂) 증축 비용을 마련하고자 매각됐다. 망명한 교인들이 숨죽여 몰려들었을 이곳에선 흔적조차 없는 장소의 의미를 곱십게 된다.


약산 김원봉을 따르던 독립운동가들이 머물렀던 호가화원. 경관이 지극히 빼어났다.
사진설명약산 김원봉을 따르던 독립운동가들이 머물렀던 호가화원. 경관이 지극히 빼어났다.

상하이에서 벗어나 임시정부 루트를 떠돌다보면 난징의 `호가화원`도 기억에 선명히 남을 빼어난 장소다.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한인특별반 졸업생 가운데 약산 김원봉을 따르던 학생들과 민족혁명당 인사들이 거주했다. 내부에 들어서면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고풍스러운 정자 10여 개가 빼어난 조경과 어우러져 방문객을 기다린다. 독립운동 유적지란 이유가 아니더라도 방문객은 기가 막힌 경관에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약산 김원봉과 김규식이 함께 생활했던 장소라지만 대한민국 독립운동 유적지란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지도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하니, 난징에 오랜만에 온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현재 난징대학으로 개명한 과거 `금릉대학`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다녔던 학교다. 기자가 답사한 날에는 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고자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사진설명현재 난징대학으로 개명한 과거 `금릉대학`은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다녔던 학교다. 기자가 답사한 날에는 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고자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난징대학` 캠퍼스도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페이지로 기억돼야만 한다. 현재의 난징대는 과거 금릉대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다녔던 대학이 금릉대였다. 금릉대에 재학했던 주요 독립운동가로는 여운형, 조동호, 김마리아, 서병호 등이 있었다. 여운형은 영문학을, 조동호는 중국문학을 전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자가 방문했던 날에는 마침 졸업사진을 찍으러 온 중학생 1000여 명으로 정문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학생들이 번갈아 줄지어 오르고 있는, 대강당으로 쓰였다는 예당(禮堂)의 계단을 쳐다보니 대한민국의 독립을 상상했을 누군가의 표정들이 떠올랐다.

[상하이·난징 = 김유태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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