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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⑥광저우] 2016년 발견한 광저우청사…임정 27년史 `빈칸` 채웠네-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4-14 22:55
조회(2730)
#1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9/03/125409/ (1019)

일반 가정집 된 `동산백원`
1세기前 모습 그대로 보존

韓人 우대한 인근 중산대학
독립운동가 배움의 산실로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⑥광저우 ◆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38년 광저우에서 두 달간 청사로 사용했던 동산백원의 현재 모습. [광저우 = 김유태 기자]
사진설명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38년 광저우에서 두 달간 청사로 사용했던 동산백원의 현재 모습. [광저우 = 김유태 기자]

슬슬 빨래에 무감각해질 법도 했는데, 이곳 빨래만큼은 처연하게 느껴졌다. 수십 년간 한자리를 지켰을 아름드리 나무에 두 채의 `쌍둥이 건물`이 기댄 채 서 있었다. 광저우시 동산구의 휼고원로 12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광저우에서 청사로 사용한 동산백원(東山柏園)이다. 지난달 12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저우 청사의 정문에 도착했다.


강산이 여덟 번 바뀌도록 도통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광저우 청사는 2016년 9월에야 위치를 확정하는 단계에 접어들며 위치 확정의 급물살을 탔다.

멸실된 줄 알았던 동산백원은 독립기념관과 주광저우 총영사관이 광저우시 문화국과 협조해 위치를 재확인하며 임시정부 27년사의 빈칸을 채워 넣었다고 전해진다. 모습을 드러낸 청사 앞에서 당시 학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야 말았다. 한 세기 전 모습 그대로, 보존이 완벽해서였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일반 가정집이지만 담장 안까지는 출입이 자유로웠다. 경희대 본관을 떠올리게 만드는 그리스식 기둥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거주민 빨래가 입구 천장에 빼곡해 건물 외관은 한눈에도 거룩함과 거리가 멀었다. 낡은 자전거, 화분 따위가 마당에 놓여 있었고 겨우내 쓸지 않은 낙엽도 난잡했다. 대한민국과 관련된 표식은 어디에도 없었고, 방문객도 입주민도 눈에 띄지 않았다.

간판 하나 내걸지 못한 임시정부 청사일지라도 이곳과 관련된 기록은 여럿이다. `백범일지`에는 "대가족 일행보다 하루 먼저 출발하여 광주에 도착하였다. 동산백원을 임시정부 청사로 하고…"(도진순 역 2005년판, 373쪽)라는 대목이 나오고,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도 회고록 `임시정부의 품안에서`에 "임정은 우리가 묵은 여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이위안(栢園)이라는 별장을 세 내어 사무실로 썼다"(110쪽)고 남겼다.

임시정부는 광저우에서 두 달 만에 보따리를 싸야 했다. 전선이 확대돼 그해 9월 류저우로 이동하는 게 불가피했다. 환언하면, 중국은 폭탄이 쏟아지는 전시에도 임시정부를 도왔다는 얘기다.


1921년 예관 신규식 선생이 중국 국민당 지도자 쑨원과 회담 후 접견의식을 치른 동교장은 지금 광저우시의 운동장으로 사용 중이다. 한국 임정과의 관계를 적었던 입구의 간판은 현재는 모습을 감췄다.
사진설명1921년 예관 신규식 선생이 중국 국민당 지도자 쑨원과 회담 후 접견의식을 치른 동교장은 지금 광저우시의 운동장으로 사용 중이다. 한국 임정과의 관계를 적었던 입구의 간판은 현재는 모습을 감췄다. "작년 리모델링 당시 바뀌었다"고 현지 관계자가 귀띔했다. [광저우 = 김유태 기자]

홍소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추진위 자료실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두 달 만의 이동은 중일전쟁으로 상황이 긴박했음을 일러준다. 광저우 청사는 가까이에 국공합작을 결의했던 중국 공산당 제3차 전국대표대회 유적지가 있어 두 나라의 역사를 함께 볼 수 있는 의미 깊은 곳"이라고 강조했다.

쑨원의 호를 따 설립된 국립 중산(中山)대학으로 이동한 뒤 석배교를 찾았다. 한인 청년들은 중산대에 대거 머물렀는데 그 이유는 쑨원이 지시한 우대정책 덕분이었다. 한인 재학생은 학비 전액 면제, 장학금·생활비 지급이란 혜택이 주어졌다. 한중 양국의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에 기여할 한인 인재를 양성하려는 목적이었다. 중산대 석배교 앞에 서니 `학문적 사고`를 강조하는 쑨원 글귀가 거대한 크기로 남아 있었다.

중산대 출신 한국 청년으로는 안중근 의사의 조카 안우생이 대표적이다. 한국어를 제외하고 러시아어부터 에스페란토어까지 `5개 국어`를 구사한 안우생은 1939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고 백범의 대외 담당 비서로 헌신했다. 백범이 암살당한 뒤 월북해 조명을 덜 받은 인물이다. 그들도 소리없는 독립운동가였다.

광저우의 유적지로 동교장(東較場)도 빠뜨릴 수 없다. 임시정부 국무총리였던 예관 신규식이 1921년 쑨원과 회담을 나누며 정식 외교 사절로 접견의식을 치른 장소다.


지금은 2만7000명 수용이 가능한 광저우시 체육장으로 바뀌었다. 입구 좌측 벽에 동교장의 역사를 적은 안내 간판이 남아 있었다지만 이날은 전혀 엉뚱한 간판이었다. 고개를 갸우뚱 저으며 실내 탁구장 관리인에게 물으니 "지난해 리모델링하며 그 간판도 바꿨다"고 대답했다. 저항하지 않는 한, 망각은 늘 기억을 이긴다.

■ 공동기획 : 매일경제신문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광저우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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