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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⑩충칭 (上)] 日폭격맞 고…불타고…충칭 청사 4곳 옮겨가며 고난의 5년-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6-14 10:33
조회(3311)
#1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9/03/182719/ (1461)
◆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 / 독립견문록, 임정을 순례하다 ⑩충칭 (上) ◆


`연화지 청사`로도 알려진 `충칭 임시정부 구지 진열관`의 모습. 임정의 충칭 네 번째 청사이자 마지막 청사다. 1945년 11월 임정 요인들이 이 계단에서 귀국 전 기념촬영을 했다. [김유태 기자]
사진설명`연화지 청사`로도 알려진 `충칭 임시정부 구지 진열관`의 모습. 임정의 충칭 네 번째 청사이자 마지막 청사다. 1945년 11월 임정 요인들이 이 계단에서 귀국 전 기념촬영을 했다. [김유태 기자]

거짓말 같은 교통체증에 혀부터 내둘렀다. 중국의 전시(戰時) 수도였던 충칭에 도착한 직후였다. 막혀도 너무 막혔다.

희뿌연 공기가 내려앉은 양쯔강을 우측에 끼고 강변도로에 멈추니, 왼쪽에 웬 지하동굴 하나가 눈에 띄었다. 1940년대 사용된 실제 방공호였다. "중일전쟁 당시 저기서 많이 죽었어요. 공습 경보가 울려서 저기로 피했는데 환기시설이 고장 나 숨 막혀 죽고, 나가려다 밟혀 죽고…. 참 슬픈 과거죠." 방공호를 개조한 `훠궈 맛집`이 요즘은 유행이라지만, 이선자 전 충칭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부관장의 기막힌 소개처럼 충칭의 첫 모습은 왠지 슬프게 다가왔다. 총인구 3800만명, 하루 순증 인구만 1600명이다. 충칭 시민 대다수에겐 `지독한 불평등`이 삶의 기반이다. 마이바흐와 포르쉐 사이에서 걸인과 악사가 동전을 구걸하는 도시. 이제 구걸마저도 불법이란다.

한 세기 전 상황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주택난이 극도에 달하여 여름에는 길거리에서 자는 노숙자가 태반이었다.` 충칭에 도착한 뒤 남긴 백범의 글이다. 중국 국민당 장제스 정부를 따라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충칭에 도착했다. 우한·난징과 함께 `3대 화로(火爐) 도시`로 꼽히는 충칭에서 임시정부는 양류가, 석판가, 오사야항을 거쳐 연화지 청사까지 4곳의 청사를 썼다. 임정은 양류가 건물이 일제 폭격에 무너지자 석판가로, 여기도 화재로 전소되자 오사야항으로 옮겼다. 오사야항은 폭격으로 가옥을 재건했으나 공간이 좁아 결국 연화지 38호로 옮겼다. 충칭 연화지 청사는 흔히 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다. 연화지 청사는 보존돼 있지만, 오사야항 청사는 이제 옛 자리만 알 수 있다. 오사야항 청사 터로 방향을 잡았다.

주상복합 아파트 토목공사가 한창이었다. 오사야항 청사가 있었던 정확한 위치에는 컨테이너 가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공사장 인부들의 승용차로 꽉 차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인부들에게 물으니 중학교와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했다. 공사장 멀리 언덕 하나가 보였다. 멀지 않은 위치의 연화지 청사였다.



연화지 청사, 오사야항 청사, 이어 그사이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건물까지 모아 `1940년대 거리`를 조성하려던 충칭시 계획은 실현 불가능한 옛말이 됐다. 광복군 총사령부 건물이 원래 자리에 복원된 데다 이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한때 검토됐던 저 계획은 무산됐다. "오사야항 청사는 언젠가 복원될 겁니다. 터를 아니까요.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요."

`임정 3000㎞ 순례`의 마지막 종착지, 연화지 청사로 향했다. 1945년 1월부터 그해 11월 환국할 때까지 사용된 임정 최후의 청사다. 정문을 오래 쳐다봤다.

`부정시림국민한대(府政時臨 國民韓大).` 막상 도착하니 수차례 봤던 모습인데도 정문 간판은 익숙하지 않았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읽어야 한다. 공식 명칭은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 진열관`이며 사진에서 보는 느낌과 달리 정문 앞은 협소하다. 기념 사진을 찍을 각도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비좁다.

정문에 들어서면 다소 얘기가 달라진다. 한때 70칸짜리 건물이던 위용을 자랑하듯 가파른 계단 양옆으로 다섯 동의 건물이 우뚝했다. 충칭의 `바로 그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1945년 11월 3일 임정 요인들이 환국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던, 충칭 임정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다. 계단 수를 세어 보니 39개. 맨 위 건물의 판공실과 집무실부터 살펴봤다.

백범 김구의 판공실엔 검은 두루마기가 걸려 있었다. 홍소연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자료실장은 "저 방에서 김구 선생이 전구에 양말을 끼워 꿰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차리석 선생 방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출간한 `차리석 생애와 독립운동`이란 제목의 책도 책상에 놓여 있었다. 한 생의 과거는 한 권의 책으로 꿰매져 그 자리에서 묵묵히 시간을 증거했다.

파란 조끼를 입은 통역 가이드에게 물으니 마침 한국 청년이었다. 대구가 고향이라는 대학생 이성덕 씨는 교환학생으로 뽑혀 충칭에 왔고, 최근 지인 소개로 이곳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한국인이 주로 찾느냐`고 묻자 이성덕 씨는 "어제 제가 안내한 팀은 모두 일곱 팀으로, 그중 중국인이 네 팀이었다. 중국인도 상당수"라고 답했다. `타지에서 고생이 많다`고 전하자 "아직 멀었다. 더 힘들 정도로 방문객이 북적이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씨익 웃었다.

믹스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긴 이야기를 나누려는데, 한 무리의 방문객이 정문에 들어섰다. 계단을 내려서며, 어느 나라 사람인지 유심히 쳐다봤다.

[충칭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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