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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독립견문록 ⑩충칭 (下)] "통일된 나라만 생각한 祖父, 가묘라도 써달라 청원했는데…"-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6-17 10:45
조회(3699)
#1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9/03/192322/ (1541)

임정 부주석 우사 김규식, 친손녀 김수옥 여사 인터뷰

배고파 벽지 뜯어먹던 아이가
언어의 천재돼 임정외교 앞장
납북자 낙인찍혀 대접 못받아
잊힌 사저 삼청장 복원 절실해


 


 


 


김규식 손녀 김수옥 여사가 무후선열제단에 놓인 조부 위패를 쓰다듬고 있다. [이승환 기자]
사진설명김규식 손녀 김수옥 여사가 무후선열제단에 놓인 조부 위패를 쓰다듬고 있다. [이승환 기자]조선(朝鮮)에 도착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1859~1916)가 방문을 열었을 때, 네 살배기 남아는 벽지를 뜯어 삼키려던 참이었다. 너무, 너무 배고파서였다. 역적으로 몰려 유배를 떠난 아비의 어린 자식을 돌보는 친척은 바이 없었고, 모친은 진즉에 이승을 떠난 뒤였다.

파란 눈의 이방인이 가슴으로 키운 아이는 놀랍도록 명석했다.


미국 프린스턴대 영문학 석사 학위를 받던 때가 1904년, 고작 스물세 살이었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러시아어, 독일어, 라틴어까지 구사하는 언어의 천재. 조국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한 문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던 1919년 봄, 그는 한국 독립운동사에 별이 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 우사(尤史) 김규식 선생 얘기다. 우사의 손녀 김수옥 여사(76)를, 조부의 위패 하나만 허허롭게 모셔진 서울 국립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서 지난 22일 만났다.

"우리 집은 신당동, 할아버지 사저는 삼청장(三淸莊)이었어요. 집에 오신 조부가 반가워 뛰어가다 자전거에 치여 이마를 다쳤어요. 이게 당시 생긴 상처예요. 할아버지께서 넘어진 절 붙들고 걱정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이마를 되짚으며, 유년의 기억으로 열린 대화는 파리강화회의로 이어졌다. "그땐 상하이에서 파리까지 42일이 걸렸답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극동 피압박 민족대회`가 열린다니 밀정의 급습을 우려한 할아버지가 영하 20도의 노숙도 견디셨어요. 스스로 고난을 택하신 거죠."

우사는 당대 최고의 영문학자였다. 쓰촨대, 난징대, 푸단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월급 전부를 독립운동에 쏟아부어 정작 집안은 가난했다. "권력욕 없고 순수하게 나라를 사랑한 분이죠. 교수였던 분이 구멍 난 양말 신고 다니셨으니…. 통일된 나라만 생각하셨던 분인데…."

명징한 기억이 탁자에 놓였다. 우사가 대접받지 못한 통한의 이유는 6·25전쟁 당시 납북 때문이다. "전쟁 와중에 삼청동에 갔는데 친척 분이 `집에 돌아가라. 결코 뒤돌아보지 마라. 이 길로 쭉 가라`고 했어요. 9·28 수복 전후로 기억해요. 우사께서 납북된 날이었죠."

납북 독립운동가들의 위패가 무후선열제단 왼쪽 귀퉁이에 모셔져 있었다. 조소앙, 박열, 김붕준, 엄항섭 선생 등 대략 15인쯤이었다. "위패를 모실 때 가묘(假墓)라도 써달라 청원했는데, 결국 이것뿐이네요." 그는 조부의 위패를 오래 닦았다.

삼청장은 우사의 사저로 백범 경교장, 우남 이화장과 함께 `3영수` 사저의 한 축을 이룬다. 2007년 국고로 귀속되며 주인이 두 번 바뀌었고, 지금은 청와대 경호실이 쓴다.


"삼청장은 완전히 망각됐습니다…. 사적으로 보존된 이화장(제497호), 경교장(제465호)과 삼청장은 대조적이에요. 삼청장은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의 산실을 복원하는 의미도 큽니다."

무후선열제단에서 나오는 길, 우측 봉분 사이에 빈 터가 눈에 띄었다. 현충원에 묻혔다가 후기 친일 행적이 드러나며 파묘·이장된 자의 뒷모습이었다. 무후선열제단에 고작 이름 석 자 적힌 손바닥 크기 위패만 남기고 쓸쓸히 사라진 선열 수십 위(位)와의 묘한 갈림길이었다.

우사의 길과 우리의 길은 얼마나 같고 또 다를 것인지.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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