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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친일 단죄 막은 이승만이 '국부'라니…어른께 면목없다" -머니투데이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5-08-18 13:56
조회(7181)
#1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5081314435256013&outl… (1669)









"친일 단죄 막은 이승만이 '국부'라니…어른께 면목없다"
김정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은 헤어진 지 수십년도 지난 아버지와의 일화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껏 써온 회고록은 가족에게 물려주는 글이기도 하다"며 "내 글이 혼란스러운 지금의 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이정호 인턴기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된 '아버지'는 임시정부 일을 마치고 한 달에 한 번 집에 돌아올 때마다 밀린 빨래를 하느라 바빴다. 아버지는 한 손에 우리 남매가 입고 난 옷가지를, 다른 한 손엔 다섯 살 배기 아들인 '내' 손을 감싸쥐고 양쯔강으로 향했다. 나는 아버지가 빨래를 하는 동안 강가를 휘젓고 뛰어놀았다. 그러다 지치면 빨랫감 옆에 쭈그리고 앉아 아버지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아버지 코 끝에는 항상 말간 콧물이 이슬처럼 맺혀 있었다. 철없는 다섯 살 개구쟁이 눈에도 아버지의 옆모습이 그렇게 측은해 보일 수가 없었다.

김정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80)은 70년도 더 된 1939년 어느 날의 장면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중국 충칭 부근 양쯔강 가에서 코를 훌쩍이던 김 부회장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김상덕(1891~납북) 선생이다.

그에게 부친의 존재는 명예이자 아픔이다. 김상덕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학무부 차장, 문화부장 등을 역임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했으나 6·25전쟁 때 납북됐다. 김 부회장은 아버지가 북으로 넘어갔다는 이유로 연좌제를 적용받아 수년 간 막일을 전전하는 고초를 겪었다.

지난 11일 서울 중구의 임시정부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난 김 부회장은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없다"는 말을 건네며 정면을 응시했다. 두 시간의 인터뷰 동안, 주름진 얼굴에 박힌 두 눈이 형형했다.

"광복을 맞은 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엇 하나 변한 게 없습니다. 답답한 일이에요. 특히 친일파 청산이 물거품이 되면서 민족정기가 바로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일제로부터 혜택을 받았기에 권력을 쥐었고, 부를 축적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아직까지 득세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해마다 이 맘때 쯤이 되면 어른들에게 송구한 마음이 들뿐, 소회의 여유를 가질 겨를이 없습니다."

김 부회장의 부친인 김상덕 선생의 공적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친일파 청산을 위해 결성된 '반민특위'다. 부친은 초대 반민특위 위원장을 맡았다. 그 때 반민특위가 잡아들였던 이들은 '화신 재벌' 박흥식, '친일 경찰' 노덕술 등 굵직한 인물들이다.

김 부회장은 반민특위가 해체된 원인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꼽았다. 이 전 대통령은 노덕술 등 친일 인사를 빼내기 위해 김상덕 선생에게 '감투'를 제시하는 등 온갖 회유와 협박을 펼쳤다.

"1949년 5월 하순 경, 우리 집에 은밀한 연락이 왔습니다. 대통령이 반민특위 관사를 방문하겠다는 일방적 요청이었죠. 아버지는 전화를 받자마자 급히 식구들을 불러 모아 별도 연락이 있을 때까지 각자 방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고 단속했습니다. 늦은 밤 이 대통령이 조용히 나타났고, 아버지는 독대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방안에 갇혀 있었으니 당시 일을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아버지의 수행비서 말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노덕술을 비롯한 친일 매국 군경을 풀어주는 대신 아버지 머리에 '감투'를 씌워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김 부회장은 "이 대통령이 부친과의 담판에 실패하자 회유에서 무력 행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같은 해 6월 6일 경찰은 반민특위 본부를 습격해 모든 조사 서류를 압수했고,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대거 붙잡힌 일명 '국회프락치 사건'으로 위원회는 힘을 잃었다. 결국 김상덕 선생은 집행위원 전원과 함께 집행위원직에서 사퇴했다.









"친일 단죄 막은 이승만이 '국부'라니…어른께 면목없다"
김정륙 부회장은 "지금 세운 임시정부기념사업회는 '사단법인'"이라며 "이 나라의 초석이 된 임시정부를, 지금의 정부가 잊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지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을 가리키며 "후손이 잊지말아야 할 이 나라의 보배"라고 칭했다. /사진=이정호 인턴기자



"이 대통령이 친일파 인사를 원했던 것은 자신을 뒷받침 할 사람들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오래하다 보니 국내 지지 기반이 부족한 반면 임시정부는 거대한 민심을 얻고 있었고, 그 가운데엔 김구 주석이란 거대한 뿌리가 박혀 있었죠."

이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힘을 실어줄 유일한 세력, 친일과 손을 잡았다는 것. 이에 김 부회장은 일부에서 내세우는 '이승만 국부(國父)론'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이 대통령은 일제의 압력에 해외로 떠난 만주 동포들이 입국수속 서류 국적란에 '대한민국'이라고 쓸 때도 '일본' 국적으로 해외를 오간 사람입니다. 기록을 찾아보면 이승만이 친일행각을 벌였다는 사실도 드러납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1919년 미국 하와이에 세운 '한인기독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할 시절, '한인들은 돼지와 다를 바 없다' '일본의 지배를 받아 마땅하다' 등의 친일발언을 한 미국인 교사를 옹호하고 이에 항의한 한인 학생들을 처벌하라고 지시한 기록이 있어요. 이런 사람을 어떻게 국부로 추대한다는 말입니까."

결국 김상덕 선생은 친일파 청산의 대업을 마치지 못하고 6·25 전쟁 때 납북됐다. '월북 인사'의 가족이란 낙인 때문에 김 부회장은 평생 직장을 갖지 못한 채 힘들게 살아야 했다. 김 부회장은 "고단한 삶 속에서도 가족으로부터 힘을 얻었다"며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을 듣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고 말했다.

"아들은 지금 말단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아들이 힘들게 얻은 손녀는 엊그제 백일을 맞았습니다. 손녀의 이름은 내가 직접 '예일리'라고 지었어요. 한문 뜻을 그대로 하면 '슬기롭게 절개를 다스려라'는 의미입니다. 손녀가 미국 예일대 같은 명문대의 잔디에 누워 세계를 꿈꾸길 바라는 제 소망도 들어가 있어요."(웃음)

김 부회장은 아직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는 "지난해 1월부터 임시정부사업회 회보 '독립정신'에 아버지에 대한 회고록을 써왔다"며 "글을 쓰며 아버지에 대해 떠올릴 때마다 원망은커녕 연민이 밀려온다"고 말했다.

"중국 충칭에 정착할 때 내가 세 살이었는데 그 무렵의 아버지 모습이 뚜렷이 기억나요. 아버지는 주머니 사정이 궁핍해서 행상들이 파는 마른 두부, 빼갈 한 잔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그게 마음에 남아 아버지 제사상에는 항상 두부전과 술을 푸짐하게 올립니다. 제 마지막 소원은 산세 좋은 곳에 집을 짓고 타향에서 세상을 뜬 우리 가족의 영혼을 한 곳에 모으는 것입니다. 제 어머니는 아버지를 쫓아 중국 난징에서 충칭으로 우리와 함께 먼 길에 올랐다 병을 얻어 돌아가셨어요. 당시 갓난아기였던 막내도 어머니가 돌아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떴고요. 아버지는 납북된 후 소식을 몰랐고, 가난한 나와 결혼해 고생만 하다 병을 얻은 내 아내도 치료비 걱정하다 17년 투병생활 끝에 눈을 감았습니다. 이 영혼들이 하늘에서라도 만나 함께 있기를, 신께서 제 마지막 과업을 이룰 수 있도록 제게 시간을 조금 더 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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