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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100년 전 파리의 할아버지 흔적을 찾다 -경향신문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6-04-18 12:08
조회(6442)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 (1462)
독립운동가의 손녀들인 김수옥 우사 김규식 연구회 부회장(김규식 선생 손녀), 윤봉길 의사 손녀 윤주경 독립기념관장, 서영해 선생 손녀 스테파니(오스트리아 거주), 정정화·김의한 선생 손녀 김선현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김가진 선생의 증손녀), 조소앙 선생의 외손녀 김상용 국민대 교수(왼쪽부터)가 4월 11일(현지시간) 1930년대 할아버지들이 활동했던 프랑스 파리 고려통신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원희복 선임기자

독립운동가의 손녀들인 김수옥 우사 김규식 연구회 부회장(김규식 선생 손녀), 윤봉길 의사 손녀 윤주경 독립기념관장, 서영해 선생 손녀 스테파니(오스트리아 거주), 정정화·김의한 선생 손녀 김선현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김가진 선생의 증손녀), 조소앙 선생의 외손녀 김상용 국민대 교수(왼쪽부터)가 4월 11일(현지시간) 1930년대 할아버지들이 활동했던 프랑스 파리 고려통신사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원희복 선임기자



 


윤봉길·김규식·조소앙·서영해·김의한 후손들 모여 할아버지들의 기상과 업적 기려



 


윤봉길 의사의 손녀 윤주경씨(독립기념관장), 김규식 선생의 손녀 김수옥씨(의사·우사 김규식 연구회 부회장), 조소앙 선생의 손녀 김상용씨(국민대 교수), 서영해 선생의 손녀 스테파니(오스트리아 거주), 정정화·김의한 선생의 손녀이자 김가진 선생의 증손녀 김선현씨(사업·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이사) 등 쟁쟁한 독립운동가의 손녀 5명이 프랑스 파리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 4월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7대학(디드로대학)에서 열린 ‘자유한국과 프랑스, 평화를 꿈꾸다’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 심포지엄과 특별전시회에 초청됐다. 한국·프랑스 수교 130주년 기념으로 열린 이 행사는 독립기념관과 국민대학교, 파리 제7대학이 공동 주최했다.


약 100년 전 할아버지들이 힘들게 독립투쟁을 하던 이역만리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심포지엄에 앞서 소개를 받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도 있지만, 초면인 사람도 있었다. 특히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서영해 선생의 둘째 딸 스테파니는 지난해 처음으로 독립운동가의 딸임이 확인됐으며, 이날 새벽 오스트리아를 출발해 이곳에 도착했다.


잠깐 이들 할아버지의 면면을 살펴보자. 윤봉길 의사(1908~1932)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상해임시정부의 의열투쟁을 위해 조직한 한인애국단(단장 김구) 소속의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던졌다. 이 의거로 일본군 시라카와(白川義則) 대장이 즉사하고 일본군 간부 여러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폭탄 의거를 함께 계획한 사람이 김구·김홍일 선생이다. 윤 의사의 손녀인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은 이 심포지엄을 주최했다.


김규식 선생(1881~1950)은 임시정부 외무총장과 파리 강화회의 전권대사로, 1919년 국제연맹이 있는 파리에 와서 일본 침략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렸다. 서영해 선생(1902~?)을 파리에 보낸 사람도 김규식 선생이다. 서영해는 1920년 파리에서 고등학교와 파리신문학교(에콜드주르날리)를 졸업하고 1929년 고려통신사를 운영하며 일본의 한국 침략 부당성을 유럽에 알리는 것은 물론 유럽지역 정보를 수집해 임시정부에 보고했다.


조소앙 선생(1887~1958)은 임시정부 외무부장으로 바로 서영해의 보고를 받는 위치였다. 단국대 한시준 교수는 “서영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임시정부의 선전활동을 했다”면서 “현재 서영해가 임정 조소앙에게 보낸 편지(보고서) 2통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선현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이사의 할아버지 김의한 선생(1900~1951)은 한국독립당 감찰위원과 광복군 훈련과장을 지냈다. 할머니 정정화 여사(1990~1991) 또한 상해임시정부에 자금을 조달하는 등 안살림을 도맡은 공로로 건국훈장을 받았다. 김 이사의 증조부 김가진 선생(1846~1922)은 대한제국 일본공사를 지내는 등 외교에 밝았고, 가족을 이끌고 상해로 망명해 비밀결사 대동단 총재와 임시정부 고문으로 활동했다.


따라서 이날 모인 5명의 할아버지들은 모두 임시정부의 핵심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서영해 선생은 <경향신문>(2005년 4월 19자)을 통해 발굴, 보도됐다. 지난해 오스트리아에 사는 친손녀들(수지와 스테파니)가 이 보도를 보고 <주간경향>에 연락함으로써 친손녀의 존재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들 독립운동가의 손녀들은 평소 알고 지낸 사람도 있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친자매처럼 거리낌이 없었다. 이날 조소앙의 외손녀 김상용 교수와 서영해의 손녀 스테파니는 “서영해가 프랑스 파리에서 정보를 수집해 중국 상하이에 있는 외교부장 조소앙에게 보고했다”면서 “조소앙 할아버지의 지위가 훨씬 높았다”면서 서로 웃었다.


독립운동가의 손녀들은 독립된 나라에서 독립기념관장·생물학자·사업가·의사 등 사는 방식이나 국적은 다르지만 할아버지가 추구했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은 거의 비슷했다. 김규식의 친손녀 김수옥 우사연구회 부회장은 “할아버지가 일생 동안 추구했던 것은 조국 독립과 통일이었다”면서 “친일파를 척결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생각에 당시 돈과 권력을 쥔 친일파 후손들은 위협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소앙의 외손녀 김상용 교수도 “할아버지는 지금 우리나라를 완전한 독립국가로 생각하지 않고 통일이 돼야 완전한 독립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제부터라도 진정한 독립인 통일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민대학교에 ‘한반도 미래연구원’을 개설, 할아버지의 뜻을 잇고 있다.




김선현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가 파리1구청 전시실에서 4월 5일부터 15일까지 열린 ‘한국 독립운동과 프랑스’ 특별전에 전시된 할머니의 자서전(정정화의 <장강일기>)을 보고 있다. / 원희복 선임기자

김선현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가 파리1구청 전시실에서 4월 5일부터 15일까지 열린 ‘한국 독립운동과 프랑스’ 특별전에 전시된 할머니의 자서전(정정화의 <장강일기>)을 보고 있다. / 원희복 선임기자





김의한·정정화 선생의 손녀인 김선현 이사는 부친 김자동 선생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김 이사는 10년 전 한국·프랑스 수교 120주년 기념사업에 참여하는 등 오래전부터 집안의 정신적 유지를 잇고 있다. 김 이사는 “2019년이면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다”면서 “프랑스 에펠탑이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물이고, 미국 자유의 여신상이 독립 100주년 기념물인데, 우리는 100주년에 걸맞은 기념물이 없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을 위해 뛰고 있다. 그는 “임시정부기념관은 단지 기념물에 그치는 것이 아닌 진정한 독립 정신세계를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서영해 선생의 손녀 스테파니는 “할아버지를 단순한 저널리스트로만 알았지 이렇게 한국 독립운동에 기여했는지는 잘 몰랐다”면서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고, 그의 손녀일 뿐인데도 이렇게 환대해 줘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생물연구원으로 있지만 할아버지에 대해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행사를 기획한 국민대 이혜경 교수는 “역사도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면서 “오늘 5명의 독립운동가 손녀가 참석한 것은 독립운동가 역시 아이를 낳고 사는 평범한 인물이면서 질풍노도 시절에 불꽃 같은 삶을 산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번 국제학술심포지엄을 주최한 윤봉길 의사 손녀인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한국과 프랑스가 자유와 평화를 꿈꾸는 나라라는 것을 확인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윤봉길 의사는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에서 순국했다. 김규식·조소앙·김의한 선생은 한국전쟁 때 납북돼 김규식 선생은 1950년 12월, 김의한 선생은 1951년, 조소앙 선생은 1958년에 사망해 북한에 안장돼 있다. 그러나 서영해 선생의 마지막 행적에는 의문부호가 찍혀 있다. 확인된 그의 마지막 행적은 1956년 7월까지 상해 인성학교 교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후 중국에서 사망했다는 설과 북한으로 가 김일성대학 교수를 했다는 주장, 심지어 유럽으로 돌아갔다는 설도 있다.


서영해 선생마저 북한으로 갔다면 앞서 독립운동가의 손녀 5명 중 4명의 할아버지가 북한에 잠들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상해임시정부를 통한 파리에서의 독립운동이 왜 북한으로 결론을 맺어야 하는지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손녀들이 이구동성으로 ‘진정한 독립은 바로 통일’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프랑스는 상해임정을 승인한 유일한 나라



 




4월 11일 프랑스 파리7대학(디드로대학)에서 열린 ‘자유한국과 프랑스, 평화를 꿈꾸다’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장석흥 소장(가운데)과 단국대 한시준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주제발표와 토론을 하고 있다./ 원희복 선임기자

4월 11일 프랑스 파리7대학(디드로대학)에서 열린 ‘자유한국과 프랑스, 평화를 꿈꾸다’ 국제학술 심포지엄에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장석흥 소장(가운데)과 단국대 한시준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주제발표와 토론을 하고 있다./ 원희복 선임기자





이날 심포지엄은 한국 독립운동 과정에서 프랑스의 역할에 대해 다각적인 접근과 분석이 이뤄졌다. 장석흥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안중근과 빌렘 신부’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안중근과 가깝게 지낸 프랑스 알사스 로렌 출신의 빌렘 신부를 주목했다. 알사스 로렌 지방은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지역으로 나라를 빼앗긴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의 무대인 곳이다. 장 소장은 “나라를 빼앗긴 빌렘 신부는 종교와 민족을 초월, 안중근에게 독립운동 정당성을 부여했다”면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민족운동이자 자유와 평화를 위한 인류평화운동이었다”고 말했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프랑스’라는 발표에서 “많은 해외 열강이 한국(조선·대한제국)과 외교관계를 맺었지만 정작 한국이 국권을 잃었을 때 도와준 나라는 단 2개국, 중국과 프랑스”라며 “무엇보다 프랑스는 한국 임시정부에 대해 사실상 승인한 유일한 나라”라고 설명했다. 독립기념관 이명화 수석연구원은 “김규식의 파리위원부를 통한 외교·홍보활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됐고, 이후 카이로 회담에서 식민지 상태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독립을 인정받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 수석연구원은 서영해가 고려통신사를 운영한 성과에 대해 “그간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한국문제가 비로소 국제문제로 부각됐다”며 “정의를 호소하는 한국민에게 동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게 되는 간접적인 성과도 거두게 됐다”고 말했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국외사적지팀장은 김구 임시정부 주석과 프랑스 임시정부 대통령 드골 사이에 오간 서신을 설명하면서 프랑스가 한국의 독립을 도운 세 가지 요인을 분석했다. 김 박사는 “첫째는 자유와 정의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프랑스인과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둘째 프랑스에서 자체적으로 움직인 한국친우회(의장 루이 마랭) 조직의 협조, 세 번째는 프랑스에 널리 퍼진 사회주의적 경향”이라고 분석했다.


이진명 리옹3대학 명예교수도 “주파리위원부의 활동으로 프랑스 신문에 한국에 관해 423건의 기사가 게재됐다”면서 “13년 후인 1934년 임시정부는 외무행서 규정을 결의해 주불 외무행서 외무위원에 서영해를 임명했다”고 소개했다. 심포지엄을 주최한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은 “이번 심포지엄은 독립운동사를 국내적 사안으로만 보지 않고 국제적 흐름에서 보는 최초의 시도”라며 “앞으로 독립운동사의 시야를 더욱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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