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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글자마다 치밀한 일제 ‘무단통치의 야심’이…초대 헌병대사령관 아카시, 1909년에 쓴 서한 첫 공개 - 경향신문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6-08-12 10:23
조회(2333)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1213901… (544)

ㆍ데라우치 총독 오른팔…“한국 치안유지 전권, 헌병이 차지해야”
ㆍ군부의 ‘식민통치 주도’ 관철…이토 히로부미 등 문관과 갈등도





일제의 초대 ‘한국주차헌병대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오른쪽 사진)의 1909년 친필서한.

일제의 초대 ‘한국주차헌병대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오른쪽 사진)의 1909년 친필서한.





1910년대 일제의 이른바 ‘무단통치’를 주도했던 일본군 ‘한국주차헌병대사령관’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의 친필서한이 최초 공개됐다. 1909년 8월2일 헌병대장에서 물러난 아카시가 후임자로 임명된 사키가하라 쇼조에게 보낸 서한이다. 아카시는 서한에서 헌병이 치안유지 경찰권까지 장악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아카시의 주장은 불과 1년 뒤 한국에 헌병경찰제가 도입되면서 현실화됐다.







서한은 가로 11.17m, 세로 18㎝ 크기의 두루마리 형태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올해 초 일본 교토의 개인연구자로부터 인수해, 11일 공개했다. 장석흥 연구소장은 “1910년대 소위 ‘무단통치’의 기조를 서한에서 찾아볼 수 있다”며 “일제가 그토록 폭압적인 방식으로 통치에 나서게 된 이유를 살필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


서한에서 아카시는 “(1907년) 소관이 처음 명을 받아 800명의 헌병을 거느리고 한국으로 올 당시 육군대신 데라우치 대장 각하는 (…) 한국의 경찰(치안유지)은 헌병이 주로 담당하고, 한국 경찰을 사용하여 그 목적을 이루도록 훈시하셨다”면서 “요컨대 한국에서 헌병이 순사를 아우르고 경찰의 전권을 차지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그는 헌병 권한 확대를 위해 헌병대장 직위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헌병대사령관으로 직함을 승격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헌병대장이라는 명칭은 소생이 싫어하는데 이는 그 이름이 너무 작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카시의 주장은 이듬해 6월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한국 통감으로 부임하고 한국주차헌병대를 한국주차헌병사령부로 확대 개편하면서 완전히 관철됐다. 데라우치 통감 체제에서 아카시는 초대 헌병대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데라우치는 초대 총독이 되고 아카시는 경무총감 직위까지 겸임하게 됐다. 연구소 박민영 책임연구위원은 “데라우치가 우두머리라면 아카시는 그 오른팔 역할을 한 인물”이라면서 “두 사람은 아카시가 헌병대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나는 1914년까지 호흡을 맞추며 일제의 폭압적인 통치를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데라우치가 통감으로 부임하고 이후 초대 총독의 자리까지 차지하면서 군부는 식민통치의 주도권을 장악해 독주체제를 갖췄다. 장석흥 소장은 “군부의 데라우치와 아카시가 각각 총독과 경무총감을 맡았다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각각 초대와 2대 통감을 맡았던 이토 히로부미, 소네 아라스케 등 문관 세력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 등을 고려해 군부를 견제해왔으나 이토가 1909년 10월 안중근 의사의 총에 맞아 사망하고 소네가 이듬해 병으로 통감 직위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귀국한 이후 힘을 잃었다.


아카시의 서한에서도 당시 군부와 문관 세력 간의 갈등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아카시는 서한에서 데라우치와 자신이 이토와 소네 전·현직 통감에게 ‘헌병의 경찰권 발전의 필요성과 권능’을 이야기했으나 뜻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은연중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새로운 보호국에서 (…) 보통의 경찰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문관 기질은 배제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도 적었다.


아카시는 1914년 헌병대사령관에서 물러난 후 191,8년 대만 총독으로 부임해 이듬해 병으로 죽었다. 한국에서 그는 의병장 허위를 직접 신문하는 등 의병 탄압의 주역 역할을 했고, 특히 ‘기포성산(碁布星散·바둑판 포석과 하늘의 별처럼 헌병을 총총히 배치함)’이라는 혹독한 탄압방식으로 악명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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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12139015&code=960100#csidxf9853a8daf2e0c994956521fe50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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