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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이승만도 '건국'이라는 표현 쓰지 않았다[Ohmynews]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7-04-13 13:30
조회(7771)
#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15433&CM… (3228)
지난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회장 김자동)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회장 이종찬) 공동 주최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대한민국은 언제 세워졌는가?'라는 주제로 대한민국 건립에 대한 역사적·법률적·국제정치적 분석이 이뤄졌다. 주최 측은 "이번 학술회의를 통해 이명박 정권 이래 불거진 건국절 논란에 쐐기를 박고자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공식 포스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공식 포스터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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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건국절 논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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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 논란의 시작은 지난 2006년 7월 31일자 <동아일보>에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기고한 한 편의 글이 실리면서부터다. 당시 이 교수는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이야말로 건국의 기원이 되는 날이라며 이날을 건국절로 명명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보수 우익 진영을 중심으로 확산된 건국절 제정 운동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엉뚱하게도 좌·우 이념논쟁으로 번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1948년 건국을 부정할 경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종북좌파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역으로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논리였기에 시민단체와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격한 반발이 일어났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건국절 논란은 국정교과서 등을 통해 끊임없이 확산되며 한국 사회의 분열을 부추겼다. 따라서 참석자들은 이번에 열린 학술회의가 지난 10년 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지난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시작 전부터 크게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학술회의는 총 6개의 소주제로 발표가 이뤄졌다. 가장 먼저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가 <대한민국 건립과 임시정부 수립>을 주제로 포문을 열었다. 이어 ▲ 조덕천 단국대 사학과 박사 수료생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경일 제정과 건국기원절 기념>, ▲ 쑨커즈(孫科志) 중국 복단대 역사학과 교수의 <중화민국 건립과 건국기념일>, ▲ 브랜든 팔머(Brandon Palmer) 코스탈 캐롤라이나 대학 역사학 교수의 <세계적 관점에서 본 독립의 기념>, ▲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이승만의 역사의식>, ▲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법적 관점에서 본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관한 메모> 순으로 발표가 이어졌다.

특히 이번 학술회의에는 국내 역사학자들 뿐만 아니라 중국·미국 등 해외 역사학자들이 참여해 국제 사례를 분석·제시함으로써 논의의 폭을 넓혔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1948년 건국론의 허구성

첫 발제를 맡은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는 보수정권의 끊임없는 건국절 제정 시도를 비판하는 것으로 머리말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역사를 축소하고 폄하하는 것이 마치 바른 역사요, 애국하는 일인 것처럼 악을 쓰니 역사의 진실이 허구화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고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김 교수는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공화정이자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로 법통이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른바 '1948년 건국론'의 허구성을 반박했다.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가 <대한민국 건립과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김희곤 안동대 사학과 교수가 <대한민국 건립과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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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건국론의 요지는 대개 두 가지로 압축된다. 당시 세계열강이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국가의 구성 요소인 국민·영토·주권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침략 제국주의 국가가 식민지 해방운동, 독립운동을 펼치는 조직을 승인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그런 주장 자체가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임시정부가 국가의 구성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는 앞의 세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추지 못한 형편이었으니 국가가 없는 시기를 몇 년이나 겪었다는 말이 된다"며 "그럼에도 그들 국가에 대해서는 다르게 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1948년 건국론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북한이 붕괴되고 중국이 북한으로 진주할 경우 나가라고 주장할 명분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국가의 구성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1948년 건국론을 인정하게 될 경우 대한민국 정부의 영토적 범위를 스스로 한반도 남쪽으로 축소시키는 논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음을 증명하는 사실로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국호와 연호, 정부와 의회 이름, 헌법과 통수권자의 호칭, 국가(애국가)와 국기(태극기)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점을 들기도 했다.

이승만도 '임시정부 계승론자'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이승만의 역사의식>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맡은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 역시 1948년 건국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그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철저한 '임시정부 계승론자'였음을 지적하며 우익 진영이 이승만을 가리켜 부르는 '건국대통령'이라는 표현은 오히려 이승만의 역사의식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승만 자신이 건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고 한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이승만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1919년에 수립된 임시정부의 '재건' 혹은 '부활'로 봤다는 것. 그를 뒷받침해주는 자료가 바로 1948년 제헌국회 개회 당시 국회의장 이승만의 개회사다. 이승만은 개회사를 통해 새로 수립될 정부가 29년 만에 '민국'을 부활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연호는 임시정부 연호를 그대로 사용하되 그 시점을 1919년부터 계산한다고 밝혔다.

"이 國會(국회)에서 建設(건설)되는 政府(정부)는 卽(즉) 己未年(기미년)에 서울에서 樹立(수립)된 民國(민국)의 臨時政府(임시정부)의 繼承(계승)에서 이 날이 二十九年(29년) 만에 民國의 復活日(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公布(공포)하며 民國年號(민국연호)는 己未年에서 起算(기산)할 것이요" - 제헌국회 개원식 개회사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공개한 '국회개원식 개회사' 자료사진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공개한 '국회개원식 개회사' 자료사진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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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승만은 공식 석상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는데, 기점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었다. 정부 수립 후 정부 공보처에서 발행한 <관보>(官報)에서도 그 연도를 '대한민국 30년'으로 표기해 정부 차원에서도 임시정부 계승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제헌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계승 의지를 명문화한 것 역시 이승만이었다. 그는 동년 7월 1일에 열린 국회본회의에서 임시정부 법통과 관련한 내용을 헌법안 전문에 넣자고 부탁하면서, 전문에 들어갈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精神(정신)을 憲法(헌법)에 作定(작정)할 생각이 있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여기서 우리가 憲法劈頭(헌법벽두)에 前文(전문)에 더 써널 것은 '우리들 大韓民國(대한민국)은 悠久(유구)한 歷史(역사)와 傳統(전통)에 빛나는 民族(민족)으로서 己未年三一革命(기미년 삼일혁명)에 蹶起(궐기)하여 처음으로 大韓民國政府(대한민국정부)를 世界(세계)에 宣布(선포)하였으므로 그 偉大(위대)한 獨立精神(독립정신)을 繼承(계승)하여 自主獨立(자주독립)의 祖國再建(조국재건)을 하기로 함' 이렇게 써 넣었으면 해서 여기 제의하는 것입니다" - 제헌국회속기록

제헌헌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승만의 주장은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그의 주장은 약간의 수정을 거친 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로 최종 확정됐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임시정부에 있다는 것을 헌법 전문에 명문화시킨 것이다.

한 교수는 "헌법전문에 이를 넣자고 제안한 것도 이승만이었고, 이를 관철시킨 것도 이승만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왜 이승만은 임시정부의 계승에 집착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이승만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새 국가와 정부를 수립하게 됐을 때 미국에 의한 수립으로 비춰지는 것이었다"며 "임시정부 계승을 명확히 함으로써 정통성 있는 자주독립정부임을 내세우고자 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이승만의 역사의식>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이승만의 역사의식>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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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베트남의 독립기념일은?

그렇다면 해외 각국은 자신들의 독립·건국기념일을 어떤 기준으로 제정했을까. 코스탈 캐롤라이나 대학의 브랜든 팔머 교수는 미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스페인 등 해외 각국이 기념하는 독립·건국기념일의 사례를 분석·제시했다. 이를 통해 그는 애국심이 발전하는 중대한 시점이 국가의 기원으로 고려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예컨대 1919년 3.1운동으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1945년 9월 2일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한 베트남의 사례가 이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공식적인 독립이 이뤄진 것은 건국 선언 9년 뒤인 1954년 7월 21일이었다. 그럼에도 베트남인들은 1945년 9월 2일을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일본이나 프랑스와 같은 해외 열강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주적으로 독립을 선포한 날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역시 다르지 않았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의 횡포에 견디다 못해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독립전쟁을 개시했다. 7년 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미국은 완전한 독립국가라 할 수 없었다. 식민지 미국의 정부 역할을 하던 대륙의회 역시 1789년 헌법 효력이 발휘될 때까지 중앙 정부로서 제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따라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완전하게 독립한 것은 독립선언서 발표 이후 7년 뒤의 일이었으며, 현재와 같은 연방 정부가 수립된 것은 13년 후의 일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미국은 1776년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팔머 교수는 "나는 1976년이 미국의 200주년 기념일로 거행된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며 "당시 어떤 미국인도 1983년이나 1989년을 건국 200주년이라고 감히 제안하지 않았다"고 말해 청중들로 하여금 미국인들의 확고한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게 했다. 팔머 교수의 해외 사례 분석은 국가의 구성요소를 갖춰야만 건국이 성립될 수 있다는 논리의 1948년 건국론을 국제적인 시각에서 비판했다는 점에서 청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1부 학술발표가 끝난 뒤에는 장석흥 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교수를 좌장으로 발제자와 토론자 간 종합토론이 이뤄졌다. 참석자들은 "이제 1948년 8월 15일 건국론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국 정부의 뿌리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브랜든 팔머 코스탈 캐롤라이나 대학 교수가 <세계적 관점에서 본 독립의 기념>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10일, 서울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8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 브랜든 팔머 코스탈 캐롤라이나 대학 교수가 <세계적 관점에서 본 독립의 기념>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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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 논란 종식과 함께 '임시정부 기념사업' 실현되어야

한편 이날 행사에 앞서 주요 대선 주자들은 축하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2019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울 서대문구에 건립 예정인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을 정부 주도의 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 역시 정부 차원의 기념위원회가 조직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에 한 참석자는 "정권교체와 함께 임시정부 기념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대선 주자들의 메시지가 와닿는다"면서도 "대선을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에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기도 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가 임시정부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생각한다면, 국내에 임시정부를 기념하는 변변찮은 기념관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서글픈 자화상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여야 대선주자들이 임시정부 기념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그 뿌리를 명확히 한다면 다시는 이 땅 위에 건국절 논란 따위의 소모적인 논쟁은 발 붙일 여지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폐청산과 국가대개조에 앞서 반드시 우리의 뿌리를 바로 세우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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