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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왜 말하려 하지 않는가, 조선반도 오빠언니들의 얘기를 [한겨레]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7-08-08 17:03
조회(4112)
[토요판] 르포
홀대받는 일제 강제징용 현장




오키나와 요미탄촌에 건립된 ‘한의 비석’ 비문.

오키나와 요미탄촌에 건립된 ‘한의 비석’ 비문.





▶ 태평양 전쟁 막바지 일제에 의해 군대와 공장, 광산으로 끌려갔던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에 대한 추모와 기념의 공간이 일본 곳곳에 남아 있다. 양심적인 일본 시민사회와 재일조선인들의 소중한 노력으로 그나마 묻힐 뻔했던 역사적 사실이 복원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한국 정부의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광복절 72주년을 앞두고 강제징용의 아픈 기억이 서린 현장을 찾았다.



 


 


일본 오키나와현 요미탄촌 마을. 키 작은 아열대 나무들로 둘러쳐진 주택가 한쪽 빈터에 비석 하나가 일행을 맞이했다. 이름하여 ‘한의 비석’. 골목으로 이어진 구릉을 따라 오르면 만나는 50평 남짓한 공간이다. 조선에서 끌려온 청년과 소녀의 고통을 형상화한 부조와 비석이 새겨져 있다. 비록 규모는 작아도 의미는 남다르다. 일본 현지에서 일본인들이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직접 고발하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맞서, 일본 내부에서 터져나온 기억이자 울림이다. 한의 비석이 세워진 건 2005년 5월. 오키나와를 비롯한 일본 전역의 양심적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았다. 제막식에는 100여명이 참석했다. 일본 언론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조선에서 끌려온 청년과 소녀의 고통을 형상화한 요미탄촌의 부조와 ‘한의 비석’.

조선에서 끌려온 청년과 소녀의 고통을 형상화한 요미탄촌의 부조와 ‘한의 비석’.



요미탄촌 마을에 한의 비석이 세워진 이후 오키나와에는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고 ‘위안부’와 강제징용의 희생자를 기리는 사업이 이어졌다. 2008년 9월에는 본섬에서 남서쪽으로 300여㎞ 떨어진 미야코지마에도 아리랑비가 들어섰다. 미야코지마 주민들을 비롯해 한국의 시민단체가 힘을 보탠 결과다. 미야코지마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교원노조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역사 바로알기 움직임이 활발했다. 미야코지마 지방교육청 산하 역사위원회는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를 조사해 지도와 정보를 정리한 보고서도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는 과거 미야코지마에 주둔했던 일본군 각급 부대와 군사시설 정보가 소상히 담겨 있다. 조선인들이 어떻게 끌려와 성노예와 강제노역에 내몰렸는지도 사실 그대로 밝히고 있다.

 


 


천장과 벽면 곳곳에 남은 수작업의 흔적

 


미야코지마 아리랑비 조성에 적극 참여했던 주민 우에사토 기요미씨는 과거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어릴 때 어머니와 할머니한테 생생하게 들었다.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너무도 처참했기 때문에 어머니와 할머니는 이곳을 지날 때마다 당시의 안타까운 상황을 설명해줬다. 슬픔과 고통의 현장이었다.” 오키나와 전체로 일본군 위안소는 130곳가량. 이 중 50개소가 조선인 위안소다. 미야코지마에는 우에노 지역을 비롯해 모두 17개소가 운영됐다.

 


 


오키나와 요미탄촌 ‘한의 비석’
미야코지마엔 ‘아리랑비’ 들어서
다이빙 명소 알려진 도카시키지마
해군 가미카제 비밀기지 있던 곳

지자체·교원노조 등 자발적 모금
재일한국인과 국내 민간단체 관심
정부 주도 진상규명 사실상 중단
실태파악 부족, 관련 시설 방치도

 


 




본섬에서 남서쪽으로 300여㎞ 떨어진 미야코지마에는 미야코지마 주민들을 비롯해 한국의 민간단체가 힘을 보태 2008년 9월 아리랑비를 건립했다. 그 옆엔 ‘희망의 나무’도 심었다.

본섬에서 남서쪽으로 300여㎞ 떨어진 미야코지마에는 미야코지마 주민들을 비롯해 한국의 민간단체가 힘을 보태 2008년 9월 아리랑비를 건립했다. 그 옆엔 ‘희망의 나무’도 심었다.



미야코지마 아리랑비와 같은 이름의 추모공간이 오키나와엔 한곳 더 있다. 바로 도카시키지마의 아리랑위령탑. 도카시키지마는 본섬에서 약 30㎞ 서쪽에 펼쳐진 게라마제도의 한 섬이다. 빼어난 해변과 푸르디푸른 바다가 펼쳐진 산호섬. 게라마제도는 최근 오키나와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다이빙 명소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특히 도카시키지마는 바다와 섬이 빚어내는 절경을 자랑한다. 바로 이곳에서 70여년 전 10대 후반의 소녀들과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짐승처럼 갇혀 있다 죽어갔다니.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이 금세 무색해졌다. 도카시키지마, 자마미지마, 아카지마 등 게라마제도에는 전쟁 막바지 일본 해군의 해상 가미카제 비밀기지가 조성됐다. 인간어뢰 발진 시설을 만들기 위해 해안가 곳곳에서 토치카와 터널 공사가 진행됐다. 이 작업에 조선인 군부(군대노역부)가 집단적으로 강제 동원됐다. ‘위안부’도 끌려왔다. 이들의 넋을 기리고 평화를 되새기는 공간이 바로 아리랑위령탑이다.

 




일본군 37연대의 최후 방어선으로, 바다로 들어오는 미군을 상대로 일본이 최후 결전을 준비했던 미야코지마 터널의 흔적.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군사시설 건설에 대거 투입됐다.

일본군 37연대의 최후 방어선으로, 바다로 들어오는 미군을 상대로 일본이 최후 결전을 준비했던 미야코지마 터널의 흔적.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이 군사시설 건설에 대거 투입됐다.



조선인 강제징용의 흔적이 오키나와에 한정된 건 물론 아니다. 일본 본토 곳곳에도 뼈아픈 상처는 남아 있다. 6000여명의 조선 청년들이 지하터널 공사에 동원된 혼슈 중부 나가노현의 마쓰시로대본영도 빼놓을 수 없는 현장이다. 전쟁 말기 일본은 나가노현의 마쓰시로 산골마을에 일본제국주의 수뇌부를 옮겨올 계획을 추진했다. 미군의 공습을 피해 본토 결전을 준비한 것이다. 대규모 지하터널을 파고 일본 천황과 일본군 대본영, 핵심 행정기관, 국영방송 등을 옮겨온다는 구상이었다. 이 지하터널 일부는 현재 개방돼 교육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천장과 벽면 곳곳에 수작업의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터널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엔 ‘마쓰시로대본영 조선인희생자 추도평화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나가노현 시민추도모임에서 건립한 추모비다.

 




조선 청년 6000여명이 지하터널 공사에 동원된 혼슈 중부 나가노현 마쓰시로대본영 터에 세워진 마쓰시로대본영 추모비.

조선 청년 6000여명이 지하터널 공사에 동원된 혼슈 중부 나가노현 마쓰시로대본영 터에 세워진 마쓰시로대본영 추모비.



일본 시민들은 왜 이러한 기억의 공간을 만들었을까. 오키나와민중연대 다카하시 도시오 사무국장은 오키나와 여러 곳에 조성된 추모비와 위령탑과 관련해 이렇게 설명했다.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잊지 말고 평화를 지향하자는 것. 둘째, 희생자들의 원혼을 달래고 아픔을 함께하자는 것. 셋째, 역사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기초 위에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발전시키자는 다짐.”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일본 곳곳에 세워진 증언과 기억의 공간들은 대부분 지방자치단체나 지방교육청, 교원노조와 공무원노조 등의 자발적 모금의 결실인 게 특징이다. 현지 주민이나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해마다 추모행사를 열기도 한다. 이 자리에는 재일한국인이나 한국의 민간단체들이 더러 참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 시민들의 움직임과 달리, 정작 우리 정부의 관심은 여전히 부족한 편이다. 일본 곳곳에서 열리는 추모행사만 해도 그렇다. 주일대사관 한 관계자는 “대사관 차원에서 그런 행사에 참가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총영사관에서는 개별적으로 참여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무관심 속에 정작 일본 내 강제징용 현장에 대한 실태 파악도 충분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관계자 역시 “일본 현지의 강제징용 현장에 대해 실태를 파악하거나 자료를 수집하도록 본국 정부로부터 별도 지침을 받은 적은 없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일제의 조선인 강제동원 진상규명을 위한 우리 정부의 활동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2004년 11월10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됐고, 특별법이 제정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2015년 12월31일자로 이 조직이 폐지돼버렸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최대의 대일 외교참사라 평가받는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체결’ 사흘 뒤의 일이다.

 


 


현지 실태조사 보고서는 5건뿐

 


그나마 지난 10여년간의 활동도 충분하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 차원의 일제강제동원 진상규명 사업은 주로 희생자 지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상대적으로 진상규명 작업의 비중은 턱없이 낮았다. 10년 동안 정부가 펴낸 강제동원 관련 보고서는 63건. 그나마 일본 현지를 직접 방문해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는 5건에 불과하다. 오키나와 등지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우리 정부는 역사 왜곡을 일삼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관련 자료와 정보를 요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10년 넘게 꾸려온 일제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외교부 쪽에서 우리 쪽에 자료를 요청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관련 부처의 핵심 자료조차 파악하지 않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중요한 협상에 나선 셈이다.

 


일본 곳곳에 남아 있는 아픈 상처의 현장들. 강제징용의 희생자를 기리고 잘못된 과거를 후대에 일깨우자는 일본 시민들의 자취는 정작 우리 정부의 무관심과 홀대 속에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피해자가 끝까지 기억하지 않으면 가해자는 반성하지 않는다.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과 민간단체의 노력만으로는 아픈 상처를 온전하게 치유하기 힘들다. 광복절 72주년을 앞두고, 일본 곳곳에 들어서 있는 기억과 추모의 공간들은 다시 한번 우리들의 반성과 자각을 촉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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