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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⑬무너지는 좌·우의 균형-경향신문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8-07-10 12:18
조회(1658)
#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624215300… (443)


ㆍ경찰·청년단체 비호 아래 운동장은 이승만으로 기울기 시작하다





한국을 방문하는 미국인들을 위해 미군정이 만든 책자 ‘You and Korea’에 있는 비도시 지역과 도시 지역을 대표하는 사진. 비도시 지역에서는 쌀농사와 면화 재배, 어업을 대표적인 산업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자는 한국이 매우 불편한 곳이니 많은 기대를 품고 방문하지 말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사진 크게보기

한국을 방문하는 미국인들을 위해 미군정이 만든 책자 ‘You and Korea’에 있는 비도시 지역과 도시 지역을 대표하는 사진. 비도시 지역에서는 쌀농사와 면화 재배, 어업을 대표적인 산업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자는 한국이 매우 불편한 곳이니 많은 기대를 품고 방문하지 말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신생국가들은 예외없이 독재를 경험했다. 이는 결코 그들이 원한 체제가 아니었지만, 스스로의 힘이 아닌 식민지를 통해 형성된 근대화의 과정으로 인해 정상적이지 않은 정치적·사회적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비정상적 사회구조는 식민지에서 ‘분열시켜 지배하기(divide and rule)’라는 정책으로부터 발생한 것이며, 이로 인해 그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커다란 균열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러한 균열은 예외없이 독재체제가 형성되고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박태균의 버치보고서]⑬무너지는 좌·우의 균형



‘동화와 배제’ 정책은 한 국가나 지역 내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이들이 그리고 있는 미래 사회의 모습에 큰 편차를 만들어냈다.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임의대로 국경선이 그어졌던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지역에 비하면 좀 더 나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식민지 조선이라고 해서 그 편차가 적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최근 많은 연구자들이 제국에 편입되면서 나타났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것이 왜곡되었든, 아니면 강제적으로 주입되었든 그 결과가 ‘근대’와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모습으로 현대 한국 사회의 기원을 형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제국의 한 모퉁이에서나마 식민지적 근대의 단맛을 느낄 수 있었던 대도시와 전통시대의 모습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한 지방 사이의 차이가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정치적·사회적 구조에 미친 영향은 전혀 주목하지 않고 있다. 


식민지 시기를 통해 근대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한 시장에 편입되었던 자본가와 상인들이 한편에 있었다면, 다른 한편에는 조선시대 이래로 계속되어온 지주-소작인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 다른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사회경제적 지위와 살고 있는 지역이 달랐던 사람들이 원하던 사회는 같을 수 없었고,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 역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연구들이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실상 독재체제가 어떻게 지속되었는가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는 지방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1945년 이후 제국이 무너지면서 한국을 비롯해 많은 신생국들이 탄생했고, 이들은 예외없이 미국이나 유럽식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서구식 민주주의는 직능이나 계층을 중심으로 대표를 뽑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인구수를 기준으로 보통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에 기반하고 있었다.


도시보다 지방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면서, 지방 분권이 존재하지 않는 신생국에서 서구식 민주주의 제도가 갑자기 도입되자 농촌을 비롯한 비도시권이 정치적으로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로부터 독립하는 시점에 대도시가 아닌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다. 도시는 아직 대규모 인구를 흡수할 수 있는 직장도, 거주시설도, 교육기관도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다. 




‘You and Korea’에 있는 38선 이남과 서울시의 교통망을 보여주는 지도. 한국에 들어오는 관문은 인천과 부산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서울에서는 덕수궁과 미군정이 사용하고 있었던 반도호텔 등이 소개되고 있다. 서울의 모든 지명은 일본어로 되어 있다. 퇴계로에 미국인들을 위한 백화점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 흥미롭다. 서울 지도의 아래쪽에 있는 백화점의 위치가 신세계백화점의 위치가 아닌 것으로 보면 그 당시에 다른 백화점이 있었던 것 같다.

‘You and Korea’에 있는 38선 이남과 서울시의 교통망을 보여주는 지도. 한국에 들어오는 관문은 인천과 부산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서울에서는 덕수궁과 미군정이 사용하고 있었던 반도호텔 등이 소개되고 있다. 서울의 모든 지명은 일본어로 되어 있다. 퇴계로에 미국인들을 위한 백화점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 흥미롭다. 서울 지도의 아래쪽에 있는 백화점의 위치가 신세계백화점의 위치가 아닌 것으로 보면 그 당시에 다른 백화점이 있었던 것 같다.





인구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비도시 지역에서 지주들의 일부는 일본인으로 바뀌었고, 과거의 지주와는 달리 시장을 통해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는 광의의 무역시장에 편입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주와 소작인 관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근대화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사례로 드는 대도시의 모습보다 전통시대로부터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식민지 시기의 억압과 모순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지방 사회의 모습이 당시 한국 사회의 더 일반적인 구조였다. 왜냐하면 당시 전체 인구의 80% 이상이 대도시가 아닌 농촌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구조하에서 서구식 민주주의와 보통선거 제도를 적용한다면, 결정적인 키를 쥐는 것은 비도시 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 도시보다 비도시 지역에서 더 많은 대표를 뽑을 수밖에 없는 정치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당시 제헌헌법에서는 대통령 중심제임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의 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특이한 형태의 정부구조를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수의 국회의원 선출을 좌우할 비도시 지역의 중요성은 그만큼 더 큰 것이었다. 1952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 후에도 도시보다 비도시 지역에서 선출되는 사람들의 표심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촉성국민회(필자주=이승만의 핵심 조직, ‘독촉’으로 약칭)는 가장 잘 조직된 정당으로 성원도 가장 많고 영향력도 크다. 모든 지역과 타운에서 지부가 발견된다. 단지 제주도에서만 그 영향력이 약하다. 또한 전라남도에서도 영향력이 강하지 않은 편이다. 독촉 청년회는 도시에서도 활발하며 우익에 의해 자행되는 테러에 책임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정당이 아니고 애국 조직이라고 말한다. 어떤 특별한 활동을 하느냐고 했을 때 그들은 답변하지 않았다. 한국민주당과 한국독립당은 독촉이 비정치적 성격을 보이는 곳에서 강하다. 한국독립당은 광복재건회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 농민과 노동자의 조직은 작고 약하다. ‘대한(노총)’은 전평과 철도 중심지인 대전과 대구에서 싸우고 있다. 애국부인회는 조직과 성원을 늘려가고 있다. 이승만을 지지하고 있다.’(1947년 3월22일 사령관에게 보낸 ‘3월5일부터 20일까지 남한 지방의 정치조직과 지도자에 대한 보고’ 버치 문서 박스 2)



한국민주당은 대중 지지 못 받고 
이승만, 미군정과 불화 빚었어도
지방 순회 거치자 표심 흡수 효과
 


이승만의 라이벌이 될 수 있는 정치지도자들은 암살당하거나 월북하거나 김구나 김규식처럼 1948년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에 불참했다. ‘한민당 코트’를 입은 한국민주당은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비록 미군정과 불화를 빚고 있었지만, 지방에서의 영향력을 점차 확대하고 있었다. 정병준이 <우남 이승만 연구>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1946년 5월의 지방 순회 이후 그의 영향력은 점차 확대되었고, 이는 위의 보고서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톈안먼(天安門) 사건으로 위기에 빠졌던 덩샤오핑이 1992년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과 중국공산당의 권력을 재확인했던 상황을 보는 듯하다. 


인민위원회 기반 좌익 중심에서 
‘추수폭동’ 계기 우익세력이 득세


인민위원회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던 좌익으로 기울어졌던 운동장은 1946년 대구·경북 지역에서 발생한 소위 ‘추수폭동(대구항쟁)’을 통해 우익으로 현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우익의 우위 속에서 이승만과 김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던 운동장은 경찰과 청년단체의 적극적 활동으로 다시 이승만에게 기울기 시작했다. 1947년 초의 상황이었고, 미군정의 지방 정세보고에 의하면 같은 해 가을 비도시 지역은 거의 이승만 지지 세력에게 장악되었다(그렇기 때문일까? 버치 문서군에는 1947년 3월부터 12월까지 미군정의 지방 조사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조민지의 ‘미군정기 후반전, 현지조사와 지방여론’(<해방의 공간, 점령의 시간>)에 1947년 7월 이후의 자료에 대한 전반적 소개가 되어 있다).


‘익산군의 경우 청년단이 매우 활동적이며, 경찰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다른 정치조직은 보이지 않는다. 청년단과 공무원, 경찰은 연합적으로 일하는 집단이다. (중략)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지역은 극우세력들이 장악하고 있다. 다른 그룹은 보이지 않았다.’(미군정 공보처, 전라북도에 대한 세 번째 현지조사, 1947년 8월20일부터 25일까지, 버치 문서 박스 2)



‘순천의 검사장에 의하면 이승만 그룹의 리더가 송광면에서 우익의 반대파인 장인숙을 납치해서 20일간 창고에 구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략) 이승만과 김구의 조직들은 민족청년단, 광복청년단, 서북청년단, 그리고 경찰 등 4개 조직을 돕고 있다. 청년단은 광주에 사설 감옥을 갖고 있으며,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구금하고 있다. 서북청년단은 광주, 목포, 순천, 여수 등에 지부를 두고 있다. 이들은 주로 좌익에 반대하면서 경찰의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다. 지역 경찰 감찰관인 이종수는 광복과 서북은 어떠한 나쁜 짓도 안 하고 있으며, 경찰과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정 요원인 쿨리와 위스머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중략) 서북청년단은 광주에서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적산을 자신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적산관리청에서 이들에게 나가라고 했지만 그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재는 이승만 그룹이 완전히 장악했다. 이승만을 반대하는 우파들은 거의 다 제거되었다.’(코넬리 소령에게 보내는 1947년 9월10일부터 26일까지 전라남도, 전라북도, 충청남도에 대한 정치적 조사, 버치 문서 박스 2)



‘이승만 그룹에게 있어서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좌파로 여겨지고 있으며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되고 있다. 이승만 그룹의 힘은 정읍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주로 법원 판사와 검찰에 의해서 그 힘이 드러나고 있다. 10개의 정당 사무실이 타운에 있는데 9개가 이승만, 한 개가 김성수 소속이다. 김성수의 조직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군산도 1946년 10월 이후 이승만 쪽으로 기울었다. 민족청년단과 서북청년단의 세력이 가장 크다. 전주의 미국 경찰 고문인 퍼거슨은 그의 통역관이 그를 절름발이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토머스 캠벨, 9월22일부터 26일까지 전라북도 상황: 이리, 군산, 남원, 정읍, 버치 문서 박스 2)




한국을 방문하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발간한 ‘You and Korea’의 표지.

한국을 방문하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발간한 ‘You and Korea’의 표지.





이승만을 중심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던 한국의 운동장은 미군정에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방국 중 신생 독립국가에 대해 내용에 관계없이 민주주의라는 형식을 강조하는 미국이었기에 이승만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던 지방의 상황은 보통선거 실시라는 조건하에서 미군정 역시 손쓸 수 없는 결정적 조건이 되었다. 그래서 미군정의 조사관 스스로 이렇게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정당들이 적산을 본부로 사용해야 하는가? 서북청년단이 적산을 사용해야 하는가? 경찰이 광복청년단과 서북청년단, 그리고 민족청년단을 정보원으로 써야 하는가? 이승만과 김구의 사진과 어록이 모든 경찰서에 붙어 있어야 하는가?’(코넬리 소령에게 보내는 1947년 9월10일부터 26일까지 전라남도, 전라북도, 충청남도에 대한 정치적 조사)



비도시에선 관권 개입 강하게 작동 
60년대 선거까지 여촌야도 이어져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60년 선거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관권이 개입하기 힘든 도시 지역에서는 야당을 지지하는 표가 나올 여지가 있었지만, 감시의 눈이 미치지 않는 비도시 지역은 경찰과 공무원, 그리고 청년단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강고한 카르텔이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 여촌야도(與村野都)란 말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왔다.


필자 박태균 교수 


‘버치 보고서’를 발굴한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현대사 전문가다. 1966년생으로 서울대 국사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서울대 국제한국학센터 소장을 지냈다. KBS <인물현대사>,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의 자문을 맡고, CBS 라디오 <박태균의 한국사>를 진행했다. 2015년에는 경향신문 ‘광복 70주년 특별기획-김호기·박태균의 논쟁으로 읽는 70년’에서 40회에 걸쳐 해방 이후 한국 사회 주요 담론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한국전쟁>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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