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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9 신년기획 인터뷰] `임정둥이`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매일경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1-02 09:10
조회(1060)
#1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9&no=1062 (306)

독립운동은 南北 공통분모…지렛대삼아 한반도 평화 일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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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태어나 자란 `임정의 손자` 김자동 회장(오른쪽)이 지난달 28일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딸 김선현 오토인더스트리 회장과 함께 옛 기억을 돌아보고 있다. 부녀는 임정 알리기에 평생을 바쳐왔다. 김자동 회장 등 뒤의 조형물은 상하이(아래쪽)와 자싱(위쪽)의 임정 청사 주거지를 복원한 것이다. [이승환 기자]`임정둥이`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의 목소리는 가늘고 떨렸다. 격동의 20세기를 살아낸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안팎을 기억해내는 대목에선 굵은 목소리로 순간 돌변했다. 질문 하나에도 대여섯 명의 이름을 동원할 만큼 생생하고 또렷한 기억을 탁자 위에 풀었다. 보성중학교(중·고등학교 통합 6년제)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김 회장은 1950년대에 기자로 젊음을 바쳤고, 1980년대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번역한 현대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두 시간 넘게 이어진 김 회장의 목소리를 일문일답으로 싣는다. ―시곗바늘부터 돌려보겠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저녁은 영원히 멈춘 시간일 테죠. 그날의 풍경을 기억하십니까.

▷광복군 숙소는 임정 청사에서 100m쯤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광복군에 배치될 청년들 거주지였죠. 그날, 저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일본에 원자탄이 두 번 떨어진 후라 사실 일본의 항복을 예감하기도 했어요. 나동규가 뛰쳐 들어오며 외칩디다. "만세! 일본군이 항복했다!" 속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고 벌떡 일어나 청사로 뛰었습니다. 충칭 시내 전체가 만세 열창이었습니다. 자정 무렵, 부모님이 계신 숙소, 그러니까 한독당사 2층으로 갔지요. 평소 일찍 잠을 청하던 부모님도 그날은 잠을 못 이루시더군요.

―그 시간, 선친의 대화를 기억하십니까.

▷거대한 환희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한국광복군 정진대원의 국내 진격을 위한 1차 훈련이 8월 초순에 끝났고 제1진을 보내려던 참이었으니까요. 혜화동에 살다 충칭으로 건너온 사촌형도 광복군 소속이었습니다. 서울 지리를 잘 아니 투입시키겠다는 의미였죠. 그만큼 광복군 전략은 구체적이고 치밀했습니다. 광복군이 국내에 잠입해야 하는데, 파견을 못하게 된 겁니다. 임시정부의 모든 이는 그날 밤 똑같은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당시 백범을 `아저씨`로 부르셨다지요. 백범은 회장님을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이 몸의 아명은 김후동(金厚東)이었습니다. 백범은 절 `후동이`로, 어머니를 `후동 어멈`이라 부르셨죠. 백범은 제 증조부를 선생으로 모셨으니 제 아버지도 동배로 여겼나 봅니다. 두 분이 형제처럼 지내셔서 남들이 백범을 `할아버지`로 부를 시기에 저만 `아저씨`라 불렀습니다. 이런 광영이 또 있겠습니까(김 회장의 부친은 성엄 김의한 선생, 모친은 정정화 여사다. 성엄의 부친, 즉 김 회장의 조부는 동농 김가진 선생이다).

―백범과 `후동이`의 관계는 살가웠나요.

▷글쎄요. 자주 심부름을 시키곤 하셨던 것 같아요. 임정 어른들이 다니던 회사에서 월급을 받아오면 귀한 초콜릿을 사다 주시곤 했어요. 백범이 주신 초콜릿 맛은 어렴풋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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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와의 추억도 있나요.

▷윤 의사의 아들은 제 또래였습니다. 부인과 아들은 충남 예산 고향에 두고 윤 의사만 홀로 상하이에서 타국살이를 한 거죠. 그래서인지 윤 의사가 절 아끼셨습니다. 한 번은 고향의 가족들이 남편 먹으라고 예산에서 상하이까지 사과를 한 상자 보냈어요. 한 알씩 나눠 먹고 나머지는 훙커우공원에 좌판을 벌여 팔았죠. 상하이에서 사과는 귀한 과일이었습니다. 윤 의사가 김영린에게 사과를 얼마에 팔라고 시키고서는 바로 옆에서 일본인과 `시시덕 거리며` 얘길 나누더랍니다. 잡담이 아니라 정보 수집이었던 거죠. 얼마 지나지 않아 의거를 일으키셨습니다. 그게 1932년입니다(훙커우공원은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한 장소다).

―광복 후, 충칭과 상하이에 체류하다 1946년 5월에서야 고국으로 향하는 LST수송선에 올랐습니다. 사흘 여정이었는데, 맨 아래층 선복(船腹)에 누워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어린 나이였으니 뭘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신탁통치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만큼은 어린 나이에도 걱정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까지 스탈린이 신탁통치를 주도한 것으로 세상에 알려져 있었습니다. 고국으로 가는 배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선입견을 막연히 가졌던 기억이 있습니다(그로부터 만 9년 뒤인 1955년 3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1943년 2월 열린 얄타회담 전문(全文)을 입수해 특종을 터뜨린다. 얄타 문건은, 신탁통치안이 소련이 아닌 미국의 첫 구상이었음을 증명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1954년부터 기자로 일했던 김 회장은 미국대사관에서 논쟁의 뉴욕타임스 지면을 가져와 64쪽의 원문을 분석한 뒤 국내 최초로 보도한다. 특종이었다).

―임정 요인 중에 보고 싶은 분은.

▷국무위원 대다수를 전부 `아저씨`라 부르고 지냈으니 모두 보고 싶죠. 이동녕 선생, 이시영 선생이 그립습니다. 방만 달랐지, 한 집에 살다시피 했으니까요. 엄항섭 선생도 보고 싶습니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까지 통달한 인재였으니 백범에겐 최측근 어시스턴트였습니다.

―중국 내에서 복원이 필요한 항일 유적지는 또 어디일까요.

▷중국에서 청사를 잘 보존했느냐, 이 얘길 하려면 먼저 우리나라가 부끄럽다는 말부터 하고 싶어집니다. 중국에선 보존이 상대적으로 잘되어 있는 곳도 많아요. 한국엔 임시정부를 제대로 추모하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어느 정부에서도 임정 유적지를 제대로 보존하려는 진의가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에요.

―설계안을 둘러싸고 최근 다소 파문이 있어 안타깝지만, 그간 고대하던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이 본격화된다는 점은 기쁜 일인 듯합니다.

▷역대 정부는 그렇지 않았어요. 문재인정부가 이제라도 관심을 갖고 제대로 추진하니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남·북·미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임정의 진짜 뜻을 실현하는 건 통일이란 생각도 드는데요.

▷평화를 위해선 북한과의 동질성 회복이 우선이라고 봅니다. 독립운동사는 남북의 공통분모죠. 독립운동 정신을 함양할 때, 한반도 평화도 오리라 기대합니다.

―주상하이 총영사관 초청으로 지난달 다큐멘터리 음악극 `길 위의 나라`가 상하이에서 무대에 올랐습니다. 한국에서의 초연을 보셨을 텐데요.

▷독립운동가가 직접 쓴 회고록을 읽어주니, 현장성과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학생들이 극으로도 만들어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모친인 정정화 여사의 항일투쟁을 두고 "고초와 간난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한 편의 대서사시"라고 회고록에 쓰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모친은 아들에겐 헝겊신을 만들어주고, 영어 철자까지 공부해 아들을 가르치는 헌신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서당이나 학교 문 앞에도 안 가봤어요. 외가가 보수적인지라 유년의 모친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오라버니를 가르치는 가정교사에게서 웬만한 건 다 배웠다고 하더군요. 상하이 시절엔 교민 중에 영어 잘하는 분이 있어서 직접 배우셨고, 이어 저를 가르치셨어요. 중학교 1학년쯤 돼서 제가 영어를 더 잘하게 되니 `이제 됐다`시며 더는 안 가르치시더라고요(웃음).

―`임정의 며느리` 정정화가 아니라, 외아들로서 `어머니 정묘희(본명)`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 臨政정신 알리기를 16년째…더빨리 시작 못한게 아쉽죠
기념사업 이어받은 김선현 오토인더스트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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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인 충칭에서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찍은 사진. 김자동 회장(맨 앞줄 오른쪽 둘째)과 김선현 회장이 동행했다.

어른 손바닥만 한 휴대용 돋보기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보청기 없이 대화가 힘들고, 두 개의 지팡이로 온몸을 지탱하며 걸을지언정 김자동 회장의 기억은 뜨거웠다. 미리 보낸 질문지에 하루 전 빼곡한 답변을 써두고 안경 너머 돋보기를 동원해 자필을 읽어가며 그는 어렵사리 답변을 이어갔다. 중국어, 한문, 영어, 때로는 필담까지 동원한 대화에서 `100년 임정`의 기억은 소스라칠 정도로 육화(肉化)되어 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개정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 기술되자 김 회장은 임정 기념사업을 구상했다. 2004년 사단법인을 만들었다.

부친의 뜻을 이어 기념사업을 막후에서 지원한 김선현 오토인더스트리 회장이 이날 부친의 회고를 도왔다. 김선현 회장은 둘째 딸이다. 회사와 기념사업회란 두 가업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증조부인 동농 김가진을 체계적으로 알리려던 목적이었어요. 아직도 상하이에 묻혀 계시니까요. 2002년께 아버지께 제안을 드렸죠. 일제 시대 반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구속자를 냈던 대동단 총재인 동농의 업적을 체계적으로 알리겠다고요. 아버지의 답은 보다 거대했어요. 자손 의지에 따라 기념사업회가 있거나 없는데, 우리는 한 인물이 아니라 임정의 정신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요. 내년이 벌써 16년차가 되는 해네요." 기억을 잇는 김선현 회장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2017년 12월, 충칭 임정 청사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 옆에 이들 부녀가 나란히 섰다. 문 대통령 내외와 부녀가 맨 첫줄에 섰다. 1945년 11월 3일, 백범 등 임정 요인이 충칭의 임정 마지막 청사 계단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같은 자리에 선 건 73년 만에 첫 사례다.

"광복 후 귀국 절차를 수소문하느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먼저 상하이로 떠난 뒤였어요. 그래서 1945년 사진에는 아버지 얼굴이 없습니다. 대통령, 아버지가 한 자리에 서신 걸 보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과거가 생각났습니다." 김자동 회장도 말을 이었다. "광복회장을 지낸 고 윤경빈 선생이 있었지만 작년에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 나뿐이라는 생각에, 지팡이 두 개 들고 선현이 대동해 다녀왔습니다."

김선현 회장은 조모의 기억을 깊게 털어놨다. 상하이 임정에 독립자금을 조달하는 밀사인 정정화 선생의 별명은 `조선의 잔다르크`다. 친할머니의 포근함이 김선현 회장의 기억에도 있을까.

"서른세 살까지 할머니랑 살았어요. 다섯 살의 질문이 할머니와의 첫 기억이에요. 제가 물었죠. `할머니, 배고픈 게 뭐야?` 제 양볼을 따뜻하게 감싸시더니 `세상에 굶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손녀가 그런 얘길 하누?` 하시더라고요. 어렴풋이 의미를 깨달았던 것 같아요. 모두가 굶주렸던 100년 전의 나라, 그럼에도 타인을 향한 이타심이 몸에 밴…." 탁자에 눈물이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 김자동 회장은…

△1928년 10월 17일 중국 상하이 출생 △중국 소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성장 △1949년 서울 보성중학교(6년제) 졸업 △1949년 서울대 법학과 입학, 전쟁으로 학업 중단 △1950~1954년 주한미군 통역관 △1954~1961년 조선일보·민족일보 기자 △1962년 일요신문 취재부장 △1998~2003년 재이스 회장 △2004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취임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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