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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1919 한겨레] 황포강변에 부는 것은 나라 잃은 민족의 바람인가-한겨레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9-01-02 10:41
조회(234)
#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76535.html#csidxef… (119)

〈기미년 통신〉 서곡 ① 독립의 희망 ‘상해 탐방기’

여운형·장덕수·선우혁·조동호·김철…「동양의 런던」 상해에는 「총대 없는 독립군」이 그득하다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삽화가 김대중

삽화가 김대중



 


[191 8년 12월27일 상해/엄지원 기자] “부우우우우… 부우우우우….”

 


유니언잭과 일장기, 삼색기를 각각 매단 배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출항과 입항을 알리는 뱃고동을 요란스럽게 울려댄다. 누런 황포강이 증기로 뒤덮여 삽시간에 부옇게 흐려졌다. 이내 안개가 걷히자 황포강변에 늘어선 고루거각들이 위용을 드러냈다. 경성에선 볼 수 없던 4~5층짜리 유럽풍 ‘빌딩’들은 대개 영국 은행이다.

 


‘동양의 런던’이라는 중국 상해 황포강변 풍경에 넋 놓을 새가 없다. 크고 작은 선박들의 소음이 잦아들자 이번엔 사람이 야단이다. 부둣가에 늘어섰던 쿨리(중국 하층노동자)와 인력거꾼들이 달려들어 배에서 내리는 짐과 사람을 서로 차지하려 악다구니를 쓴다. 짐이랄 것이 없고 행색이 초라한 기자야 무사통과지만, 인천항에서부터 함께 온 조선인 남성이 곤혹스럽게도 인력거꾼에게 붙들렸다. 알아듣지 못할 중국말로 떠드는 인력거꾼을 뿌리치며 남자가 화를 내려던 찰나 누군가 그의 팔을 조심스럽게 붙들어 말렸다.

 


 


“조선사람은 대사와 같다” 항구에서 만난 신한청년당원 여씨
불란서 조계지 메운 운동가들과 엄혹한 감시에도 암중모색
상인 한진교 물심양면 후원…김규식 파견도 이들의 성과

 


 


“상해에서 조선 사람은 항상 외교관의 마음가짐으로 주의해야 합니다.” 몸을 돌려 이 소요에 느닷없이 끼어든 조선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말쑥한 프록코트 차림에 잘 다듬은 카이저수염의 신사. 상해의 교민들에게 “인력거꾼과 품삯을 다투지 말고, 노상에서 취한 모습을 보이지 말라”며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대사 혹은 공사”와 같은 처신을 당부했다던 청년 독립운동가 여운형(32)씨였다. 기미년(1919)을 코앞에 둔 무오년(1918) 12월27일 기자가 상해를 찾은 것은 여씨 등 상해의 젊은 층이 조직한 신한청년당의 활동을 심층 취재하기 위해서다.

 


 




여운형(32)씨.

여운형(32)씨.



 


여씨는 1년 전인 정사년(1917) 남경에서 늦깎이 영문학 공부를 마치고 이곳 상해로 왔다. “남경은 정치 무대로서 상해보다 협소하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확실히 지금 상해는 드넓은 혁명의 땅이다. 신해년(1911) 청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국을 탄생시킨 신해혁명의 기운이 전 세계 망명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포목상이나 인삼 행상을 하는 조선인이 몇몇 터 잡고 살던 이곳에 강제병합 직후인 신해년 신규식(38)씨가 망명해 오면서, 상해는 나라 잃은 독립운동가들의 주요 터전으로 떠올랐다.

 


 


국제정세 격변기를 맞아
독립운동 새 세대가 오려나

 


 


국내와 북미, 간도와 연해주의 독립운동가들을 연결하는 중 계지점인 이곳에는 미주의 독립운동가들이 발행하는 <신한민보>를 비롯해 전 세계 한인의 ‘불온 인쇄물’들이 배달되어 온다. 국제 정세에 민감한 젊은 운동가들이 모여드는 이유다. 경술년(1910)부터 올해까지 상해로 이주해온 독립운동가는 박은식(59)씨 정도를 빼면 열에 아홉이 20~30대의 청년층이다. 새로운 세대가 상해에서의 독립운동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달까.

 


게다가 지난달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세계대전이 막을 내리면서, 조선 사람들을 비롯한 상해의 약소국 망명자들 사이에는 축제 같은 흥 분감이 감돌고 있다. 국제 정세의 격변기를 틈타 우리의 독립을 꾀할 수 있다고 믿어온 젊은 운동가들이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려는 참이다. 여씨는 이들 젊은 운동가에게 신뢰받을 만한 새 인물로 꼽힌다. 상해에 온 지 1년 만에 그는 상해고려교민친목회를 조직해 회장을 맡았다.

 


여씨가 상해 교민들의 핵심 축이 된 까닭은 또 있다. 미국인 목사 조지 피치가 운영하는 기독교계 서점 ‘협화서국’에서 판매부 주임을 맡고 있는 그는 미국으로 가려는 조선 사람들의 밀항을 은밀히 돕고 있다. 피치 목사와 그의 아들 애시모어 피치는 모두 조선 사람들에게 온정적이다.

 


일제의 도미 제한 정책에 미국 유학길이 막힌 조선의 젊은이들이 이런 소식을 듣고 상해로 몰려들고 있다. 여씨는 “협화서국은 대개 여행권 없이 미국으로 가려는 사람 등을 미국 기선회사와 관계당국에 교섭하여주는 일종의 알선기관”이라며 “매년 수백명씩 지원자가 있어 일이 몹시 분주하다”고 전했다. 그의 집 주변은 이런 이유로 그를 찾는 젊은 식객들로 항상 시끌벅적하다. 나중에 한국광복군 장군이 되는 이범석(18)군도 몇해 전 고국을 떠나와 지금은 여씨의 소개로 운남군관학교에 다니고 있다.

 




상해 풍경.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상해 풍경.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여씨를 비롯한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은 대부분 상해의 불란서(프랑스) 조계지에 모여 산다. 이곳 조계는 불란서 정부가 다스리는 ‘나라 속 나라’다. 청나라는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배하면서 1842년 남경조약을 맺어 서구 열강에 이런 치외법권 지역을 내주기 시작했다. 영국·미국·일본 등에서 온 이주민들이 공동 자치로 꾸려가는 공공조계나 중국 관할구역인 화계에 견줘, 불란서 조계는 일본의 영향력이 약해 독립운동가들의 운신 폭이 넓다. 일제는 “불란서는 자유·평등을 이상으로 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조계 내에서도 분위기가 그러하며, 독자적으로 정치하고 사법 사무상에도 공조에 응하지 않는다”며 “조선인은 이 국제적 관계를 이용하고 일본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이 조계 안에서 각종의 책동을 개시함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있다.

 


거리의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백화점·호텔 같은 마천루가 휘황찬란한데다 세계 58개국에서 몰려든 외국인들로 번잡한 공공조계와 달리 주택들이 밀집한 불란서 조계는 고즈넉하다. 돈벌이를 위해 상해를 찾은 한인들이 공공조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반면, 독립운동가들은 이곳 불란서 조계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있다. 이태 전 신규식·박은식·신채호 등 상해 1세대 독립운동가들이 ‘대동단결선언’을 통해 임시정부 수립 등을 주장하고 나선 뒤 불란서 조계 밖에서 일제의 감시와 체포가 한층 강화됐다.

 


이곳 불란서 조계에서도 문턱이 닳도록 많은 한인이 드나드는 곳은 한진교(31)씨가 운영하는 한약방 ‘해송양행’이다. 4년 전까지 북경에서 이발소를 하다 상해로 건너온 한씨는 인삼을 팔아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개성에서 수 입한 인삼을 중국 전역 판매망을 통해 거래한다. 고려 인삼은 중국인들에게 ‘불로초’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한인이 직접 판매하는 인삼은 상해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갑인년(1914) 조사에 따르면 상해 거주 한인 53명 증 8명이 인삼 행상이었을 정도다.

 


한씨는 단순한 장사치가 아니다. 그가 벌어들이는 돈의 대부분은 독립운동가들에게 흘러들어 간다. 2년 전 상해의 한인들이 민족 교육을 위해 인성학교를 세울 때 목돈을 내놓은 이가 한씨였다. 이번에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37)씨를 파견할 때도 여비의 일부를 한씨가 마련했다. 이런 그를 가리켜 누군가는 “총대 없는 상인독립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와 여운형씨는 올해 들어 토요일마다 꾸준히 여씨 자택에서 또래 젊은 운동가들과 모임을 하며 독립의 구체적인 방책을 상의해왔다. 지난 11월 결성된 신한청년당이 그 결과물이다.

 


‘터키청년당’을 모방해 40살 이하 상해 교민들로 구성한 신한청년당의 초기 구성원은 6명이다. 여씨의 절친한 대학 동창이자 상해 <중화신보> 기자인 조동호(26)씨, 일본 조도전(와세다) 대학에서 유학한 뒤 상해에 온 장덕수(24)씨, 선우혁(36)씨, 김철(32)씨 등이다. 특히 장씨는 이들 가운데 가장 어린 축이지만 국제 정세에 밝은 편이어서 여씨의 전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 여씨는 “연배로 말하면 내가 (신한청년당의) 수령 같지만 장덕수 쪽이 나보다 지식이 앞섰기 때문에 내가 수령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22살이던 병진년(1916) 이미 국제적 반일 비밀결사 조직인 ‘신아동맹당’ 창당에 앞장섰던 장씨는 이미 베테랑 운동가다. 미국 유학을 가려다 뜻밖에 상해에서 뜻이 맞는 동지들을 만나 의기투합하며 이곳에 눌러앉게 되었다고 한다.

 


일찍 신문물을 접해 젊고 개방적인 탓인지 이들 당원은 일을 추진하는 데에 거침이 없다. 지난달 27일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친구 찰스 크레인씨의 환영회에 참석해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과 관련한 대화를 나눈 데 이어 여씨와 장씨는 곧바로 독립청원서 작성에 돌입했다. 여씨는 이를 영역해 타이핑하고 한 부는 윌슨 대통령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찰스 크레인씨에게, 다른 한 부는 ‘반일 미국인’으로 꼽히던 상해의 평론지 <밀러드 리뷰> 주필 토머스 밀러드씨에게 건넸다. ‘신한청년당 총무 여운형’ 명의로 작성한 청원서에는 “일본은 전제주의, 군벌주의 국가로 자유주의, 인도주의, 평화주의, 국제연맹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시아의 스파르타”이니 한국의 독립을 도와달라는 호소가 담겼다. 이 모든 일이 사흘 만에 추진됐다.

 


이 청원서 작성을 출발 삼아, 여씨를 비롯한 신한청년당 당원들은 상해의 울타리를 넘어선 독립운동 계획을 모색하고 있다. 12월 내내 김규식씨의 파리행 여비를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한 것은 물론이고, 김씨가 상해에 도착하는 대로 각 당원은 일본 동경과 경성,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흩어져 김씨의 파리 외교활동과 연계한 독립운동의 필요성을 알릴 예정이다.

 


나중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은 이런 신한청년당의 활동을 “표면상 정숙하던 한토(얼어붙은 땅) 삼천리에 장차 일대풍운이 일어날 징조”(1919년 8월26일치)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일어선 상해의 이 청년들 중 누구도 자신들의 날갯짓이 불러올 태풍을 아직은 차마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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