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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호국보훈의 달, 국립 현충원에 대한 단상
글쓴이 관리자
날 짜
08-04-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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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승 (본회회원, 민족21기자)

지난 6월 6일 현충일, 23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국립묘지법 개정 및 반민족행위자 김창룡 묘 이장추진 시민연대’와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소속 회원 100여명이 국립 대전 현충원 김창룡 묘에 모여 나무로 만든 삽으로 묘지를 파내는 ‘파묘 퍼포먼스’를 벌였다는 보도를 접했다. 이들이 들고 나선 나무 삽에는 ‘민족반역자 김창룡’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지난 10년간 김창룡 묘 이장을 추진해온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필자는 지난 1993년 별세한 백강 조경환 선생을 떠올렸다. 마지막 임정요인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백강 조경환 선생은 1993년 별세하면서 “독립유공자로 둔갑한 친일파가 묻혀 있는 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로부터 15년. 강산이 변하고도 변했을 세월이지만 국립 현충원에는 여전히 친일파가 버젓이 누워있고, 내년 현충일에도 이러한 공방은 재연될 전망이다.

현재 국립 서울 현충원에는 백낙준, 황종률, 이응준 등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일제에 부역한 혐의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친일 인사 9명이 안장돼 있다. 서울 동작동 현충원 제1유공자 묘역에는 국가유공자 백낙준이 묻혀있다. 백낙준은 일본의 황민화 정책에 앞장섰던 대표적 친일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일본의 대동아전쟁을 찬양하는 강연에 나서기도 했던 인물이다.

대사급인 황종률도 같은 묘역에 안장돼있다. 황종률은 1932년 만주국 정부 관리 양성 기관인 만주대동학원 3기생으로 1975년 일본 수상이 된 기시와 손잡고 한일간 인맥을 형성한 대표적인 친일파다.

제2장군묘역에는 이응준의 묘가 있다. 이응준은 일본 육군사관학교생으로 징병제가 공포되자 조선인 청년들의 참전을 선동한 인물로 알려진다. 이밖에도 애국지사 묘역 177묘비의 주인공은 친일 승려 이종욱이다. 이종욱은 창씨개명을 하고 전국 사찰에서 일본군의 무운장구를 비는 기원제를 독려하는가 하면 2차 대전 말기에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사찰의 범종과 쇠붙이 등을 거둬들이는 등 친일 행각을 펼쳤다. 이 밖에도 동작동 묘역에는 엄민영, 최창식, 조진만, 이종찬의 묘가 조성돼 있다. 이들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예정인 친일인사들이다.

대전 국립 현충원에는 앞서 언급한 친일 군인 김창룡과 김응순의 묘가 있다. 특히 김창룡은 일제시대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항일 독립투사를 학살한 전력 등 때문에 그 동안 각계로부터 줄기차게 묘지 이장 요구를 받아온 인물이다.

과거사 청산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시민사회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친일파들의 국립묘지행이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지난해 7월 국가보훈처는 국립묘지법을 개정하면서 반민족행위자를 강제이장 할 수 없게 돼 있는 법 조항에 대해서는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국회 또한 마찬가지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해 2월 반민족행위자에 대해 국립묘지 밖으로 이장이 가능토록 하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 청원서를 제출했지만 역시 이를 외면했다. 그리고 지난 4월 국회에서는 ‘국립묘지법 개정법률안’이 재상정됐다. 개정안에는 내란·외환죄를 범하거나 친일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이미 안장된 경우라도 이장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법 통과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국가보훈처도 시민단체들의 이장요구에 대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우리가 국립 현충원에서 친일행위자와 독재자를 정리해야 하는 이유는 그곳이 그저 과거만을 기억하는 공간이 아닌, 현재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 보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소리 없는 역사교실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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