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열린마당 > 독립정신 권두언

제 목 <2007년 9월>통일의 길
글쓴이 관리자
날 짜
08-04-17 18:15
조회(2199)
트랙백 주소 : http://kopogo.com/bbs/tb.php/president/19 

조영건 (6.15 실천 남측학술위원장)

한반도에 천지개벽의 서운이 닥아오고 있다. 유엔군 사령관 중장 클라크를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 사렬관 원수 김일성을 타방으로 하는 6.25 전쟁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는 확실한 일정이 6자회담을 매개로 한 북.미간 핵문제 해결과 정상수교의 그림표로 제시되고 이 정세에 힘입어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남북 양 정상의 회동이 만천하에 공포되었다.

때는 바야흐로 일백년 식민과 분단의 오욕의 역사를 마감하고 자주와 통일의 민족대동세상을 펼칠 수 있는 국운 흥륭의 새세기이다. 민족이 환호하고 세계가 지지하는 이 역사적 대사변을 마땅치 못하게 생각하고 사적 이해와 파당 손익을 주판 팅기는 소인배 근성에 허우적거리며 정상회담에 딴지를 거는 훼방꾼들은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는 당달봉사에 지나지 않으며 도도한 역사의 대하에서 침몰할 수 밖에 없다.

남북정상 통일의 길이 어떤길이며 누가 고르고 누가 뚫은 것이냐, 분단의 장벽과 철책아래 한줌 흙 한포기 풀을 무심히 스치지 마라, 그 속에 통일염원을 목숨으로 대신한 이름없는 애국자의 뼈와 살이 삭아 국토를 이루고 있는가를, 발에 채이는 돌맹이 돌무지를 무심히 지나치지 마라, 그 아래 통일로 청춘을 산화한 애국자의 해골이 묻혀 있는가를, 흐르는 강하 물줄기를 무심히 대하지마라, 그 하상에 통일을 가로막는 사선을 넘고야 말겠다던 애국자의 주검이 박혀 있는 줄을, 이 나라의 바다를 무심히 쉼호흡하지 말라, 통일의 험한 노도에 애국자의 투지가 수장되고 통일이 죄가 되어 수많은  민초가 피의 바다로 붉게 물들여진 것을, 조국의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지 마라, 이 창공에 통일로 못다한 생령이 구천의 원혼이 되어 떠돌고 있는 줄을, 땅과 바다와 하늘을 뚫어 통일의 대로를 열어놓은 것은 다름아닌 통일애국열사의 희생과 주검이다.

한 인간의 역사행로에서 한 순간을 민족을 놓지지 않고 민중의 바다에서 애국의 험로를 개척한 지도자는 민초 애국자가 닦아 고르놓은  이 통일의 대로를 걸었다.
몽양이 그러했고 백범이 그러했다. 그 길이 테러와 암살이 죽음을 강요하는 역사의 희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지도자는 의연하고 당당했다. 이렇게 하여 선대의 희생위에서 오늘의 통일시대 통일상봉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땅을 가로지르든 하늘을 나르든 오늘의 통일행로에서 이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1940년 9월17일은 임시정부가 중경애서 광복군을 결성하고 전례식을 거행한 날이다. 이국 땅 남의 통치권 하에서 우리민족의 독립군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중원 땅 애국투사와 열혈청년들이 항일의 총대에 집결하였고 군자금은 저 태평양 건너 미주. 하와이에서까지 조달되었다. 연합국 미군의 지원과 협동이 국공합작의 중국항일투쟁 뿐만아니라 광복군 합동작전까지 현실적 체계로 되어 있던 조건에서 조기 일제의 항복선언으로 독자적인 민족무력 항일독립군에 의한 완벽한 자주적 해방건국은 역사에 실현되지 못하였다. 남한에 군정을 틀어 쥔 미군은 임시정부 요원을 개인 자격으로만 입국하도록 결정했다.광복군은 해산당하고 해방과 건국의 산파역할은 공수표가 되어 버렸다. 임시정부가 중경을 떠날 때 중국 공산당 본부에서 주은래 동필무 등이 국무원 전체를 초빙하여 송별연을 열었다. 국민당 정부도 송별연을 열었는데 장개석과 중앙정부와 중앙당부가 다 참석하고 장래 중.한의 영구행복을 도모하자는 결의가 있었다. 미 군정청 지침은 임시정부 불인정이었다. 중국대륙에서의 항일 민족정치계열 한국국민당,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3당 통일로 성립된 한국독립당은 친일보수지주세력을 감싸안은 미군정 비호의 한국민주당 발호로 뒤안길로 밀리게 되고 단선단정으로 민족분열 국토분단위에서 권력을 틀어쥐고져 하는 이승만의 독선 행각으로 해방국면 정치에서 짓밟히게 된다. 독립을 분단반대 통일로 열호한 백범은 이승만에 타살되어야만 했다. 이 비극의 장의 배후에는 무대연출자 미국이 있었고 이승만은 미국의 시종이었을 따름이었으며 이런 경위로 자주독립통일은 실종되어 버렸던 것이다.

임시정부가 주축이 되고 광복군으로 건국건군의 신생국가를 펼칠 수가 있었으면 미쏘 군사점령에 의한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에 따른 정치혼란도 일단 민족카테고리의 동체성속에서 정리되고 융화되어 갈 수 있었음은 틀림없다. 그리고 평화통일도 해방국면에서 조기 실현될 수 있었을 것이며 동족상잔의 전쟁같은 것은 원초적으로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군의 날 10월 1일이 북진개시일이라고 해서 6.15 통일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논의와 광복군과 그 창설날짜를 되새겨보는 노력들이 있다. 우리민족 근현대사의 비극은 모두가 외세의 군사적 침략의 연속이었다. 운양호를 앞세운 병자수호조규의 침략, 동학농민군을 압살한 일본군대의 침략, 국모 민비를 시해한 일본깡패군대의 만행, 대한제국군대의 해산과 비법적 강제합방, 훈도까지 칼을 차고 교실에 선 일제무단통치, 군군일제의 총동원령 징집, 징병, 종군위안부, 동아세아. 태평양전쟁 총알받이 우리민족 죽이기 이 모두가 군사침략이었다. 그리고 해방도 또 다른 미쏘 군대의 점령과 군정이었다. 그것이 60년이 넘도록 일시 휴전 전쟁상황으로 연속되고 준전시체제의 꼭대기에는 미군의 작전지휘권이 엄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철길이 놓여도 쇠문을 여닫는 권한은 미국군대가 쥐고 있다. 통일의 길은 돈벌이의 시장개척이 아니고 완전무장으로는 한마당 화합잔치는 가식에 지나지 않는다. 3.1 운동을 진압 학살한 용산 일제 조선군사령관 아들 우쓰노미야 의원(일.조의원우호협회회장)이 우리민족에 사죄했던 것은 통일대로를 군사로 가로막고 있는 냉전 골수에게 반면교사가 된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즈음해서 지도자와 정치권의 대오각성을 촉구해 마지 않는다.

 
 한‧중‧일 올림픽‧아시아…
 한‧중‧일 올림픽‧아시아…
 ‘촛불’ 너머 새로운 백 년을 봅니다
 국군의 날을 9월17일로 하자
 북핵 해법에 관한 불편한 진실
 <3.1운동-10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
 촛불의 아들, 문재인 정부의 가능성
 차기 정부의 과제
 트럼프와 미국 민주주의의 종말
 평화가 제2의 광복이다.
 ‘건국절’, 발상 자체가 문제다.
 1  2  3  4  5  6  7  



(우:03173)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길 19 로얄빌딩 602호 / TEL : (02)3210-0411,  732-2871~2 /   FAX : (02)732-2870  
E-MAIL : kpg19197837@daum.net
Copyright 2005 Korea Provisional Governmen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