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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09년 5,6월호> 최악의 남북관계, 임정의 경험에서 배우자
글쓴이 관리자
날 짜
09-05-1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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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남북관계, 임정의 경험에서 배우자

신명식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이사)

북한이 인공위성(또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후 남북관계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2년이 지났지만 직접대화를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북한은 노골적이고 본격적으로 핵무기개발에 나설 태세을 보이고 있다.
과거 노무현 정권 때는 6자회담에 나선 남측 협상대표들이 “미국과 직접대화에만 매달리지 마라. 동포인 남측 위상을 올려줘야 북측에 유리하다”는 논리로 설득에 나섰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국제무대에 나가서 ‘말리는 시누이’ 역할을 한다. 과정이 어찌됐든지 “6자회담에 다시는 절대로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한 북측의 교조적 입장을 일방적으로 편들 생각은 없다. 하지만 대화와 협상이란 상대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인공위성(또는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앞두고 일본 정부의 움직임은 위험수위를 넘나들었다. 만약 일본이 요격을 시도했다면 한반도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을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나라가 떠안아야 한다. 일본이 총선과 군비팽창이라는 이해관계에 빠져 강경발언을 계속하는 동안 우리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한 것은 주권국가답지 못했다. 뒤늦게 대통령이 “미사일 발사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반대 한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뒷북치기가 되고 말았다. 이마저도 일관성 있는 발언은 아니었다.

상대를 인정하고 양보해야 대화 가능

60년 동안 이념을 달리해 온 체제가 대화를 하고 나아가 통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평화분위기를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좌우대립을 극복한 소중한 유산을 남겨줬다.
1919년 4월 13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오랫동안 국가의 기본인 행정부, 의회, 군대를 갖추지 못했다. 양자강 이남에 모여 있던 불과 수천 명이 수십 개 정당으로 나뉘어 있었다. 10명이 모이면 새 정당을 만들었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 발발이후 독립운동세력의 통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937년 8월 17일 우파진영은 백범 김 구 등이 이끌던 한국국민당을 중심으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광복진선)’이라는 연합체를 결성한다. 그해 11월 좌파진영은 약산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민족혁명당을 중심으로 ‘조선민족전선연맹(민족전선)’을 결성한다. 
그러나 좌파세력들은 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불관주의’를 고수했다. 장개석 총통은 1938년 11월 백범을, 1939년 1월에는 약산을 초대해서 양 세력의 결합을 종용한다. 1939년 5월 두 사람은 ‘동지 동포에게 보내는 공개성명서’를 통해 단일당 구성을 결의한다. 이어서 8월 쓰촨성(四川省) 치장(棊江)에서 7당통일대회, 5당통일대회를 열지만 좌파정당의 이탈로 단일당 건설은 실패한다.
1940년 4월 13일 임정 주석, 의정원 의장을 지낸 석오 이동녕이 별세하자 그의 유언을 받들어 5월 우파3당이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백범을 집행위원장으로 선출한다. 이어서 9월 17일 한국광복군 창설까지 발전하지만 임시정부는 여전히 한독당 단일정당에 당 간부가 국무위원을 겸직하는 구조였다.

행정 의회 군 모두 좌우합작 성공

1941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회는 건국원칙을 밝힌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제정 공포한다. 좌우합작 이념을 반영해서 정치 경제 교육 평등의 3균주의를 바탕으로 삼은 강령이다. 명분을 얻은 좌파 조선민족혁명당은 임정 불관주의를 버리고 한독당과 통일협상에 나선다.
다음해인 1942년 4월 20일 임시정부 국무회의는 광복군과 조선의용대의 통합을 결의한다. 드디어 그해 7월 조선의용대는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고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에 취임한다. 같은 해 10월 제34회 임시의정원 회의를 통해 좌파진영이 임시의정원에 참여한다. 김규식 장건상은 국무위원에 합류한다.
이로서 임정은 좌우연립내각, 단일한 무장 대오와 함께  여당 한독당, 제1야당 민족혁명당이라는 명실상부한 좌우합작체제를 갖추게 된다. 임정은 좌우 진영은 물론 중도, 무정부주의자에게도 문을 열었다. 백범은 연안에 있던 조선독립동맹 김두봉과 서신교류를 하는 등 통합을 모색 했다.
완전한 좌우합작을 위한 노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1944년 4월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공포한다. 주석의 권한을 강화하는 한편 부주석 제도를 신설했다. 우파(한독당) 김 구 주석, 좌파(조선민족혁명당) 김규식 부주석 체제를 갖춘 것이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해방 후에도 김 구 김규식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고 1948년 5월 평양에서 남북연석회의를 열었다.
임시정부내 좌우세력은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대화하고, 양보하고, 협상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와 싸워 독립을 쟁취할 힘을 키워나갔고, 정식 선전포고도 했다. 하물며 엄청난 전쟁을 치렀고 60년 분단 상황에 놓여있는 남북이 이념이라는 장벽을 넘어서 한반도 영구 평화와 비핵화 나아가 통일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했다. 이념 장벽을 넘어 나라의 힘을 키우고 통일로 가기 위한 노력, 이것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의 지상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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