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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09년 7,8월호> 제헌헌법의 진보성과 현대에서 제헌헌법이 갖는 의미
글쓴이 관리자
날 짜
09-07-2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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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헌법의 진보성과 현대에서 제헌헌법이 갖는 의미

임지봉
(서강대 교수, 헌법학)

  1948년에 제정 공포된 우리 제헌헌법은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의 반만년 역사에서 최초로 혈연에 의해 세습되는 군주가 다스리는 군주국을 버리고 민주공화제를 채택한 점에서 큰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물론 제헌헌법의 민주공화제 채택은 상해 임시정부 헌법인 1919년 4월의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 기원한다. 이 대한민국임시헌장에서 국민의 신임을 얻어 조직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제 국가임명 최초로 선언했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약 5,000년이라 놓고 봤을 때 100년도 안 된 민주공화국의 역사는 우리 민족에게는 아직까지는 ‘최근의 일’이라 할 수 있다.

  1945년 일본천황의 미국에 대한 무조건 항복선언으로 우리가 갑작스런 광복을 맞은 후 3년은, 김구 등의 상해임시정부파, 우리 사회에서 자생해 있던 박헌영 등의 공산계열, 이승만 등의 해외파 등 여러 정치세력들이 각축을 벌이던 정치적 투쟁의 무대였다. 그 3년 후인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 초대 국회의원들을 뽑기 위한 5.10총선거는 헌정사상 최초로 치러진 국회의원총선거였다. 물론 5.10총선거에 모든 정치세력들이 다 참여한 것은 아니다. 신탁통치와 관련해 반탁에서 찬탁으로 돌아선 공산계열, 남한만의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남북협상에 참가한 상해임시정부계의 김구, 김규식 등 민족진영의 일부 인사들에 의해서도 5.10총선거는 거부당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행해진 이 보통선거의 결과 198명의 당선자 중 무소속이 85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승만이 회장, 신익희가 부회장으로 이끌던 범우파 연합체적 성격의 독촉국민회에서 54명, 지주출신 등 보수인사들의 우파정당인 한국민주당에서 29명, 기타 정당 및 사회단체에서 30명이 당선되었다. 따라서 제헌국회에서는 무소속을 제외하면 이승만계와 한국민주당계가 양대 정치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고 제헌헌법도 크게는 이 양대 정치세력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일 수밖에 없었다. 

  제헌국회가 국회의 조직을 마치자마자 구성한 헌법기초위원회가 헌법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헌법기초위원회에서는 보성전문학교 헌법교수였던 유진오의 헌법초안을 원안으로 하고 일제시대 변호사 출신인 권승렬의 초안을 참고안으로 해 토의를 진행했다. 유진오는 한 때 사회주의사상에 깊이 심취했던 인물이었다. 경제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독일 바이마르헌법에서 깊은 감동을 받은 그의 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은 제헌헌법의 초안에 여러 진보적 조항들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두 초안은 모두 정부형태를 의원내각제로, 국회 구성은 양원제로 규정한 것으로 대체적으로 한국민주당의 입장과 비슷했다. 그러나, 이것은 헌법기초위원회의 초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면서 제기된 이승만의 대통령제와 단원제 국회안에 밀려 큰 정치적 풍랑을 맞는다. 그 후 이승만계열과 한국민주당계열의 타협에 의해 이승만의 뜻대로 대통령제, 단원제 국회가 채택되었고, 국무원제와 국무총리제는 한국민주당이 주장한 의원내각제의 요소로서 우리 헌법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제정된 우리 제헌헌법은 전문, 10장, 103조로 구성되었다. 통치구조 부분은 정치적 타협의 색채가 짙었으나 기본권과 경제질서에 관한 조항들에서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내용들이 많은 헌법이었다. 고전적 인권인 자유권 뿐만 아니라 현대 복지국가의 기본권인 사회적 기본권들도 대거 제헌헌법에 들어와 있었다. 노동3권, 생활무능력자의 보호, 가족의 건강보호 등에 관한 조항들 이외에도 특히 사기업 근로자의 이익분배균점권이 크게 눈에 띤다. 물론 근로자의 이익분배균점권은 일제시대 적산의 이익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의 문제를 두고, 자본가가 이를 독점하지 말고 근로자도 발언권과 이익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제헌헌법에 들어간 조항이었다. 당시 적산 처리와 관련한 시대적 고민이 투영된 조항인 것이다.

  제헌헌법의 경제질서조항에도 여러 진보적 색채들이 짙게 나타난다. 정치, 경제, 교육에 있어서의 균등 실현을 목표로 하는 조소앙의 ‘삼균주의’가 1941년에 만들어진 상해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을 거쳐 우리 제헌헌법에도 큰 영향을 준 결과다. 그 결과 경제질서에 있어서도 순수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를 규정한 것이 아니라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사회화의 경향이 짙은 경제질서를 규정했다. 즉, 통제경제 내지 계획경제를 주축으로 자연자원의 원칙적인 국유화, 공공성을 띤 기업의 원칙적인 국․공영제, 공공필요에 의한 사기업의 국공유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입각한 농지개혁이 제헌헌법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이후 1954년의 제2차 개정헌법에서 이승만세력에 의해 많은 통제경제적 요소들이 제거되고 순수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규정하기도 했지만, 다시 그 후부터는 현행헌법에 이르기까지 헌법개정을 통해 계속해서 경제영역에 대한 국가의 부분적 개입과 조정을 확대해 오고 있다. 우리 제헌헌법은 대한민국의 출발이 자유민주주의만을 강조하는 순수 자본주의가 아니라 부의 균등분배와 경제민주화를 지향하는 수정 자본주의에 기반해 있었음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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