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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0년 3.4월> 청산하지 못한 경술국치 100년의 굴레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0-03-02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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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상( 시사IN 기획특집팀장)


청산하지 못한 경술국치 100년의 굴레

2010년 새해는 역사적으로 뜻 깊은 기념일이 많이 든 해다. 그 가운데 20세기를 통틀어 국토와 겨레의 운명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원죄라 할 ‘경술국치’ 100주년을 빠뜨릴 수 없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한 세기 넘도록 지속된 원죄의 굴레를 이제는 벗어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5천년 민족사에 가장 부끄러운 날로 꼽히는 1910년 8월22일 경술국치에는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그럴듯하게’ 체결한 조약이 자리한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대한제국의 외교 사법 군사권을 차례로 빼앗아간 일본은 국권 찬탈 마지막 과정으로 ‘합방 조약’을 체결했다. 이날로 조선왕조 519년 역사는 막을 내렸고 36년간 치욕스런 일본의 식민 통치가 이어졌다. 비록 1945년 해방 후 남북이 갈려 저마다 독립국가의 기치를 내건 지 60여년이 지났지만 일본 식민지 지배가 뿌린 악의 씨앗은 여전히 한일 양국 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렇게 영원할 것만 같은 한일 양국관계의 질곡을 이제는 끊어내자는 조용한 움직임이 한일합방 100년 만에 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시작됐다. 이를 위해 먼저 일본 정부가 이제는 진정한 참회의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일본 내 지식인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양심적인 목소리와 활동이 돋보인다. 이들은 새해 들어 그 상징적 첫걸음으로 100년 전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합방 조약’을 하토야마 총리가 나서서 불법 무효라고 선언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도쿄대학 사카모도 교수와 와다 하루키 교수, 무샤 코지 전 유엔대학 부총장, 오에 겐자부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요카 미야 아사히신문 주간 등 일본 내에서 대표적 지한파이자 양심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이들이다.그러면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한일합방 조약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1965년 한일 국교수립 당시 체결한 한일 기본조약에는 구한말 일제의 강압 아래 체결한 일련의 조약, 즉 을사조약(1905), 정미7조약(1907), 한일합방조약(1910)등의 효력에 대해 제2조에 ‘이미 무효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의 시점을 두고 한일 양국 정부는 지난 45년간 팽팽히 대립했다. 한국정부는 당연히 조약들을 ‘체결할 당시부터 무효’라는 입장을 폈다. 반면 일본은 ‘1945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이 패망한 시점부터 무효’라고 해석한 뒤  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일합방 조약은 국제적으로 합법이고 그에 따른 한국의 식민지 통치가 정당했기 때문에 아무런 사과도 보상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이 협정 체결 당시 일본의 기본 자세였던 것이다. 이런 문제는 당시 박정희 정권이 일제 식민지지배의 본질적 문제들을 비켜간 채 청구권이라는 이름의 경제 원조를 받는 데 급급해 일본에 저자세로 끌려 다니는 졸속적인 기본조약을 체결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컸다. 이런 한일 협정문을 기반으로 한 일본의 고자세와 오만함에 비례해 한국민의 반일감정은 나날이 뿌리 깊어갔다. 계속되는 한국인들의 반일감정 격화와 일본 내 지식인들의 식민지 사죄 촉구 운동이 뒤따르면서 결국 1995년 무라야마 총리 담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식민지 지배의 근거가 된 한일합방조약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라야마는 “한일합방 조약은 정황상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이다. 그 결과 종국에는 한국인에게 많은 고통을 줬다는 점에 대해 사과(오와비)한다”라는 요지로 담화를 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실 인정 표현이었지만 무라야마는 담화 후 자국 보수파 의원들에게 호되게 시달렸다. 당시 “일한 합방조약이 불법적이었다는 뜻이냐”고 따져 묻는 의회 질의에 무라야마는 “강제적으로 맺어진 조약이기는 하지만 국제법상 합법적이었다.”라고 답했다. 무라야마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 표현은 형식상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선언’을 계기로 더욱 진전되었다. 고이즈미는 당시 북일수교 협상을 위해 평양을 찾아 “조선인들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 성격의 합병을 함으로써 조선인들에게 많은 고통을 줬다. 이에 대해 사과(오와비)한다”라고 표현했다. 역사적으로 나온 일본 정부 차원의 최고 사과 표현이다. 결국 지금까지 정리된 한일합방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기본적으로 합법 조약이지만 체결 과정에 강제성이 있었고, 이후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한국인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정도로 정리된 것이다. 남은 문제는 일본 정부가 끝까지 주장하는 한일합방의 합법성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 수년 동안 한국 역사학자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역사학계의 끈질긴 연구와 고증을 통해 한일합방을 포함해 구한말 일제와 맺은 일련의 조약 자체가 국제법에 비춰 불법이라고 볼 증거가 잇따라 발견된 것이다.  먼저 2005년 서울대 이태진 교수는 한일합방 조약문에 대한제국의 국새가 찍혀있지 않고 황제 순종의 친필 서명이 없어 국제법적으로 무효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다. 이는 한일합방이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승인을 거쳐 체결됐기에 합법이라는 일본 측 주장을 뒤엎은 것으로 국제법상 당시부터 무효임을 뒷받침한다. 또 서울대 국사학과 이상찬 교수는 지난해  1910년 한일병합조약 문서의 물리적 외형적 특징을 비교한 뒤 한국측 문서와 일본측 문서가 동일인물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밝히고 그 근거를 공개했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군사적으로 점령했던 1910년 당시 사정을 고려하면 이는 일본이 양국 문서를 모두 만들어 일방적으로 체결을 강요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한일 병탄조약의 강제성을 인정했고, 비록 사죄보다는 약한 사과(오와비) 표현을 썼지만 한국민에게 불행과 고통을 준 점도 인정했다. 이제 일본 정부가 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하면 논리적으로 무효가 완성되는 셈이다. 올해 한일 양국 지식인들은 한일 합방 100주년을 맞아 고이즈미의 평양선언에 이어 8년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하토야마 담화’ 내지 ‘일본 국회 결의’를 추진하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다. 한때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중에 일본 천왕 방한을 성사시킬 포부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한일합방 불법 무효화를 선언같은 근본적인 과거사 해결 의지를 내놓지 않는 한 천왕 방한 추진은 한국민의 거센 반발만 불러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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