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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0년 7,8월>국치 1백주년을 맞이하며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0-08-0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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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동/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국치 1백주년을 맞이하며

금년은 여러 면에서 특이할 만한 해이다. 무엇보다도 8월29일은 ‘국치일’이라고 부르는 일제에 의한 한국병탄 1백주가 되는 날이다. 이와 더불어 금년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 1백주년이고 그리고 강우규 의사의 순국90주년도 되는 해이다. 해방과 분단의 65주년, 동족이 서로를 죽인 6.25전란 60주와 남북의 갈등을 완화시키`1고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의 결실인 6.15공동선언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위에 열거한 이 모든 일이 다 일본 제국주의자의 한국침략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은 명치유신을 통하여 현대적인 국가를 창건하는데 성공했다. 일본은 ‘약육강식’이 국제적 상습이었던 이 시대의 서방제국주의자들의 제도를 모방하면서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습성까지 모방하려고 한 것 같다. ‘유신개혁’의 주역들은 ‘부국강병’을 목표로 삼았는데 여기에 말한 ‘강병(强兵)’이란 방어적인 뜻도 지녔겠지만 침략을 구상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은 그때 이미 적어도 자원이 풍부하고 인구가 비교적으로 희박한 중국의 동북지방에 침을 흘렸을 것이며 우선 지리적으로 가깝고 허약한 조선을 그들의 첫 침략대상으로 삼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본군이 이 나라에 들어오게 하여 결국 망국을 자초한 것은 왕조자체였다.
1894년 1월 전북정읍의 고부민란으로 비롯된 동학혁명은 3월에 이르러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의 기치를 내걸고 본격적인 전면궐기를 하여 전라북도 전역을 휩쓸고 4월말에 이르러서는 전주성을 졈령하기에 이른다. 자력으로 반란의 진입이 어려워지자 겁먹은 조정은 청나라에 지원병력을 보낼 것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파병됐다. 결국 우리 조정이 외군을 불러드린 것이다.
외세의 출병구실을 없애기 위하여 조정에 대하여 폐정개혁안을 제시하며 이를 받아들일 경우 자진해산할 뜻을 밝혀 정부 측이 여기에 응하여 정부군과 농민군 사이에 6월 10일 화약이 체결되어 농민군은 전주성에서 철수하며 사태의 진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정부가 약속한 폐정개혁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농민군은 전라도 일대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자체적으로 개혁사업에 착수했다. 전쟁이 종료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철군은커녕 보다 많은 원군을 보내며 6월 21일에는 왕궁을 점령하는 한편 아산만에서 청군을 기습공격하여 청일전쟁이 발발된다.
청일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일본은 타이완을 식민지로 획득했으며 한국은 청으로부터 명목상 완전 독립하여 대한제국이 성립됐다. 그러나 일본군은 계속 주둔하고 있었으며 국정에 대한 간섭을 자행했다. 이제 일본에 대한 국제젹 견제 세력은 제정러시아뿐이었다.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는 영국과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로 한국의 일본식민지화를 암묵리에 돕고 있는 형편이었다.
영미를 등에업은 일본은 결국 한반도의 식민화를 위하여 러시아와의 전쟁이 불가피하게 됐다. 청일전쟁때와 같이 일본은 또다시 선전포고 없는 기습작전으로 1904년 2월 8일 중국의 요동반도 남단의 러시아 조차지인 뤼순군항을 기습공격하였으며 이어 인천항외에 정박 중인 러시아 군함들도 기습격침시켜 10일 선전포고에 앞서 초기의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 단독으로 러시아에 승전하기는 어려웠으나 영국과 미국의 무기 공급 및 차관 등의 지원으로 계속 전과를 올렸다. 그러면서 미국의 ‘중재’로 정전하게 되었는데 이에 앞서 미국은 일본과 밀약을 체결하여 일본의 한국병탄을 사전 승인했다.
이로부터 105년전의 을사보호조약과 그 2년 후의 정미조약으로 한국의 운명은 거의 결정된 셈이었다. 일본의 침략에 항거하여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으나 무장의 격차 때문에 1909년에 이르러서는 거의 전멸되어 일본의 한국병탄은 막을 길이 없게 되었다. 1894년의 외국군을 불러들인지 불과 16년만에 왕조는 멸망했다.
제2차 대전에서의 일본 패배로 ‘해방’을 맞이했으나 우리의 운명은 이제 진주한 승전국에 달리게 된다.
소련이 미국의 한반도 분할 점령에 동의함으로써 이제 나라는 만65년간이나 분단된 상태에 처하게 됐다. 그리고 그때 진주한 미군은 아직까지 주둔하고 있다. 그런 형편하에서 한국이 이제 독립국가로서 유엔에도 가입하고 적어도 내정에 있어서는 간섭을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의 외교노선이 미국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우리 군대의 작전지휘권을 아직 미국이 갖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드디어 미국과 작전지휘권을 2012년까지 환수받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사실 이것은 박정희정권 이래 한국정부가 거의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사항이다. 그런데 현정부는 이 권한을 오히려 받아드리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외국군의 주둔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하더라도 적어도 작전지휘권을 찾아야 하겠다는 것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주권국가의 국민으로서 이의가 없을 것으로 믿어졌는데 믿어지기 어려운 주장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어느 나라에서든 보수층이 주권문제에는 보다 적극적인데 이 나라의 보수는 참으로 기이한 존재이다. 결국 이 나라의 보수층은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부일협력하던자들이 추종의 대상을 미국으로 바꾸면서 생긴 외세의존세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작전권의 인수를 굳이 연기하려는 것은 지난 정권의 행적을 무조건 반전시키려는 정부의 의도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의 주권을 회수하는 문제에까지 그러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치 1백주년을 맞이하여 참된 독립국가로서의 위치가 확립되도록 힘쓰는 국민이 되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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