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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1년 5, 6월>5.16쿠데타 50년, 그리고 일제침략 백년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1-05-1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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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경(前 한겨레신문사 부사장/본회 부회장)

역사를 말할 때 1백년과 50년의 차이는 무엇일까. 시간의 길고 짧음을 기준으로 한다면 반세기는 한 세기의 절반이고 오늘의 시점에서 본다면 1백년은 50년보다 더 오래된 옛날이란 답이 나옴직하다. 하지만 역사의 특정시기를 이처럼 거칠게 구분해버리는 법은 없다. 더구나 우리 현대사 1백년과 50년을 물리적 시간의 장단으로 설명하는데 만족할 사람은 드물 줄 안다. 왜나면 1세기 전인 1910년은 일본이 한반도를 온갖 악랄한 방법을 다 써 병합한 시기이고, 반세기 전인 1961년은 제국주의 일본의 괴뢰인 만군 출신 박정희가 4.19혁명으로 출범한 정부를 뒤엎고 권력을 탈취한 해이기 때문이다.
  5.16 쿠데타 반세기를 맞아 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박정희를 역사적으로 조명해 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그 집권기간에 이룬 경제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부동의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박정희 성장 기여론’은 그가 1979년 피살된 직후부터 일기 시작한 것이므로 별반 새로운 일이 아닐뿐더러, 그가 권좌에 앉았던 십팔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7%에 달하는 까닭에 이 시기에 와서 총량 통계의 진위를 묻는 것은 한가한 노름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2011년 봄 오늘 반세기 전 5.16쿠데타를 거론하고자 할 때는 그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일제 식민지지배, 그에 저항한 나라안팎의 광복운동, 8.15해방과 6.25전쟁, 그리고 마지막으로 4.19혁명과의 관계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5.16쿠데타 주모자인 박정희(1917년생)는 일제하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거기서 성장기를 보낸 뒤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잠시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그 때 실정으로는 비교적 안정된 직장인 초등학교 교사직을 팽개치고 만주군관학교를 거쳐 특별히 선발된 자격으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 것은 일제말기 징병을 회피하려고 몸부림치던 젊은이들에 견주어 아주 이례에 속한다. 제국 일본의 괴뢰 만주군 장교로서 해방시점까지 몇 해 동안 중국 동삼성에서 그가 한 일은 일본 용병으로서 항일 비정규군을 ‘토벌’하는 것이었다. 중공(중국 공산당) 8로군 항일 게릴라 주력이 1942-3년에 이르러 화중(華中)으로 이동함에 따라, 만주 괴뢰군은 소규모 산발적으로 전개되는 한국독립군 빨치산 군사행동을 저지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그러므로 20대 군인 박정희는 만군 일원으로 한국독립군을 분쇄하는데 몰입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권력 장악 4년 뒤인 1965년 대통령으로서 박정희가 한 일은 한일협정을 체결한 것인데, 이것은 일본 자본을 끌어들여 일본식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추구하려는 것이었다. 근대사회의 기본 인권(신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을 극도로 제약하면서 강행한 그의 성장정책이 국민 다수의 반대에 봉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런 가운데 1967년에는 헌법상 대통령 연임조항(2차만 가능)을 고쳐 그(박정희)에게만 3선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이른바 ‘3선 개헌’을 법치주의와 민주절차를 짓밟으며 처리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병법 초보상식을 행동에 옮긴 것인데, 민심이 이반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강수의 약발이 오래가지 못함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입증한다. 여기서 하나 주목할 것은 종당 무너지고 말았지만 제정 러시아와 군국주의 일본의 강압적인 인민지배는 로마노프왕조의 장기 군임(君臨)과 천황제 신도주의(神道主義)라는 위광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점이다. 
  역사적 정통성과 주권재민이라는 민족‧민주 명분을 갖추지 못한 박정희가  1972년 10월 마침내 일본의 <명치유신>에서 유신(維新)이란 두 글자를 따온 두 번째 쿠데타를 감행했다. 내놓고 ‘나 박정희는 일본근대 천황제도와 군국주의 적자(嫡子)를 자임하노라.’한 턱이다. 하지만 비극은 그 혼자서 메이지 천황과 도조희데끼(패전 시 일본군인 신분의 수상, 전후 전법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자살)의 두 가지 역을 동시에 행하려 했던데 있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는 남북분단이라는 민족 천추의 한을 영구집권 구실로 악용했고 이런 소행은 그로부터 40년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모방효과(demonstration effect)를 십분 발휘한다.

  일체침략 백년을 청산하기는커녕 그 부(負)의 유산을 체현한 5.16쿠데타 일당과 그 후계 세력은 한편으로 국민을 짓밟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보로 만드느라 유난을 있는 대로 떨었지만, 우리 국민은 어리석거나 겁쟁이는 아니었다. 박정희, 전두환 폭압 아래서 학생과 노동자, 지식인과 보통시민들은 감연히 일어나 저항했고 그것은 5.18 광주항쟁과 6월 항쟁에서 두고두고 찬연히 빛난다. 1백 년 전 역부족하여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맨주먹으로 민주주의를 되찾은 한국을 지금은 일본이 배워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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