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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2년 1월, 2월> 나라의 주권을 내팽개친 한미 FTA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1-12-2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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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경(前 한겨레신문사 부사장/본회 부회장)

지난 2011년 11월, 한나라당이 날치기로 비준형식을 마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1905년 일본이 조선에 늑정한 이른바 ‘을사보호조약’ 이후 한 세기동안 이루어진 여러 조약 가운데 가장 수치스러운 주권 훼손이다. 아니 주권 포기 행위에 가깝다. 여기서 말하는 주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나라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하나이고,  나라의 주인이 누구이냐 하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가리키는 것이 그 다른 하나이다.  그런데 한미 FTA는 그 2개를 모두 훼손했다. 누구나 아는 대로 대외적인 주권은 영토를 온존하게 지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지도상으로는 영토로 표시되었다 하더라도 그 안에 주둔한 외국군에게 치외법권적인 지위를 부여한다든가 외국상인들에게 조세상의 특별한 대우를 한다면 그것은 내용이 텅 빈 허울만의 주권국가일 뿐이다. 이를테면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지휘권을 서둘러 회수한다는 방침을 참여정부가 결정한 것은 뒤늦으나마 영토의 실질과 관련된 주권의 본뜻을 깨달은 결과였다. 하지만 기막힌 현실은 현 이명박 정부가 기왕에 잡아 놓은 전작권 회수시기를 뒤로 미루어 놓은 작태이다.

FTA 비준안을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날치기로 강행 처리한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뜻을 공공연하게 짓밟은 것이며 이명박 정권은 곧 헌법 제1조 주권재민(主權在民) 조항을 헌신짝처럼 취급했다. 비준안의 강행처리 이후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 지역에서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FTA를 반대하는 집회와 시위가 끊이지 않는 모습을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촛불 행렬은 나라의 주인이 스스로 나서서 주인의 권리(주권)를 행사겠다는 결의의 다름 아니다.  FTA 협정문에 오역(誤譯)이 있었다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주권자의 저항이 두려워 영어 협정문을 원의대로 읽는 것을 가능한 한 방해하려는 의도적인 손질의 흔적이라 해야 맞는 이야기다. 국민이 “잘 모르고” FTA를 반대한다니 이 얼마나 가소로운 말장난인가. 처음부터 FTA와 관련된 전후 정보를 차단하고 일방적 홍보를 전개한 것이 정부-야당 일각을 포함한 국회, 그리고 여기에 기생하는 보수 언론매체들이 아니었던가. 

국가 간의 주권과 민주주의 원칙이 나라와 겨레의 긍지 혹은 자존심이라는 추상적 가치라고 주장하는 언동이야말로 짧은 생각의 소치이다. FTA가 경제 성장과 고용증대에 이바지 한다는 이른바 현실론이 그것인데 한 세기 전 을사보호조약 체결당시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 매국세력조차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입에 담았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일부 산업, 일부 대기업,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직종(외교-경제-안보분야의 직업 관료와 외국기업을 주 고객으로 하는 변호사 등)은 단기적으로 FTA의 덕을 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익이 곧 국리민복은 아닐뿐더러 오히려 긴 안목의 국리민복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천하 공지의 일이다.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 불가피론의 경제 부처 관변 논자들은 앞으로 언젠가 유럽연합(EU)과의 FTA, 그리고 이어 중국과의 FTA를 체결하여 무역 실리(實利)의 외연을 넓혀야 한다면 구태여 미국과의 FTA를 뒤로 미룰 까닭이 없다고 했다. 한미 FTA 불가피론자들의 되어먹지 않은 입론에 일일이 대거리 하는 것 자체가 구차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무역실리 외연 확대론이 주권국가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우리는 되풀이하여 경고해야 한다. 멕시코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여 실리와는 거리가 먼 참담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만천하가 다 아는 일이거니와 항차 한국은 멕시코와 달리 미국과 국경을 공유하는 인접국가도 아니다. 소련 붕괴이후 지구상의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한 미국과 경제-군사 양면에서 미국을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는 중국 사이의 틈바구니에 낀 우리가 미국과 고분고분 균형을 잃은 조약을 맺는 것을 중국이 먼 산 불구경하듯 수수방관하리라 믿었다면 그것은 백치나 다름없다.

단도직입적으로 설명하여 한미 FTA가 무역 실리 확대에 필요한 것이라면 왜 한국과 일본의 FTA 체결 필요를 발설하지 않는가. 일본과 FTA를 체결해보아야 기득권층에 실익이 없어서일까. 절대 아니다. FTA 만능론자들도 을사보호조약과 일제강점기 36년의 악몽을 국민의 뇌리에서 지우지 못한다. 국민의 시선이 소름 끼치고 중국의 반응이 꺼림칙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진대 하물며 재판의 주권을 포기하고 기간산업을 미국식 표준의 경쟁 시장에 내놓는 한미 FTA에 대한 국민의 시선과 중국의 반응은 어떠할까. 나라 안은 이미 언급한대로 냉혹한 비판을 넘어 분노로 치닫고 있는 반면, 이웃 중국의 반응은 아직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지 않다. 집권당의 FTA 비준 강행처리가 현 대한민국의 최대 정치쟁점이라는 것 때문인지 중국은 대외 공식 슬로건인 내정불간섭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꼴이다. 하지만 13억 인구 대륙의 저 침묵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TPP(환태평양경제협력기구)에 대한 중국정부의 “우리는 초청받은바 없다”는 볼멘 어조로 미루어 앞으로 나타날 반응이 어떨지는 짐작이 가고 남는 일이다. ‘진영논리의 냉전이 끝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대미 굴종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며 비웃음을 짓는 표정으로 우리를 내려다볼지도 모른다는 떨떠름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만고의 진리 중의 하나로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그렇거니와 나라 관계에서도 굴종을 일삼는 상대의 등은 다독거려 줄 수는 있어도 결코 존중하지는 않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한미 FTA는 우리 근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굴종의 최신판에 해당한다. 미국과 중국의 각축을 주조로 하는 동아시아의 향후 질서에서 좋지 않은 선례로 작용할 것만은 불을 보듯 뻔하다. 통상 협정을 주창하고 실무를 담당한 관료진은 향후 동아시아 외교에 미칠 영향은 자신들의 소임이 아니고 대통령의 몫이라도 발뺌을 하려들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긴 눈으로 지역의 평화와 진정한 의미의 국리민복을 바란다면, 날치기로 처리한 FTA 비준안을 폐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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