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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2년 5월, 6월> 역사전쟁과 19대 국회의 과제 (조세열)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2-05-0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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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열(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이명박 정부가 지난 4년간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다 일일이 거론할 수 있겠는가. 남북관계, 환경, 인권 심지어 내세우던 경제까지 엉망이 아닌 분야를 찾기 힘들지만, 세월이 흘러가도 용서받지 못할 대죄 중의 하나가 역사훼손이 아닐까한다. 

역대 독재정권하에서도 정치권력의 역사변조가 지금과 같이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정통성이 없었던 만큼 속내야 어떻든 겉으로는 독립운동과 사월혁명의 정신을 존중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런데 지금의 집권세력은 정권 인수 단계에서부터 이데올로기 공세를 펴면서 거리낌 없이 역사 뒤집기에 나섰다.

이 정부 들어 과거사위원회 통폐합 추진으로부터 시작된 퇴행적 역사파괴는 건국절 제정 시도, 공영방송의 친일‧독재 미화 다큐멘터리 방영, 이승만․박정희․백선엽․김백일 동상 건립, 박정희기념도서관 개관, 역사교과서 개악 등 민‧관을 불문하고 전방위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 총결산이라 할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식민지 시기와 산업화에 대한 편향적 자학적 관점의 극복’을 목표로 연말 개관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치밀한 역사변조는, 일본 극우세력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는 뉴라이트 세력이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조‧중‧동 등 수구언론과 어용관변 단체가 그 논리를 확산시키며, 정부가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형태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들이 비상식적인 역사전쟁을 도발한 배경에는 정권재창출이라는 현실적 목적 외에 나름의 이념적 위기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친일문제나 국가폭력 등 우리 근현대사의 숨겨진 진실이 규명되면서 그간 한국사회의 주류로 행세해왔던 보수세력의 반민족적, 반민주적 속성이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냉전체제하에서 효험을 봤던 색깔론도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현실 속에서 수세적인 국면을 타개할 근본적인 대책이 절박했던 사정도 작용했다.

그들의 주장은 식민지근대화론, 자유국가건설론, 개발독재 경제성장기여론 등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일본 우익의 논리를 그대로 차용하여 한국근현대사를 자학사관에서 벗어나 긍정의 시각으로 해석하자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일제강점기는 근대화의 토대가 마련된 시기로,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로, 박정희는 민족중흥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한다. 반면 대한민국 헌법에 명문화된 우리 사회의 굳건한 가치기준인 독립정신과 민주주의는 여지없이 능욕당하는 수난을 겪게 됐다. 독립운동을 과대포장된 테러리즘으로 민중민주항쟁은 좌파의 폭동으로 비하하는 망발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일은 보수세력의 여망을 안고 차기 대권 주자의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는 박근혜 씨의 역사관은 더욱 과거회귀적이며 폐쇄적이라는 점이다. 그는 5‧16쿠데타를 ‘구국의 혁명’으로 10월유신을 불가피한 결단에서 나온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박정희를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한 일에 대해서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표현하여, 위협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던 반면, 일본 우익의 사관을 방불케한다는 평을 받은 뉴라이트의 대안교과서에 대해서는 ‘시대적 쾌거’라고 칭송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번 19대 총선에서 역사인식의 문제로 새누리당 이영조, 박상일 후보에 대한 전략공천을 전격 철회한 것도 다분히 선거공학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고육지책으로 해석된다.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공천을 주는 쪽과 받는 쪽의 역사인식에 다름이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씨는 선거기간 내내 이번 총선이 과거를 부정하는 세력과 미래를 지향하는 세력의 대결이라고 누누이 강변했다. 그가 추호의 의심도 없이 긍정하는 과거는 아마 박정희 시대일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와 같은 이분법은 그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친일도 헌정파괴도 사법살인도 그 어떤 잘못도 부정할 수 없는 성역에 속하고 만다. 과거에 대한 성찰을 애써 외면하는 그의 역사 시계는 10‧26에서 멈춰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것 같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이러한 역사인식을 고수하는 정치지도자를 한 축으로 전개될 19대 국회에 역사복원을 주문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이 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역사란 한 정권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한 정치인의 입맛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곧 19대 국회의 지형이 드러나겠지만 어느 편이 다수를 차지하든 역사문제에 관한 한 당리당략을 떠나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는 거시적 안목으로 접근해야 마땅할 것이다.

역사와 관련된 19대 국회의 최우선 과제는 역사문제에 권력이 관여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일이다. 최근 역사교과서 개편과정에서 벌어진 학계 외부의 부당한 압력은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금언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전경련, 상공회의소, 국방부, 경찰청, 재향군인회 등 온갖 이익단체와 정부기관까지 나서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들이대는 전대미문의 현상까지 일어난 것이 좋은 실례이다. 이런 사태를 방치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와 교육의 대체가 흔들리는 악순환을 면치 못할 것이 자명해 보인다. 따라서 사실상의 사전검열을 방지하고 역사서술의 객관성을 얻을 수 있도록 국회가 법적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한 현 정부 들어 현저히 왜곡되면서 중단된 과거사청산과 관련된 실질적인 후속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과거사 관련 특별법은 대부분 해당 위원회의 활동 종료 후 재단 또는 사료관을 설치하여 후속사업을 진행하도록 명시해 놓고 있다. 그런데 과거사청산이 미완의 상태에 있음에도 연구‧조사‧교육이나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등 국가 차원의 노력은 완전히 실종되고 말았다. 국가폭력의 피해자 등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 다수 밝혀졌음에도 이를 회피하고 있는 현실은 국가의 직무유기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3‧1운동과 4월혁명으로 대변되는 헌법정신도 구두선에 그치고 방치할 것이 아니라, 독립정신과 민주적 시민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는 방안을 입법을 통해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근현대사 교육의 강화와 국가시험 필수과목 지정, 독립유공자와 후손에 대한 예우 개선과 보훈 교육의 정립, 발굴보훈의 확대를 위한 전면적인 독립운동 인물정보 구축 등을 구체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한일간의 과거사문제도 차기 국회가 주목해야 할 분야이다. 한일간에는 여전히 ‘일본군위안부’문제 독도문제 등 과거사 관련 현안이 산적해 있다. 한‧미‧일동맹을 의식한 한국정부의 소극적인 대처는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독도 영유권 주장에서 나타나듯 일본의 도발을 점차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해 왔다. 이미 일회적인 대응이나 외교적 수사만으로는 일본을 제어할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적극적인 대처를 회피한다면 국회가 실질적인 정책수립과 대안모색에 나서야 하리라 본다.

이명박 정부 4년 만에 역사정의는 크게 후퇴하고 말았다. 복원하는 데만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그러나 정신세계의 오염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근본적이고 중차대한 문제다. 19대 국회가 역사 바로세우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 역사가 이대로 굴절되고 말 것인가 아니면 미래세대의 바른 이정표가 될 것인가는 차기국회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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