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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2년 9월, 10월> 대통령의 역사의식 (임재경)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2-09-2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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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경(前 한겨레신문사 부사장)

2012년 초여름부터 불붙기 시작한 18대 대통령 선거 전초전이 지난 10년간에 있었던 두 차례 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민생(民生)과 민주(民主)가 중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생과 민주가 지난 날의 대통령선거에서 유권자의 관심대상으로부터 벗어난 적은 없으나 이명박 정권에서는 빈부격차의 골이 더 깊어지고 일자리 구하기가 무척 어려워진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거기다 법치주의가 후퇴함으로써 부정부패가 공공분야 전반에 만연된 것 역시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민생과 민주가 생활상의 절박한 요구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숨을 돌려 조금 찬찬히 들여다보면 오늘의 민생고와 민주주의 수준은 곧, 역사적 산물이란 인식에 가 닿는다. 밖으로는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 안으로는 행정(정치-정책), 법제(法制), 민심을 가지고 노는 매스컴의 행태, 사물의 이치와 사회현상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을 기르는 초중등 교과서 내용 등이 역사의식의 중요 대상물들이다. 그러나 여기 이 순간 우리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역사는 그날그날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릴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살림에 쫓기는 바닥의 인민들을 대상으로 역사 강의를 해보았자 모일 숫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므로 민생-민주와 역사의 관계를 주제로 삼아 토론을 벌이고 겨레와 함께 고민하며 실천 가능한 방책을 강구할 책무는 어디까지나 나라의 큰일을 맡아 보겠다는 사람의 몫이다. 단도직입하여 선거를 통해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 선출되는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1948년 이승만부터 2008년의 이명박에 이르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 한 둘을 제쳐 놓고는 역사의식이라는 차원에서는 대체로 낙제감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올바른 역사의식이 대통령이 지녀야 할 기본 식견과 자질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줄 알지만 인류 역사의 보편적 흐름과 한반도의 역사의 특수성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보기란 결코 수월치 않다. 이 나라의 상층부와 부유 계층의 사고방식이 전반적으로 역사 몰이해 풍조에 빠져있는데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사로운 이해관계에 따라 서슴없이 역사 왜곡에 나서는 것이 저널리스트로서 내가 반세기간 관찰한 결과이다. 이런 현실에서 그릇되고 편협된 대통령의 역사의식은 민족의 앞날에 두고두고 폐해와 재앙의 씨앗으로 작용할 위험을 배태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역사의식은 어떤 수준이어야 하는 것일까. 도식적인 정답은 무의미하다. 같은 보통명사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미국, 프랑스, 독일, 한국은 각각의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이 다르기 때문에 그 역사의식의 대한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이 다르다. 여기서 그 차이까지 세세하게 따질 겨를은 없고 어떤 권력형 헌법체제이건 간에 고도의 균형 잡힌 역사의식이 국가 기구의 대표와 국정책임자로서의 대통령에게 요구된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 시대의 실재한 예로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1999~2007)와 버락 오바마(2008~2012)의 역사의식을 비교 할 때 양자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나며 그 결과는 미국의 대내외 정책에 영향을 준다.

전 세계 대통령들이 공통적으로 지녀야 할 역사의식을 열거하는 것은 한가로운 일인 반면 새로이 선출될 한국 대통령의 역사의식이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는 초미의 관심사다. 대통령은 한반도의 특별한 지리적  위치에 따른 경제활동(특히 대외교역)상의 당면 여건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민족 구성원 모두가 평화롭고 인간다운 삶을 미래에 이어 갈수 있는 기축(基軸)을 부둥켜안고 나가야 할 판이다. 민생, 민주, 평화에 착안한 긴 안목의 대통령 역사의식이 어느 때보다 아쉬운 것이 오늘의 한국이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유력 후보)들은 실질적 정책 내용(콘텐츠)보다 심리 효과를 노려 때로는 ‘국리민복’, 때로는 ‘선진조국’, 때로는 ‘부국강병’ 혹은 ‘자주 국방’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언뜻 보면 향상된 삶을 추구하는 미래의 푸른 꿈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이런 유의 표어들에 공통된 특징은 역사의식의 부재를 뜻하는 증거다. 왜냐면 국리민복과 선진조국을 가로막고 있는 대내외적 유산과 유제(遺制)들을 제거 혹은 청산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력한 실천적 의지는 분명한 역사의식 없이는 불가능한 법이다.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인 한국에서는 유권자의 일차적 관심 대상이 개인의 소득의 증대와 현상유지에 집중되는 까닭에 선거 공약(manifest) 서열상 ‘민생’이 ‘민주’와 ‘평화’의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민생이 민주와 평화를 도외시하고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대통령은 고사하고 성숙된 시민 축에도 끼지 못할 것이다.

선거를 몇 달 앞둔 시점에서 <대통령의 역사의식>을 <독립정신>의 권두언 주제로 삼은 것은 최근에 조성된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긴장상태와 무관치 않다. 1980년대 말부터 20여 년 간에 걸쳐 연간 10% 내외의 고율 성장을 이룩한 인구 13억의 중국이 지난 5, 6년 사이에 세계 5위의 위치에서 미국에 버금하는 2위(G2)로 부상하자 미국과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는 일련의 외교-군사적 초기 조처들을 실행하고 있는 움직임이다. 현재의 미국-중국 관계가 미국-소련의 40년간 냉전의 재판(再版)으로 굳어질지 여부는 속단을 금하는 일이지만 한반도가 냉전 초기 열전(熱戰)의 무대가 되어 백만 이상의 인명살상과 참혹한 파괴를 경험했던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역사상 최악의 재앙에 해당하는 6․25 전쟁을 올바로 이해하기위해서는 그 전사(前史)인 일본제국주의의 한국 병탄과  2차 대전 전후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남북 분단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또 6․25전쟁의  산물인 ‘1953년 체제’가 60년에 걸친 남북분단을 고착화시킨 것은 두말할 나위 없고 한반도를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분명한 역사의식을 지녀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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