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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3년 3,4월호> '정전체제 60년 틀을 바꿔야 산다.' (한승동)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3-03-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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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동(한겨레 신문 선임기자)

올해로 정전협정을 맺은 지 60년이 됐다. 전쟁 종결이 아니라 잠정 중단 상태로, 사실상 60년이 되도록 전쟁상태를 계속한 사례가 이 지구상에 달리 있는지 모르겠다. 잠시 다녀오마고 나갔던 가족의 일부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 살아 있으면서도 60년이 넘도록 만나 볼 수도 없는 기막힌 비극의 주인공들이 ‘1천만’이나 되는 이상한 세계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데도 세상은 어찌 보면 너무나 조용하고 태평스럽다 .

 단 한명일지라도 자국 전사자 유해 한 구를 찾기 위해 온 국력을 기울인다는 미국적 정의에 찬사를 보내는 이 땅의 사람들은 1천만의 이 기묘한 비극의 자국 희생자들을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국의 책임과 죄과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 것일까. 

 이 터무니없는 비극은 얼마 전 북의 제3차 핵실험이라는 위험하고 무모한 이벤트를 통해 재확인됐지만, 그 이벤트를 둘러싼 쌍방의 요란한 공방에 가려져 비극 자체와 그 본질은 오히려 어두컴컴한 뒷방에 감춰지고 유폐됐다 .

 따지고 보면, 비극의 출발은 잘못 그은 분단선 때문이었다. 2차대전 뒤의 분단선은 원래 전승국들이 패전국들에 강요한 일종의 징벌적 조처였다. 독일의 분단이 그랬다. 스탈린이 소련의 홋카이도 점령을 미국에 요구했듯이, 또 하나의 패전국 일본 역시 그럴  운명에 놓여 있었다. 전승국들이 주장하는 ‘역사적 정의’라는 게 정말 있다면, 분단당할 나라는 조선을 유린하고 수천만 동아시아인들을 희생시킨 제국주의 침략 전범국 일본이 돼야 마땅했다. 하지만 미국은 자신들이 일본을 온전히 차지하기 위해 그것을 거부했다. 대신 엉뚱하게도 일제 식민지배의 최대 피해국 조선 땅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오히려 전범국 일본은 미국 냉전전략의 핵심 교두보로 육성되면서 전쟁까지 치러야 했던 한반도의 비참을 전후재건의 발판으로 삼아 ‘기적의 고도성장’이라는 찬사 속에 번영을 구가했다. 분단된 절반인 남쪽은 그런 일본과 미-일 동맹을 지켜주는 최전방 기지가 돼야 했으며, 그에 맞서 여전히 남쪽과 전쟁상태인 북쪽 절반은 기괴한 세습체제하에 굶주림과 억압이 일상화된 동토의 땅이 됐다. 

 이제 100년이 다 돼가는 저 기미년의 전 민족적 항일 봉기와 임시정부를 이끈 선조들이 바란 나라가 이런 나라는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분단에서 발원되고 6.26전쟁을 통해 자리 잡은 정전협정체제가 어떻게 60년 세월이 넘도록 유지될 수 있었을까. 지금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바꾸자고 요구하는 쪽은 북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을 종결하자는 주장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북은 평화협정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주한미군의 철수를 노릴 것이다. 우선은 체제보장이다. 생존시 김일성도 그랬고 김정일도 그랬지만, 북은 남북통일 뒤에도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걸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그들의 속내에 가까워 보인다. 미국이 체제보장만 해준다면 미군주둔까지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남쪽은 왜 평화협정체제를 꺼리는가. 거의 유일한 이유는 이땅에 미군을 붙잡아두기 위한 것이리라. 전쟁이 종결되고 평화협정을 맺게 되면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할 이유가 없어진다.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할 정세변동이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일어난다면, 오키나와 주둔 미군을 포함한 주일 미군 전체도 철수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세계여론이나 미국 국내여론이 그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 지배세력은 그런 사태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의 보수 지배세력 생각 또한 다르지 않다. 이렇게 보면 부와 소득이 많게는 북쪽의 수십배나 된다는 남쪽의 성공이라는 게 얼마나 기형적이고 취약한 것인가. 그 막대한 힘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는 초라한 북의 공세를 막기 위해 60년 이상 외국군을 자기 땅에 붙들어 놓고 있어야 하는 나라.  이 또한 결국은 남쪽 체제보장을 위해서가 아닌가. 남북 어느 쪽도 외부 힘의 개입 없이는 자신들의 체제안위를 확신할 수 없어 남에게 매달리는 이 기묘한 상태가 6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1990년대 초 냉전이 무너지고 당시 소련과 중국이 한국을 승인했을 때 왜 미국과 일본은 북을 승인하지 않았을까. 유엔 동시가입까지 성사된 마당에 주요 냉전 당사국들의 남북 교차승인이 오히려 자연스런 귀결이 아니었을까. 주변 대국들 상호보장하의 교차승인이 이뤄졌다면 정전체제도 자동 해소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 그렇게 해서 미국이 북과의 관계를 정상화했다면 북이 핵 개발에 저토록 집착했을까.

 1994년 제네바 북핵 합의 때, 북이 핵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이 북에 경수로를 지어주기로 약속한 것은 북 체제가 오래 못 가 무너질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미국 쪽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 1989년 동베를린 장벽 붕괴와 천안문 사건이 터진 뒤 1991년엔 소련이 무너진 상황이었으니 그럴만도 했겠다. 조지 부시의 공화당이 집권하면서 미국은 본색을 드러냈고 북은 그때부터 핵개발에 체제생존의 모든 것을 걸었다. 아프간이나 이라크의 후세인체제, 리비아의 카다피 체제가 미국·서방의 개입 속에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지켜 본 그들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브루스 커밍스가 북의 핵개발이 결과적으로 부시가 가져다 준 폭탄(Bush’s Bomb)이라고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북분단과 대결을 대립 축으로 한 동아시아의 반세기를 넘긴  세력 대치구조, 2차 대전 뒤 미국이 판을 짠 이 냉전구조의 최대 수혜자가 일본이고, 최대 피해자가 남북한이라는 기구한 역설. 거꾸로 얘기하면, 이 구조가 지속되는 한 수혜자는 일본이 될 수밖에 없고 피해자는 계속 한반도가 될 수밖에 없다. 남쪽의 경제적 성공을 들어 한반도 남쪽 역시 수혜자인양 얘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런 주장은 분단과 그로 인한 처참한 전쟁, 수천만 북쪽 동족의 굶주림과 비참을 대가로 한 것이라는 데엔 눈을 감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언제나 대결의 최전방에 서서 동족상잔하며 주변 이민족들에 기대어 그들의 하부종속 플레이어로서 그들만 살찌우는 이 고약하고 고질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구조를 계속 용인하자는 얘기다.

 정전협정 60년. 3세대가 흘러간 긴 세월에 완전히 적응해버린 탓인지 우리 내부에선 이 기묘한 정전협정체제와 그것을 시,발로 한 동아시아의 낡은 냉전적 대립구도를 정면으로 문제삼는 소리들이 거의 없다.

 삐걱거리는 소리는 바깥에서 들려오고 있다.
 지난해 말 일본 총선에서 2007년에 총리가 됐다가 1년만에 물러났던 아베 신조가 자민당의 압승과 함께  재집권하고 극우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 지사와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일본유신회’를 만들어 이른바 ‘제3극’으로 등장했다. 이로써 하토야마 유키오 등 리버럴 세력이 주도한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와 그들이 시도했던 탈냉전적 일본 재생의 꿈은 좌절됐다. 일본 리버럴 세력은 미국의 준 식민지라 불린 일본의 대미종속구조와 신자유주의를 탈피해 대등한 우애의 공동체를 지향하겠다며 아시아 중시를 표방했다. 이는 2차대전 이후 재편된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해 온 미국과 미-일 동맹이 주축을 이룬 팍스아메리카나 체제가 저물고 거대중국이 기존체제에 대한 강력한 도전자로 떠오른 정세변동에 대처하려는 나름의 전향적 대응방식이었다. 중국과 한국 등 새로운 동아시아를 중시하는 일본의 아시아 복귀 없이 일본에게 출구는 없다고 그들은 판단했다. 이미 중국의 대두는 대세였고 일본의 제1 교역대상국도 중국이고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후 팍스아메리카나체제의 수혜자로 강고한 기득권자가 돼버린 일본과 미국 보수주류는 이에 거칠게 저항했고, 오키나와 후텐마 미 해병대기지 이전문제 등을 둘러싼 이들과의 힘겨루기에서 하토야마의 민주당은 패배하고 좌절했다. 게다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태까지 터졌다.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문제도 그 와중에 증폭됐다. 최근의 댜오위다오 사태는 극우 이시하라 신타로가 도쿄도 지사 시절 미국에 가서 개인소유로 돼 있던 센카쿠 열도를 도쿄도가 구입해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한 데서 발단이 됐다. 이것 역시 ‘천하대란’으로 비유될 수 있는 새로운 정세변동이 불러일으킨 일본 우파들의 초조와 불안을 반영한다. 일본 내셔널리즘을 자극한 댜오위다오 사태는 전망이 보이지 않는 장기불황과 국력의 상대적 위축, 민주당 정권의 무능에 절망한 유권자들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보수우파들을 결집시켰다. 아베의 복귀는 다수 유권자들의 무관심(압승한 자민당 득표율은 전체 유권자의 25%밖에 되지 않았다) 속에 강한 일본, ‘영광의 일본’ 재건을 바라는 막연한 보수우파 정서 덕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베와 아소 다로와 이시하라와 하시모토가 꿈꾸는 강한 일본의 꿈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다. 센카쿠와 다케시마(독도)와 쿠릴열도 남단 4개 섬(북방영토)에 집착하는 그들 보수우파의 전략은 이런 영토적 집착이 상징하듯 퇴행적이며, 기득권 고수 내지 재탈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명백히 일본이 강자로 군림했던, 이미 복원이 불가능한 옛 질서, 옛 구도로의 복귀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 쇠퇴는 민주당 정권 때가 아니라 자민당 집권 때부터 이미 시작됐다. 2009년에 ‘55년 보수합동’의 자민당 장기집권체제가 무너진 사실이 그것을 웅변한다.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협력자로 붙어 이익을 나눠 갖는 기존 동아시아 세력구도를 짜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자가 바로 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였다. 1930년대 일제 괴뢰국인 만주국 총무청 차장으로 만주국을 사실상 설계하고 만들었다는 그는 미국과 전쟁을 벌인 도조 히데키 전쟁내각의 각료로 A급 전범이었으나 미국 덕에 살아남아 자민당 장기집권의 틀을 놓은 1955년 보수합동을 주도했고 1960년 미-일 안보동맹 강화에서도 주역을 맡았다. 아베의 정치적 이상형이 바로 기시다.

 과거로의 회귀, ‘영광의 제국 일본’으로의 반동적 복고를 꿈꾸는 일본 보수우익은 북을 ‘악의 축’으로 설정한 채 남북 분단선을 동아시아 전체의 분단선으로 확대한 새로운 냉전체제를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이 반동·복고의 또 다른 한 축은 미국과의 유착, 즉 친미 강화다. 이 기본구도는 새로울 게 없다. 크게 보면 지난 100년 동안 지속돼 온 구조다.

 이제 이 구조가 삐걱거리고 있다. 일본 보수우익 세력이 새삼스럽게 반동·복고를 부르짖고 퇴출당했던 자민당이 복귀하는 이상증세 자체가 이 삐걱거림에 대한 불안과 초조를 반영한다. 근대의 기린아로 한때 동아시아를 지배하고 군림했던 일본의 세기는 팍스아메리카나의 황혼과 함께 끝나가고 있다. 아니 끝내야 한다. 그것은 곧 역사상 유례없는 길고 기묘한 한반도 정전협정체제도 끝나가고 있다는 전망을 갖게 한다. 문제는 미-일동맹을 근간으로 한 팍스아메리카나 체제에 대한 우리 내부의 과잉적응 세력이다. 이 구조 속에서 기득권을 누려 온 세력은 60년을 넘긴 한반도 정전체제의 해체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게 ‘쇄국’이다.

 쇄국이란 말은 재해석돼야 한다. 예컨대 한-미 FTA에 반대하는 게 쇄국이 아니다. 기득권에 집착하면서 그 기득권을 안겨 준 기성체제를 고수함으로써 급변하는 안팎의 정세변동에 대한 기민한 대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움직임이야말로 쇄국이다. 비록 그들이 대외적으로 문을 활짝 열자고 주장하더라도 그것이 오로지 기득권을 보장해 주는 기성체제와 구조에 더욱 적극적으로 편입돼 그들과 일체가 되자는 걸 의미한다면, 그리하여 그들 소수 기득권층은 더 큰 수혜자가 되겠지만 다수 대중은 피해자가 되는 걸 의미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쇄국이다. 그렇다고 미국과 관계를 끊자거나 반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비판이 곧 반미는 아니다. 미국과는 앞으로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한-미동맹을 당장 해체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내용을 쇄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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