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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4년 1월, 2월> 평화협정으로 휴전협정을 대치하자(김자동)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4-01-2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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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금년은 6.25 전쟁이 터진 지 64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해 6월 25일은 그 지긋지긋한 동족상쟁이 개시된 63주년 기념일이었다. 그리고 약 3년간 계속된 이 전쟁은 1953년 7월 27일의 휴전협정체결로 일단 끝이 났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남북은 공히 한반도 전체를 자신의 국토라고 주장했으며, 각기 통일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했다. 전쟁을 누가 일으켰건 국토 통일을 위한 것임을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면 누가 이 목적을 위하여 전쟁을 일으켰는가에 대하여는 한 때 다른 견해도 있었으나 남침으로 전쟁이 개시되었다는 데는 대체로 견해가 일치되었다. 그러면서 북측이 미국의 꼬임수에 속아서 전쟁이 시작된 것이라는 ‘전쟁유도설’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3년 정도 지속된 6.25전쟁은 인류 역사 상 가장 처참한 전투와 살육이 진행된 기간이었다. 이 기간 중에 한반도 전역에서 약 45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중 한국군과 미군을 포함한 유엔군의 희생자 총수는 약 30만 명이었으나 민간인 희생자의 수는 적어도 1백만 이상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북측의 희생자 수는 남측보다 훨씬 웃도는 3백만 명까지로 추산되기도 한다. 그 중 역시 민간인이 거의 반수를 차지한다.
42년 초부터 45년 8월 전투가 끝날 때까지 연합군이 태평양 전쟁 전역에 투하한 폭탄 총계가 약 50만 톤이었음에 비하여 한반도에 투하한 재래식 폭탄이 63만 5천 톤에 달했으며, 여기에 3만 톤 이상의 네이팜탄까지 투하되어 한반도, 특히 북반부의 도시들은 거의 초토화되었다.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의 미군 희생자 수는 불과 3만 3천여 명이었다. 이것이 20만 명이 넘는 한국군 희생자와 150만에 육박하는 ‘중화인민지원군’과 북한의 인민군 희생자 수에 비하면 아주 적은 희생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전쟁 기간 중 미국은 군수산업의 호경기로 인하여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불황에서 벗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뜻하지 못했던 개입과 북한의 완강한 저항으로 미국 또한 재정적인 부담이 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몇십명 죽어나가는 것에 대한 국민적 불만도 커져가고 있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시도는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직후에도 있었다. 이 때 소련은 모스크바 주재 인도 대사에게 당시의 전선(서울에서는 한강을 경계)에서 전투를 일단 중지하자는 주장을 서방측에 제안했다. 인도정부는 이것을 즉시 영국정부에 전달했으며 영국(노동당정부)의 베빈외상은 즉시 이 건의를 애치슨 미 국무장관에게 전달했으나 애치슨은 불쾌한 어조로 이를 일축했다는 것이다.
개전 만 1주년을 2일 앞둔 51년 6월 23일 유엔 주재 소련 대표 Y.A. 마리크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교전 당사자들이 38선을 경계로 전쟁 이전의 위치로 복귀할 것을 제의했다.
미국은 6월 30일 유엔군 사령관인 리지웨이장군의 방송으로 휴전을 제의하여 7월 10일부터 개성에서 휴전회의가 개시되었으며, 얼마 안 되어 회담 장소는 중립지대인 판문점으로 변경되어 진행되었다.
회담 개시 후, 서로의 주장은 거의 매사 대립되는 상태였으며, 회담이 8개월간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결국 53년 7월 27일 휴전 조약이 조인되었다.
한국의 이승만 정권은 휴전을 반대했으며, 끝내 휴전 조약 조인에도 불참했다.
전쟁 중에도 맥아더 같은 극우적 지도자들은 원자탄 사용을 주장했다. 그리고 휴전 회담이 성사될 때까지도 미국은 때때로 원자탄 사용 가능성을 암시하며 북측에 압박을 가하였다. 휴전협정은 어디까지나 전투의 정지이지 전쟁의 완전 종결을 아니었다. 휴전 후, 쌍방은 각기 협정을 위반해가며 군비를 증강시켰다. 그리고 미국은 계속적인 핵 위협을 해왔다.
결국은 북측에서도 독사적인 원자폭탄을 개발했으나 이것이 미국의 핵 위력을 견제하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북측의 핵 보유는 적어도 남쪽의 한국 측에는 극히 불쾌한 위협이 되고 있다. 휴전 회담이 조인된 지 이제 30년이 지난 오늘까지 지속되는 이러한 긴장을 해결하는 것은 오직 평화협정으로 휴전상태를 종결하는 것뿐이다. 평화협정은 반드시 서로의 군비 감축이 포함되어야 하며, 그렇게 된다면 양 측은 함께 군비 부담이 경감될 것이다.
그리고 핵무기에 관한 문제도 평화협정의 일환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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