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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4년 11월, 12월> 다시 갑오년을 보내며(이이화)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4-11-10 13:44
조회(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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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
역사학자     



동학농민혁명 2주갑이 되는 해의 의미

올해 갑오년도 어김없이 흘러간다. 올 갑오년에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참사는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순과 비리를 드러낸 사건이어서 파장도 그만큼 컸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갑오년에 일어난 사건으로는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을 들 수 있다. 올해는 바로 동학농민혁명의 두 번째 맞이하는 2주갑이 되는 해이다. 그 의의를 짚어보자.
동학농민혁명은 한 마디로 요약해 기층민의 변혁운동이었다. 한국의 역사에서 민중봉기가 전국적으로 확대된 첫 경우에 해당하며 그들의 이념적 지향은 차별적 신분제도의 철폐, 독점적 토지제도의 혁파, 지배세력이 저지르는 비리의 척결이었으며 주권을 유린하고 이권을 앗아가는 외세의 구축(驅逐)이었다. 이를 반봉건 반외세라 부른다. 1919년에 태동한 임시정부는 반봉건 반외세의 정신을 계승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항일정신을 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도 소년 접주로 목숨을 걸고 해주감영의 공격에 앞장을 섰었다. 
한편 그 전체 지향을 보면 근본적으로 신분평등, 사회개혁, 토지개혁, 이권을 독점하는 민씨 정권의 타도, 수령 등 지배세력의 부정부패 척결 등에 두었고, 제국주의적 침략세력을 몰아내고 자주구가를 지향했기에 혁명운동이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농민군은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 참여 인원은 1백만 명, 희생자는 10여 만 명으로 보고 있다. 희생자의 경우, 박은식은 30여 만 명이 죽었다고 하였으며(한국통사), 장도빈은 10여만 명의 살상(갑오동학란과 전봉준)이라 보고 있기도 한다.
자유 평등 박애를 내건 프랑스 혁명의 과정을 참고해 보면, 1848년 불길을 당긴 뒤 1871년 파리 코뮌을 발표하고 노동자의 권익, 여성의 권리 그리고 청소년 교육 균등을 외치자 보수파는 이 관련자 1만 5천여 명을 1주일 사이에 처형하고 나머지 관련자는 해외로 추방하였다.  농민군은 뒤를 이어 일제에 저항하는 의병항쟁에 가담하였고 식민지 시기 삼일운동을 전개하였고 그 뒤 민족운동에 나섰으며 해방 뒤에는 새로운 세대에 의한 민주운동으로 민족사의 맥을 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농민혁명 시기 제기되었던 신분평등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동기에서건 완전히 실현되었다. 양반의 특권은 물론 상인 노비의 불평등 관계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사회를 이룩하였다. 농민군 세력이 추구한 토지의 평균 분작과 지주제 문제는 식민지 시기 그대로 존재했으나 해방 뒤 남쪽의 경우, 1949년 농지개혁이 단행되어 사라졌으며 북쪽의 경우에는 토지의 몰수와 분배를 통해 근원적으로 해소되었다.
 한편 동학농민군이 봉기한 뒤 전주성을 점령하자 고종과 민씨정권은 청나라에서 군대를 보내 토벌해달라고 요청했고 청나라는 이에 따라 군대를 파견했다. 일본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이를 구실로 군대를 파견하여 청일전쟁을 도발했고 중국영토로 들어가 요동과 산둥반도 일대에서 청군을 계속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1895년 일본의 의지대로 시모노세키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를 요약하면 1항에 조선은 자주국으로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을 넣어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고 조선이 청국에 바치는 조공은 길이 폐지하며, 대만 요동반도 팽호제도를 일본에 영원히 할양하고 중경 소주 항주 등을 일본에 개방한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이렇게 해서 일본은 대만을 식민지 영토로 차지할 수 있었다.
조선은 일본의 뜻대로 자주라는 미명 아래에서 중립국이 되었다. 청나라의 종주권이 일단 배제되었으나 일본은 중립국 조선을 멋대로 보호국 또는 식민지로 만들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 조약은 일본 제국주의 한 표상이었고 동학농민전쟁을 빌미로 이용한 침략의 상징이었다.
그러면 현재적 의미를 살펴보자. 한국이 식민지로 전락한 근본 원인이 첫째 군사 경제적으로 국력이 모자랐던 것, 둘째 일본침략세력의 강력한 정치외교 또는 군사력 때문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면 민족분단의 근본 원인도 이에 적용될 수 있으며 새로운 변수인 미국과 소련도 분단의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의 일차적 역사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농민군의 반침략 반외세를 지향한 자주의식이 통일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에 들어 민족 분단구조 아래에서 독재정권을 경험했으며 민주화운동도 전개되었다. 여기에는 민주주의를 유린한 세력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세력이 맞부딪쳐 왔다. 오늘날 탐욕적 자본주의가 극심한 소득의 불균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참된 민주주의 실현, 왜곡된 자본주의의 청산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분배의 공정과 평등의식이 고양되어야 할 것이다. 이래서 농민혁명의 정신은 현재적 의미를 던지고 있겠다. 
 우리는 1994년, 100주년을 맞이해 농민군의 이념과 정신을 계승하려는 여러 기념행사를 벌였다. 동학농민군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명예회복심의위원회와 기념재단의 발족을 보아 국가지원의 행사가 이어졌다. 그 결과 대중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이라는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 
 120주년의 의미는 무엇일까? 오늘날 시대정신에 맞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분단구조 등 민족모순을 청산하고 진정한 평등과 자주를 실현하는 과제를 안고, 인권을 보장하는 학습장 또는 토론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에도 농민군의 지향과 정신은 역사적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0월 11일에는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120주년 기념대회를 열었는데 시민 1천여 명이 참석하였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축사도 있었다. 서울시청에서 무지렁이 농민군의 행사를 가진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남산에는 안중근 의사와 김구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어 민족정신을 기리고 있는데 전봉준 동상도 이곳에 세워서 그 정신을 기리는 일도 함께 이루어져야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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