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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5년 5월, 6월> 웬디 셔먼 미 차관의 연설과 미일 동맹의 확대 (김효순)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5-05-2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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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
언론인
전 한겨레신문 주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월29일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일본 총리가 미국 하원 또는 상원의 환영 식전에서 연설한 것은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를 포함해 세 차례 있었으나 합동회의에서의 연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합동회의의 화려한 무대에 올라 연설을 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기는 했지만, 오바마 미 행정부가 아베에게 베푸는 환대는 착잡한 감정을 자아내게 한다.
 아베는 2012년 12월말 총리직에 복귀한 이후 식민지 지배와 침략 등 과거사에 관해 문제적 언동을 서슴지 않았다. 침략에 대한 정의가 국제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하면 A급 전범들이 봉안돼 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야스쿠니참배가 한국 중국 등 이웃의 강력한 반발을 초래하자 후속 참배를 미루는 대신 공물을 보내고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성 노예’로 공인된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인신매매’라는 말로 얼버무리기도 했다.
아베에 앞서 일본 총리로서 미 상하원 합동회의의 연설이 유력시됐던 사람은 5년 5개월간이나 장기 재임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였다. 고이즈미에게 그런 기회가 무산된 것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집착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주만을 기억하라’가 2차 대전 내내 미국의 구호였듯이 일본은 미국을 침략한 당사자였다. 고이즈미에게는 미국의 기피사유가 됐던 야스쿠니 참배가 아베에게는 왜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넘어갔을까? 미국의 속내는 지난 2월말에 나온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의 발언에 잘 나타나 있다. 6명의 차관 중 수석차관에 해당하는 셔먼은 종전 70주년을 맞는 동북아시아를 주제로 한 연설에서 “어느 정치 지도자도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런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30분에 걸친 연설에서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촉구하는 부분이 전혀 없었던 점을 보면 그가 언급한 정치 지도자가 누구를 겨냥한 것인가는 자명해 보인다.
 셔먼의 연설에 대해 한국 언론은 대체로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이 이제 과거사를 덮을 것을 촉구하고 아베 정권의 행보를 노골적으로 두둔했다며 놀라움을 표시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해석에는 미국의 ‘선의’에 기대고 싶은 잠재의식이 끼어 있는 것 같다. 내가 셔먼의 연설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것이 바로 전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기조였기 때문이다. 개인적 체험을 얘기하면 13년 전 워싱턴에 있는 비영리 싱크탱크인 스팀슨 센터를 방문했다가 미국의 전직 외교관으로부터 훨씬 심한 말을 들었다. 스팀슨 센터는 20세기 중반 역대 행정부에서 육군 장관 국무장관을 역임했던 헨리 스팀슨을 기념하기 위해 ‘국제평화와 안보를 위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통합’이란 기치를 내걸고 발족한 연구소이다. 내가 외교관과의 대화에서 일본의 우경화 조짐과 군국주의 회귀 우려를 제기하자 그는 “한국인들은 피해망상을 버려야 한다. 일본은 세계 최고수준의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나라인데 우경화 등을 얘기하는 것은 당치도 않다”고 잘라 말했다. 요즘 워싱턴의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 ‘한국 피로’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런 시각의 소유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착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은 한국이 아무리 ‘한미혈맹’을 요란하게 외쳐도 전후 미국의 아시아 외교의 중심축은 항상 일본이었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때 미국이 유엔군 파견형식으로 즉각 개입한 주목적은 일본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공산권 봉쇄정책의 입안자로 널리 알려진 조지 케넌은 중국에 사회주의 정권이 성립하자 “일본인들이 남쪽에 일종의 제국을 다시 열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갈지 중대한 문제”라고 말했고 아이젠하워 행정부 때 주일대사였던 더글러스 맥아더 2세는 “대동아공영권 원칙과 전반적 목적에는 잘못된 것이 없다. 유럽통합 이상에 잘못된 것이 없는 것처럼 일본군국주의자들이 사용했던 방법만 반대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은 1950년대에 동남아 시장을 일본에 양보하도록 영국을 강력히 압박했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동격이 아니다. 미국이 파는 무기는 구매국이 돈을 낸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랜 기간 미국이 첨단무기를 판매할 때 한국의 순위는 일본에 비해 한 단계 쳐져 있었다. 아베 정권은 안보분야에서 그간의 타부를 거침없이 깨고 있다. 작년 7월 ‘해석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행사가 위헌이 아니라고 역대 정권의 정책을 단숨에 뒤집었고 미국과의 군사협력에서 지리적 제한을 없애 전 세계로 확대했다. 심지어 우주분야에서도 협력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이른바 ‘아미티지·나이 보고서’의 권고를 따른 것이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장관과 조지프 나이 하바드대 교수는 2000년부터 이제까지 3차에 걸쳐 미일동맹 확대를 위한 초당파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본의 뚜렷한 우경화 행보는 미국의 압력과 주문에 따른 것이다. 미국의 요구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아베로서는 설사 과거사 문제에서 미국의 견제 발언이 나오더라도 무겁게 받아들일 리가 없다. 중국의 국력 증대에 따라 미중간의 대결구도가 첨예화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한국의 운신 폭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침략전쟁이나 위안부 문제 등을 모조리 부인하고 싶어 하는 아베 정권을 미국이 혼내 주리라고 기대한다면 그야말로 환상에 매달리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 중국 일본의 강대국 틈에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려면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비정상적 구조를 해결해야 한다. 70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분단체제에 길들여져 민족화해를 이루지 못하고 막대한 비용을 군사적 대치에 낭비해버린다면 일본에서 들려오는 망언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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