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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5년 9월, 10월> 한국사 교과서, 자율화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자.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5-10-2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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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한국사 교과서 문제가 계속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려지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 여당에 의해 교과서 출판을 국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공공연히 나오면서, 국회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열심히 군불을 때고 관료들은 거기에 장단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엉거주춤하고 있던 보수언론마저 국정화에 반대의사를 하고 나선 형편이고 보니 국정화가 정부 여당의 뜻대로 될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국사 교과서에 어떤 내용을 실어야 할 것인가는 기본적으로 학계의 문제이고 따라서 학계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할 터인데, 이게 교과서 발행체제와 결부되면서 정치․행정이 주도하고 있는 형국이 되어 버렸으니 학계의 한 사람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해방 이후 국사교과서는 검인정 체제로 발행되었다. 그러다가 1974년 ‘유신’ 치하에서 국정으로 바뀌었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국사교과서를 국정에서 검인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한국 근현대사’를 필수 교과목인 ‘국사’에서 분리시켜 독립교과목으로 하되 선택과목으로 하자는 합의에 따라 2001년부터 근현대사 교과서가 검인정으로 출판되었다. 그 뒤 2010년에 가서야 필수과목인 ‘국사’ 교과서도 검인정으로 바뀌게 되었다.

2004년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시비가 국회에서 시작되었고, 이어서 검인정 교과서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에 북한 관련 내용과 남북화해를 지향하는 내용이 일부 서술됨에 따라, 그것을 문제 삼아 보수언론들이 근현대 교과서를 좌편향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그런 서술은 당시 남북화해의 분위기에 따라 이뤄진 것이며, 정부에서 제정한 교과서 편수지침을 반영하여 제작된 것이었다. 보수언론의 문제제기에 대해 정부는 다시 심의절차를 거쳐 검정교과서를 계속 사용토록 했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검인정체제의 취지에 맞지 않게 교과서 문제에 지나치게 개입했다. 정부가 검정하여 출판한 교과서를 정부 스스로 부정한다는 자기모순을 노출하기도 했다.
 
2010년부터 필수인 ‘국사’ 교과서도 검인정화되면서 문제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교학사 교과서’ 문제가 제기된 것은 이 시점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정부가 특정 교과서를 구제하기 위해 심의마저 왜곡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지극한 정성을 쏟은 정부는 그 채택율이 0%대가 되자, 그 때부터 국정화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이는 정부가 국사교육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겠다는 의지를 집요하다 할 정도로 드러낸 것이다.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태였다.
 
정부는 국정화의 논리를 정확하게 천명한 적이 없다. 그러나 정부 여당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검정교과서가 좌파에 의해 집필되었고 좌편향적이며 ‘자학사관’에 입각해 있다고 주장한다. 또 분단국가에서는 통일된 역사라야 한다는 것과 학부형들에게는 대입혼선을 주지 않기 위해 단일 교과서라야 한다는, 친절한 서비스도 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필자가 이미 그 부당성을 지적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최근 정부가 제시하는 여러 사례들은 국정화의 초점이 한국 사회의 기득권세력이 갖는 역사관과 맞닿아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2001년 이래 근현대사를 다룬 검정교과서들이 헌법에 명시된 독립운동의 전통과 4.19혁명으로 나타난 민주화 정신, 그리고 조국의 평화통일의 이념을 구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기득권 세력은 근현대 교과서의 이런 서술과 다른 역사관을 가지고 반발했다. 그들은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을 친일식민세력이 ‘건국’했고, 독재부패세력이 성장시켰으며 철저한 멸공정신으로 무력통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득권세력이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고 하는 데는 그들의 이런 목표를 교과서에 담고자 하는 의도라고 본다. 환언하면, 한국 근현대사의 주체를 독립운동세력에서 친일세력으로, 민주화운동 세력에서 독재부패세력으로, 평화통일세력에서 무력통일세력으로 바꾸자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교육부의 ‘2015 개정 교육과정’ 최종 고시안에는 중학교의 새 <역사> 교과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종래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정리했던 역사인식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어 ‘건국절’ 논자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종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 한 것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꾼 교육부의 설명이 또한 가관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북한 교과서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수립’이라고 적는데 우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쓰는 게 대한민국을 격하시킨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보는 것이 “대한민국을 격하시킨다”는 말은 일종의 망발이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
 
북한 항일운동사에서는 1919년 3.1운동이 차지할 자리가 거의 없고, ‘3.1독립선언’을 통해 ‘독립’을 선언했다는 것도 무시한다. 그 때문에 그 선언에 의해 건립된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고 또 ‘대한민국’을 운용하기 위해 설립된 임시정부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지한다면, 북한과 ‘수립’연도를 맞추기 위해 ‘대한민국의 수립’을 1948년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대한민국을 격하시키는 것이다. 또 ‘대한민국의 수립’ 연도를 북한 정권 수립에 맞추는 것은 거족적인 3.1혁명에 기초해서 이뤄진 것을 무시하는 태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또 얼마전 국편이 발표한 고등학교 국사 교육 지침과, 이번에 발표한 중학교 새교과 과정에서 1920년대까지의 독립운동만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1930-40년대의 독립운동을 제외시키려는 듯한 의도도 잘못된 것이다. 이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어떻게든 대한민국사와 분리시키고 한국 근현대사에서 제거해버리려는 일종의 음모론에 의한 것으로밖에는 볼 수 없다.

최근 정부가 교과서의 국정화 계획을 노골화하자 학계를 비롯하여 시민단체들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각 대학의 교수들과 역사관련 학회들, 역사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이 집단으로 움직이고 독립운동 단체를 포함한 시민단체, 학부모회단체의 반대 움직임도 활발하다. 반대의 논리는 분명하다. 역사교과서 출판의 세계적 추이가 국정에서 검인정, 자유발행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국정화는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북한 등 일부 전체주의 국가에서 시행하는 국정제는 민주국가에서 본받을 것이 못된다. 유신체제는 극복해야 할 대상인데 그 시대로 회귀하겠다는 것은 반역사적이다. 국정화가 창의성과 다양성을 억압하고 사고의 획일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창조경제’를 부르짖으면서도 정부는 이런 문제에 전혀 반성이 없다.
   
정부가 국사교육을 강화시킨다고 했을 때 모처럼 시민의 박수를 받았다. 근현대사 교육에 역점을 두겠다고 했을 때도 그 적절성에 동감했다. 그러나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정부주도로 국사교육을 하겠다는 의도가 드러나면서 그 의도의 순수성이 의심받게 되었다. 정부는 소위 선진국들이 왜 교과서를 검인정제도에서 자유발행제로 만들어 자율화․민주화․다양화하려고 하는지, 왜 근현대사에 역점을 두고 교육하려고 하는지 분명히 인식하기를 바란다. 특히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이런 어리석은 시도를 중단하고 오히려 지금 행하고 있는 지나친 검열제도를 대폭 완화하여 자유발행제의 이상에 접근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차제에 국사 교육을 세계사 교육과 더 면밀히 연계하고 역사교육의 폭을 확대함으로 우리 아이들이 세계시민적인 가치관을 더 넓게 함양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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