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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6년 1월, 2월> 노예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6-02-1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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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상임부회장

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주권재민이라고 줄여서 말한다.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상은 오늘날 사람들 대부분이 동의한다. 1864년 게티스버그에서 행한 링컨대통령의 연설에 나오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통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국민에게 귀속한다는 주권재민을 정의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와 주권재민의 역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임시헌장을 제정하면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를 채택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임시헌장 제1조가 그것이다. 황국의 신민으로 나라를 잃은 백성들이 불과 9년 후에 민주공화제를 채택했으니 이는 세계사에 남길 만한 무혈혁명에 의한 건국이다. 그로부터 5개월 후, 임시정부는 제대로 형식을 갖춘 헌법을 공포하는데, 이때 공포한 대한민국임시헌법은 주권재민의 원칙을 명시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있다.”는 제2조가 그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헌법 제1조는 임시정부의 정치체제와 주권재민의 원칙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제1조 제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언젠가 영화의 한 장면에서 우리를 감동시켰던 그 유명한 대사가 바로 헌법 제1조 제2항의 주권재민의 원칙이다.
국민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오늘날 권력은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일부의 사람에게 위임된다. 정치학자가 아닌 필자의 생각에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에 대한 동의와 선거를 통한 권력위임이 용인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전제된다. 즉, 선거가 권력을 위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며, 선거가 공정하게 관리되며, 선거를 통해 만들어진 권력이 국민을 위해 행사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것이다. 비정치학자의 눈에도 선거 외에는 달리 권력을 행사할 기제가 없는 오늘날 이런 믿음이 훼손된다면 이는 다름 아닌 주권재민, 곧 민주주의의 훼손이다. 안타깝지만 실제로 이런 현상은 동서고금에서 목도된다.
우선 선거는 가장 효과적인 권력위임의 방식일까? ‘사회계약론’을 저술해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을 제공했다는 루소는 권력의 원천으로서의 선거에 대해 회의적인 학자였다. 루소는 영국국민에 대해 그들은 선거할 때에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면 노예로 전락한다고 말한다. 영국국민이 선거라는 자유를 행사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자유를 상실하는 것이 당연하다고도 조롱했다. 비단 루소만이 아니라 마키아벨리, 몽테스키외와 같은 민주주의 사상의 개척자들은 선거가 아니라 제비뽑기를 통해 권력을 위임하는 것을 지지했다. 이는 고대 아테네에서는 보편적인 상식이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제비뽑기로 권력을 위임한다는 것은 만인(의 능력)을 평등하게 본다는 시민권 사상이 근거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주권재민을 현실화하는 유일한 방식이 선거만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은 흥미롭다. 사실 제비뽑기로 국회의원을 뽑는다면 사람들은 훨씬 사회적인 태도를 평소에 가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사회도 지금보다는 더 점잖은 곳이 되지 않을까?
또한 선거는 공정해야 한다. 부정한 선거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붕괴시킨다. 당연히 위임받은 권력이 클수록 부정선거에 대한 충동은 커진다. 물론 탄로가 나면 그 대가는 혹독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것도 부정선거였다. 국정원 댓글사건에 대해 법원이 정치개입이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라는 우스운 판결을 한 것도 부정선거의 후폭풍이 얼마나 거대한가를 반증한다. 그러니 점점 교묘해지고 불신은 커진다. 전자개표에 대한 불신이 대표적이다. 공정하지 않은 선거, 그것은 독재자 혹은 독재권력에게는 달콤한 유혹이지만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독배이다.
끝으로 선출된 권력자는 권력을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가. 제비뽑기를 한다면 그럴 일이 없지만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책공약을 내세우고 그것을 통해 심판을 받는다. 국민은 그 공약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권력을 위임한다. 그러므로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은 또한 주권재민 곧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다. 공약은 ‘빌 공(空)’자 공약이라고 할 정도로 공약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권력자에 대한 속없이 넓은 아량이 넘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그러니 아무렇게나 막 말하고 지키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권력을 위임받은 박근혜 정부는 이 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할 정도로 공약을 지키지 않은 정부이다. 말한 것처럼 이는 국민이 권력의 원천이 되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이다. 민주주의의 반댓말이 독재라면, 단지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고 독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삶의 조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는 실질적으로 실패한 민주주의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북만주벌판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그 외에 차별에 항거해 목숨을 던진 분들이 오늘날 분단된 조국의 현실과 악순환되는 양극화를 목도한다면 얼마나 통탄할 것인가. 심화된 양극화, 불안한 일자리, 어떤 스팩을 쌓아도 피할 수 없는 비정규직의 운명, 후퇴하는 민주주의, 끝없는 나락으로 전락하는 서민들의 삶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한 대한민국. 이것이 민주주의의 결과하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다. 선거로 뽑힌 권력자들이 권력을 부여한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황,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이다.
사회계약론의 첫 문장을 루소는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도처에서 사슬에 묶여 있다. 자기가 다른 사람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사실 그 사람들보다 더한 사슬에 묶인 노예다.” 노예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다행히 선택의 기회는 4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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