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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2016년 3월, 4월> 새봄이 옵니다!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6-04-1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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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현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새봄이 옵니다. 오고 있습니다. 왔습니다.

봄은 새롭습니다. 새봄이라고 부릅니다.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지난해와 다르지만, ‘새’를 앞에를 붙이지 않습니다. 새싹이 돋고, 새움이 트고, 새순이 나오고, 새 가지와 새잎이 자랍니다. 눈부신 푸름과 고운 꽃, 탐스런 열매가 우리를 즐겁게, 싱그럽게, 맛깔나게 합니다.
봄의 향기가 코끝까지 와있는 설 명절에도 우리 동네엔 폐지를 모으는 어르신이 골목을 누빕니다. 아기의 울음, 젊음의 기쁨, 따사로운 가정, 이웃의 훈훈한 인정 대신에 한숨, 분노, 외로움, 강팍함이 가득합니다. 아랫목의 따사로움은 윗목까지 올라오지 못합니다. 한반도의 하늘과 바다는 최첨단 초거대병무기의 각축시위장이고 땅위엔 적대와 저주가 날카롭게 번득입니다. 가야할 겨울이 모질고 잔인하게 춥습니다. ‘북극 소용돌이’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까운 역사 속 우리의 봄을 찾아봅니다. 3월엔 봄이 시작됩니다. 3.1운동이 있었습니다. 4월엔 봄꽃이 흐드러집니다. 4월 혁명이 있었습니다. 5월, 6월 우리 산천엔 신록이 빛납니다. 5.18 민주화 운동과 6월 민주항쟁이 있었습니다. 대자연의 봄마다 선조선배들이 새로운 봄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민족자존과 자주, 연대와 단결, 용기와 창의, 헌신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 모진 겨울을 끝낼 새봄을 우리네 산 역사에서 배워 다시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요?

겨레의 생존과 자주가 폭풍 앞에 선 호롱불입니다. 뜬금없이 “통일대박”을 띄우더니 북쪽에서 쏜 “광명성”과 터뜨린 “수소탄”으로,  산산조각으로 사라지고 전쟁 직전의 신냉전 먹구름뿐입니다. 
통일대박에 동반할 상대와는 증오와 적대로 들끓고 있습니다. 신뢰의 과정을 만들지 않은 통일대박론은 흡수통일의 통일 겁박(劫迫)으로 받아들여져 위기조성에 일조한 셈입니다. 위기에 부닥친 정부의 애절한 읍소는 마침내 강고한 동맹국이라며 무기 팔려는 미국과 애증의 냉온탕을 반복해온 일본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전략적 동반자”로 어께를 맞대고 박수치던 중국은 낯선 얼굴이 되어 냉전의 다른 축을 만들어 압박해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도움은 아마 의지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장 몇 조가 들지 모르는 방위비 분담으로 우리를 억누를 것입니다. 일본에게 구하는 협조는 군사대국화의 길을 우리가 앞서서 열어주는 꼴이 됩니다. 북핵으로부터 남을 지키려는 미·일·한 군사동맹은 북․중․ 러와 대결하는 신 냉전체제를 만들고 우리 남북이 앞장서는 모습입니다.
언론들은 강대국만을 쳐다보지 말고, 우리 자력으로 해결책을 찾자고 합니다. 한편에선 독자 핵무장을 말합니다. 다른 한편은 압박과 제제, 핵무장 등 강공책은 종국적 해결책이 될 수 없으니,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강경론도 새로운 협상의 주도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면 기회일 것 입니다. 그러나 우리 남북이 미국의 ‘아시아로 돌아오기’ ‘새로운 세력균형’의 대중포위망과  일본의 군사대국화, 그리고 중국의 대미전략의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되는 ‘꽃놀이 패’ 바둑돌이라면, 우리의 불안, 고통, 경제적 난관과 피해, 멀어져가는 통일, 생각만 해도 전율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 한심하고 통탄할 것은, 이 엄중한 한반도의 위기가 선거 전략으로 기획되고 활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여야 모두에서 거론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정말 북핵을 해결할 의지가 있습니까? 세계가 미국 대북외교의 실패를 말합니다. 실패가 아니라 무의지의 ‘전략적 인내’가 동아시아 전략을 위한 전략적 지연은 아닐까요. 한미합동훈련에 참수부대까지 동원된다는데 과연 아주 요절을 낼까요. 북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핵의 명분으로 들고 있다는데, 미국의 대응은 제제와 협박 말고는 찾을 수 없는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의 자주적 역할을 찾을 순 없습니까. 우리가 이 과정을 주도할 수는 없습니까. 이미 학계와 언론에서는, 북핵의 단계적 동결, 한미군사훈련의 잠정적 중단,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전환 등 많은 의견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은 사드배치에의 결연한 반대와 북미평화협정과 비핵화대화의 병행추진을 말합니다. 우리정부와 국민의 자주적, 애국적 결단과 현실적이고 유연한 스마트한 정책전환과 이를 관철할 진지한 대미 대중 대일 대북은 노력에 자신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합니까? 

일본과 한반도는 천지창조가 다시 되지 않는 한, 숙명적 이웃입니다. 잘 지내야 좋지요. 그러면 정말 좋은 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기후 환경 등 이웃끼리 협력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요. 이제 동아시아에서 G2로 떠오른 중국과 미국이 패권을 두고 으르렁거리는 형국에, 한 일이 협력하여 두 거국을 다룬다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평화와 번영에 큰 기여를 하고, 한·일 모두 좋을 터인데, 최근 움직임은 그 반대의 길에 앞장선 모양입니다.  걱정처럼 신냉전의 한축, 그 앞잡이가 된다면, 평화는 물론 먹고사는 생존조차 위협받게 되지 않을까요?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가련한 골칫거리 천덕구니가 될지 모릅니다.
 
작년 광복 70주년을 보내며 한·일은 과거를 넘어 새로운 미래로 가기를 고대했습니다. 양국정부가 수년의 실랑이와 외면 끝에 위안부합의라는 것을 “최종적으로 불가역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이 합의란 것이야 말로, 저 단재선생의 분노처럼 “어진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용기 있는 이는 침 뱉을 일”입니다. 정부 당국자가 돈지갑을 흔들며 피 맺힌 할머니를 한분씩 찾아가 달래본다니, 이게 전 세계 양식의 공분을 일으키고 여성 인권운동의 거대한 이정표를 마련한 저 위대한 분들에 대한 예의입니까? 국민을 대신한 정부가 할 일입니까? 일본 극우정부는 그렇다 치고, 아무리 미국의 강권이 있었다고 해도 우리정부의 사려가 여기에 그친다니, 참으로 자기가 자신을 능멸한 뒤에 남이 모욕한다(人必自侮然後人侮之)더니, 정말 그러합니다.

65년 한일협정은 한일관계의 현재와 미래의 규범이 아니라 장애임이 한국의 헌재와 사법부 그리고 한일지식인들에 의해 선언된 불임불구의 파탄 난 조약입니다. 애초부터 한 조문도 양국의 해석이 일치하지 않고 서로 자국민을 속이기로 한, 이 한일협정은 조문의 개정이든 재해석이든 그간 양국에서 축적한 일제의 강제합방과정과 식민지배에 대한 연구와 정의로운 역사관을 바탕한 새로운 한일협정을 위한 재협상이 개시되어야 합니다.

한일양국이 진정 가치동맹을 말하려면, 최소한 ‘침략이 무엇인가’에는 일치된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일본총리는 일본의 과거 한국침략에 관련하여 “침략에는 여러 가지 개념이 있다”고 자국국회에서 말했고 이를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정권과 더불어 자국 이익에 동원되는 것 말고 가치동맹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적어도 3⦁1운동 100주년에는 선열에 부끄럽지 않은 새로운 한일협정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 한일관계는 미래로 갈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요구하는 열풍이 선거판을 뒤집을 듯 달구고 있습니다. 우리의 양극화는 훨씬 심각합니다. 정말 죽을 지경인 청년·노인·중소기업인 천지입니다. 학계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소득분배에서 가계의 몫이 기업으로, 그것도 초대기업으로 심한 불균형을 보이며 옮겨갔음을 말합니다. 초대기업을 뺀 기업체의 노동자, 비정규직, 자신의 노임을 벌 뿐인 자영업자 등의 분노는 정치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배불균형은 국가⦁자본동맹이 주도했음에도 이를 대체할 국가⦁사회정의 동맹은 구체적 정책으로 주장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체제전복이 아닌 이익 균점(均霑)이 우리 제헌헌법18조에 규정되어 이승만 초대대통령에 의해 선포된 바 있었습니다만, 5⦁16으로 삭제되었습니다. 분명, 국가는 소득분배에 개입해야 합니다.

최근의 정치, 정당개편 양상은 이러한 분노와 요구의 정치적 표현을 위한, 소득분배에 국가정책을 개입하기 위한 정치세력화입니까? 아니면 이합집산 공천싸움입니까? 우리 헌정제도에서 정당은 국고지원 등 여러 가지 법이 정한 특혜를 받는 헌법질서의 핵심 부분인데, 이당의 책사가 저당의 대표가 되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 과연 정당이 국민의 정치의사표현의 핵심적 매개체인지 의문입니다.

이제, 분노, 불만, 신음, 요구, 갈망이 직접 정책과 입법 요구로 표현 주장되어야 합니다. 정당대의제가 이를 담당하지 못하거나 부족하다면, 직접민주주의가 더 다양하게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19대 국회가 보여주듯, 정당 세력 투쟁의 교착으로 입법 기능이 마비된다면, 입법사안별 국민투표 등 직접민주제도가 실현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또 우리의 정보화 수준에서는 인터넷 모바일 SNS가 직접민주주의의 방법으로 제도화 되는 것이 옳습니다.

봄입니다. 새봄, 새 농사에 떨쳐나서야할 때입니다. 자주 분노 연대 평화 열정을 분명히 할 정치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한 시인(신동문)은 4월 혁명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혼자서만/ 야망 태우는/ 목동이 아니었다/ 열씩 백씩/ 천씩 만씩/ 어께 맞잡고/ 팔짱 맞끼고/ 공동의 희망을/ 태양처럼 불태우는/ 아--- 새로운 신화 같은 젊은 다비데군들(신동문, 오 다비데군(群)처럼)
 
3월, 4월, 5월, 6월입니다. 

※ 이글은 3.1절 97주년 선언과 동시에 준비되어 표현과 내용에 겹치는 부분이 있음을 양해바랍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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