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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평화가 제2의 광복이다.
글쓴이 관리자
날 짜
16-12-2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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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한반도가 길을 잃었다. 지금 우리가 향한 곳이 대재앙으로 떨어지는 벼랑은 아닐지, 알 수 없다.  다시는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민족적 열망도 어느 덧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최근, 한반도의 정치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전쟁을 운운하고 있다. 세계 그 어느 곳보다 군사력이 밀집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비이성적이고 반인륜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런 생각들이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표면적으로는 북한의 핵개발이 원인처럼 보인다. 이미 다섯 차례의 핵실험으로 북한은 핵무기 실전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북의 주장에 따르면 이미 실천배치가 이루어졌다. 이는 핵무기 확산을 금지하자는 국제사회의 합의에 대한 도전이자 한국에게 큰 군사적 위협이다. 이에 그 위협을 상쇄할 수 있는 군사적 대응을 하자는 주장이 등장하는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전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그럴 경우 같이 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눈을 감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그런 위험천만한 발상은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위정자들까지 이처럼 무책임한 주장에 편승하고 있다.
현재 한반도가 직면한 위태로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가 왜 발생했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 미소냉전이 해체되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관계가 수립되는 등 이념적, 정치적 장벽이 무너지는 국제적 흐름 속에서 교차승인 등의 방식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졌다면, 오늘날 이런 상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고립되는 상황에 처했다.
북한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 그 동안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논의가 항상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의제들과 함께 진행되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4년 제네바합의, 2005년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 등 몇 차례 중요한 돌파가 있었으나 북미 사이의 깊은 불신으로 그 합의가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고 더 큰 대립과 위기로 이어졌다. 결국 협상카드로서 활용되던 북의 핵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으로 올 9월까지 다섯 차례의 실험을 거치며 실제 무기화되는 사태가 출현했다. 북한은 이제 공공연하게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도 이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그 요구를 거부한 이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최근 한국과 미국 정부는 대북제재를 강화하여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제재의 강도를 높여왔다. 이에 비해, 중국은 국제사회의 합의를 무시한 행동에 북한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하고 핵능력 강화를 막기 위한 제재는 해야 하지만, 제재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 동안 UN의 제재결의안에도 항상 6자회담 등 대화의 재개를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양측의 주장은 모두 문제가 있다.
한국과 미국의 정책은 현재의 상황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실패한 정책이다. 단순히 실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재-북의 핵실험-더 강한 제재-더 큰 위기”의 악순환에 빠져들면서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 길로 상황을 내몰아 왔다. 그러나 여전히 더 강한 제재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논리에 따라 사드무기체계의 배치 결정이 이루어졌고, 북의 핵무기 제거를 위한 선제공격, 북한붕괴 유도 등의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사드무기체제의 배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략적 갈등을 초래하기 때문에,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제공격 운운 등은 뭔가 새로운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이미 문턱을 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을 당장 저지할 방법이 되지는 못한다. 또 중국을 원망하기도 한다. 이제라도 중국이 대북제재를 강화하면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중국은 석유수출 차단과 같은 대북봉쇄는 북을 굴복시키기보다는 북의 반발을 초래하여 한반도 긴장을 더 고조시키고 대규모 군사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대규모 난민 등은 그 다음 문제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이나 미국도 감당하기 어렵다. 
한편,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같이 해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 2월 중국의 왕이(王毅) 외교부 부장은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내에서는 이를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한 신사고라고 지칭하는 등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실 이것이 새로운 주장은 아니다. 이미 9.19 공동성명(에 “)4조 1항에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이와 관련한 노력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선비핵화를 요구하며 평화체제나 평화협정과 관련한 논의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러나, 최근 상황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은 2016년 2월 21일자에 북이 4차 핵실험을 하기 직전인 작년 12월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peace treaty)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미 국무부는 북한이 먼저 제안했고 미국이 비핵화를 같이 논의하면 평화협정에 대해서도 논의할 수 있다고 역 제안을 했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하고 핵실험을 감행했다고 해명했다. 누가 먼저 제안했는지는 말이 엇갈리지만 미국이 선비핵화를 고집하지 않았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도 상황을 과거와는 다르게 보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소위 전략적 인내, 즉 북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북한이 약화되어 굴복하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정책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 결과 지금 북한의 핵무기가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은 북에 대한 강경론이 득세하고 있지만, 한반도 문제를 군사 수단을 동원해 해결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미국은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도 북의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고려했으나,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자 포기했다. 북이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금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1994년 당시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과거보다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 더 절박하다. 지난 10월 21~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진행된 북미 접촉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중국의 제안이 언젠가 다시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제안에도 한계가 있다. 유관국들 사이에 평화체제 논의가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북한의 비핵화는 물론이고 주한미군, 한미상호방위조약 등의 문제가 같이 논의될 수밖에 없는 협상은 복잡하고 장기적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더 큰 문제는 어떻게 북한이 비핵화라는 목표에 동의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평화체제 논의가 시작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 문제 해결은 두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 북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병행하는 작업이다. 다만 이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여기에만 우리 민족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둘째, 북의 핵 및 미사일 능력의 발전을 동결시키고,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 위협을 크게 줄이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현재 일촉즉발의 한반도 상황을 대화와 협력 국면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호신뢰가 축적된다면, 첫번째 작업도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남한으로서는 북한의 핵무기를 당장 철폐하지 못하는 점에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은 북의 핵능력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사태로 진전되는 것을 막는 일이다.
한반도 대치국면의 발전적 변화는 군사적 수단과 제재로 달성될 수 없다. 사실 대화와 협력이 더 많은 변화의 씨를 뿌릴 수 있다. 독일통일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과거 햇볕정책에 대해 북한이 우려했던 것도 제재보다 대화가 초래할 수 있는 충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생을 책임지지 못하는 권력이 지속되기는 힘들기 때문에 북한의 권력층도 한국 및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외면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화와 협력이 진행되어야 한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만일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 되면 한반도의 운명은 한국의 손을 떠나 다른 행위자들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다. 그 결과가 전쟁이라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김구 선생이 꿈꿨던 광복은 “아름다운 나라”이었다. 그 꿈은 분단과 전쟁으로 좌절되었다.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딛고 발전시켜온 나라가 더 참혹한 전쟁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평화가 제2의 광복의 꿈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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