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00년

<김구로드 프로젝트> 서울 공연 안내
<피를 묵(墨) 삼아 기록한 꽃송이> 출판 기념 북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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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1주년 기념공연, 다큐멘타리 음…
최초의 3·1절 노래 악보 찾았다-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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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하시면서, 징역살이 하시면서, 나라가 꿈에라도 두 쪽으로 나뉠 것을 생각이…
독립운동하시면서, 징역살이 하시면서, 나라가 꿈에라도 두 쪽으로 나뉠 것을 생각이…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이부영 - 남북지도자는 한국전쟁 피해자가족에게 사과해야- 지난 3월 1일부터 시작된 한반도평화를 기원하는 은빛순례단의 전국 순례가 내년 3월 1일 3·1독립운동 100주년에 대단원을 맞이한다. 서울의 탑골공원과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시작된 순례 여정이 11월 22일 연평도-백령도 순례로 끝난다. 전국의 시도청 소재지를 중심으로 시도별 순례 참여자들을 다시 모셔서 우리가 지난 3·1절 99주년에 다짐했던 마음을 다시 모으려 할 것이다. 그것은 지난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그 무슨 지역 이념 종교 남녀노소 신분의 차별을 생각하셨을까, 독립운동 하시면서 목숨을 바치시고 고문당하시고 징역살이 하시면서 독립되면 나라가 두 쪽으로 나뉠 것으로 생각이라도 하셨을까, 꿈에라도 그런 생각은 하셨을 리 없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미군과 소련군이 남북을 분단하여 점령하고 나자 그들의 의도하는 대로 나라를 둘로 쪼개자는 세력들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기 시작했다. 남쪽의 이승만이 1946년 6월 5일 이른바 ‘정읍발언’으로 남쪽에 먼저 분단정부를 세우겠다고 발언하는 것으로 신호탄이 올랐다. 우리가 이런 꼴 보려고 목숨 바쳐 온갖 고생하면서 독립운동 했느냐고 각지에서 들고 일어났다. 대구의 10·1항쟁, 제주의 4·3항쟁이 그런 움직임이었다. 1948년의 여수순천 14연대 군사반란 사건은 제주도 주민들이 분단정부 세우는 것에 반대하는 것인데 그런 올바른 주장하는 주민들을 토벌하려는 명령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분단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각지의 저항운동에 대해서 미군정은 무자비한 탄압과 학살로 진압했다. 그 저항운동에 저항한 사람들 가운데 피학살자들 말고 남은 사람들이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인간청소’를 당했다. 지난 5월 22일 순천에서 은빛순례 행사를 가졌다. 순천의 ‘여순사건 피해자 위령비’를 참배하고 술과 떡을 제례에 올렸다. 30여 명이 모인 유족들은 은빛순례자들과 함께 위령비에 큰절을 드렸다. 저는 아래와 같이 추모사를 올렸다. “여순 사건에 돌아가신 분들은 좌익인사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라가 둘로 갈라진다는 것에 반대한 분들도 많이 희생됐다. 대표적인 분이 김구 선생이셨다. 여러분들 너무 기죽을 필요 없다.” 저의 이런 말에 유족들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고 했다. 듣는 말이라고는 어려서부터 “빨갱이 새끼”라는 말뿐이었고 군대에 가도 장교는 될 수 없었고, 공무원은 될 생각부터 못했으며, 외국에도 나갈 수 없었다고 했다. 연좌제의 족쇄에 묶여 살아야 했다. 저는 유족들에게 “정부에서 풀어주기만 기다려서는 어렵다.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저기 죽도봉 전몰군경 현충탑에 함께 참배하자. 피해자들이 용서하는 관용의 마음을 가져야 가해자 가족들도 마음을 열고 나올 수 있다. 이 길이 이기는 길이다”라면서 함께 갈 것을 종용했다. 도저히 그곳에 가서 참배할 수 없다고 거부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유족회장이 참배하자고 권유해서 모두 따라 나섰다. 저는 전몰군경들도 윗사람들의 부당한 명령에 동원된 또다른 피해자들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우리 일행과 유족들은 전몰군경현충탑에 함께 술과 떡을 올리고 참배했다. 유족들은 정성을 다해 전몰군경 영령들에게 자신들의 부모들에게 참배하는 마음으로 절했다. 제례를 모두 마치고 저는 유족들에게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들은 “참배를 하고 났더니 마음이 가라앉고 편하다”고 의외의 답변을 했다. 바로 이런 치유의 순간을 지나온 사람들, 특히 피해자들은 마음의 불안 원망 복수의 마음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평정의 마음을 가지기 시작하게 된다. 지난 11월 3일 저는 충남 태안군 한국전쟁희생자 유족회가 가지는 희생자 백서 출판기념회와 위령제에 참석했다. 1,050명의 명단이 확인된 태안학살 백서의 출판은 전국에서 처음 있는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정석희 회장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삼촌을 같은 날 잃은 기막힌 운명을 겪고 이겨낸 사람이었다. 저는 전국에서 모여든 피학살자 유가족회 대표들과 유족들에게 순천 피해자 가족들에게 한 것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많은 유족들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국전 종전선언이 성사되는 날, 남북의 지도자들은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한반도 주민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사과해야한다. 이념과 정치적 명분을 내세워 남북의 주민들을 죽이고 남은 가족들에게 표현할 길 없는 고통을 안겨준 데 대해 엄숙히 사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이 말하는 어떤 합의도 진정성을 가질 수 없다.” 태안군청 강당은 유족들이 친 박수소리로 가득했다.
독립운동하시면서, 징역살이 하시면서, 나라가 꿈에라도 두 쪽으로 나뉠 것을 생각이…
독립운동하시면서, 징역살이 하시면서, 나라가 꿈에라도 두 쪽으로 나뉠 것을 생각이…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이부영 - 남북지도자는 한국전쟁 피해자가족에게 사과해야- 지난 3월 1일부터 시작된 한반도평화를 기원하는 은빛순례단의 전국 순례가 내년 3월 1일 3·1독립운동 100주년에 대단원을 맞이한다. 서울의 탑골공원과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시작된 순례 여정이 11월 22일 연평도-백령도 순례로 끝난다. 전국의 시도청 소재지를 중심으로 시도별 순례 참여자들을 다시 모셔서 우리가 지난 3·1절 99주년에 다짐했던 마음을 다시 모으려 할 것이다. 그것은 지난 1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그 무슨 지역 이념 종교 남녀노소 신분의 차별을 생각하셨을까, 독립운동 하시면서 목숨을 바치시고 고문당하시고 징역살이 하시면서 독립되면 나라가 두 쪽으로 나뉠 것으로 생각이라도 하셨을까, 꿈에라도 그런 생각은 하셨을 리 없었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미군과 소련군이 남북을 분단하여 점령하고 나자 그들의 의도하는 대로 나라를 둘로 쪼개자는 세력들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기 시작했다. 남쪽의 이승만이 1946년 6월 5일 이른바 ‘정읍발언’으로 남쪽에 먼저 분단정부를 세우겠다고 발언하는 것으로 신호탄이 올랐다. 우리가 이런 꼴 보려고 목숨 바쳐 온갖 고생하면서 독립운동 했느냐고 각지에서 들고 일어났다. 대구의 10·1항쟁, 제주의 4·3항쟁이 그런 움직임이었다. 1948년의 여수순천 14연대 군사반란 사건은 제주도 주민들이 분단정부 세우는 것에 반대하는 것인데 그런 올바른 주장하는 주민들을 토벌하려는 명령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분단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각지의 저항운동에 대해서 미군정은 무자비한 탄압과 학살로 진압했다. 그 저항운동에 저항한 사람들 가운데 피학살자들 말고 남은 사람들이 보도연맹에 가입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다시 ‘인간청소’를 당했다. 지난 5월 22일 순천에서 은빛순례 행사를 가졌다. 순천의 ‘여순사건 피해자 위령비’를 참배하고 술과 떡을 제례에 올렸다. 30여 명이 모인 유족들은 은빛순례자들과 함께 위령비에 큰절을 드렸다. 저는 아래와 같이 추모사를 올렸다. “여순 사건에 돌아가신 분들은 좌익인사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라가 둘로 갈라진다는 것에 반대한 분들도 많이 희생됐다. 대표적인 분이 김구 선생이셨다. 여러분들 너무 기죽을 필요 없다.” 저의 이런 말에 유족들은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고 했다. 듣는 말이라고는 어려서부터 “빨갱이 새끼”라는 말뿐이었고 군대에 가도 장교는 될 수 없었고, 공무원은 될 생각부터 못했으며, 외국에도 나갈 수 없었다고 했다. 연좌제의 족쇄에 묶여 살아야 했다. 저는 유족들에게 “정부에서 풀어주기만 기다려서는 어렵다.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 저기 죽도봉 전몰군경 현충탑에 함께 참배하자. 피해자들이 용서하는 관용의 마음을 가져야 가해자 가족들도 마음을 열고 나올 수 있다. 이 길이 이기는 길이다”라면서 함께 갈 것을 종용했다. 도저히 그곳에 가서 참배할 수 없다고 거부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유족회장이 참배하자고 권유해서 모두 따라 나섰다. 저는 전몰군경들도 윗사람들의 부당한 명령에 동원된 또다른 피해자들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우리 일행과 유족들은 전몰군경현충탑에 함께 술과 떡을 올리고 참배했다. 유족들은 정성을 다해 전몰군경 영령들에게 자신들의 부모들에게 참배하는 마음으로 절했다. 제례를 모두 마치고 저는 유족들에게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들은 “참배를 하고 났더니 마음이 가라앉고 편하다”고 의외의 답변을 했다. 바로 이런 치유의 순간을 지나온 사람들, 특히 피해자들은 마음의 불안 원망 복수의 마음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평정의 마음을 가지기 시작하게 된다. 지난 11월 3일 저는 충남 태안군 한국전쟁희생자 유족회가 가지는 희생자 백서 출판기념회와 위령제에 참석했다. 1,050명의 명단이 확인된 태안학살 백서의 출판은 전국에서 처음 있는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정석희 회장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삼촌을 같은 날 잃은 기막힌 운명을 겪고 이겨낸 사람이었다. 저는 전국에서 모여든 피학살자 유가족회 대표들과 유족들에게 순천 피해자 가족들에게 한 것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많은 유족들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한국전 종전선언이 성사되는 날, 남북의 지도자들은 한국전쟁으로 희생된 한반도 주민들과 그 유가족들에게 사과해야한다. 이념과 정치적 명분을 내세워 남북의 주민들을 죽이고 남은 가족들에게 표현할 길 없는 고통을 안겨준 데 대해 엄숙히 사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이 말하는 어떤 합의도 진정성을 가질 수 없다.” 태안군청 강당은 유족들이 친 박수소리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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